본문듣기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없어도 '가리비 화살표'가 있는 길

산티아고 순례길에 없는 것과 있는 것

등록 2025.08.12 15:03수정 2025.08.12 15:03
0
원고료로 응원
2025년 4월 말부터 6월 초까지, 산티아고 길을 다녀왔습니다. 산티아고 걷기는 열풍을 넘어 '산티아고 현상'이 되었음을 피부로 느꼈습니다. 길 위의 이야기를 독자들과 나누고자 합니다.[기자말]
사리아(Saria)에서 포르토마린(Portomarín)을 향해 가다가 젊은 두 친구를 만났다. 네덜란드에서 일하고 있다는 한국 아가씨가 중국 아가씨와 함께 걷고 있었다. 둘 다 암스테르담에서 일주일 시간을 내어 이곳에 왔고 사리아부터 걷고 있다고 했다.

 사리아에서 포르토마린 가는 길
사리아에서 포르토마린 가는 길 김상희

걷는 길에서 경치가 너무 좋다고 내내 감탄했다. 차마 입밖에 꺼내지 못했다.


"이건 좋은 축에도 안 들어. 산티아고 초반 길에 비하면."

피레네와 네바라, 리오하의 구릉과 평원을 걸어본 사람은 내 말에 동의할 것이다.

사리아 근교를 빠져나오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오세브레이로에서 내리막길을 거쳐 트리야카스텔라까지만 가면 산악 지역은 끝나는 줄 알았는데 포르토마린 가는 길도 짧은 산길이 많았다. 야트막한 고개를 몇 개씩 오르내렸다.

산티아고 길에 없는 것, 두 가지

그늘은 잠시고 땡볕 길은 길다. 지친다. 이럴 때 내 머릿속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가득 찬다.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시원한 음료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대체할 수 없을 것 같다.


바(Bar)에 들어갔다. 찬 음료는 탄산음료를 제외하면 맥주밖에 없다. 불행히도, 카미노에는 아이스아메리카노가 없다. 한겨울에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끼고 사는 우리 한국인에게 너무 가혹하다. 남편은 바에만 가면 같은 말을 되풀이한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팔기만 하면 외국인들도 많이 사 마실 텐데..."


유일한 대안은 커피와 얼음을 따로 시키는 방법이다. 그러면 주먹만 한 얼음 2개와 감질나는 뜨거운 커피 작은 잔을 준다. 그러나 이 걸로 '차고 청량한 카페인'이 가슴속까지 공급될 리 없다. 산티아고 길, 유감이다. 다 좋은데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없네.

또 산티아고 길에서 아쉬운 것은, 공공 화장실이다. 깨끗한 공공 화장실이 지천에 있는 나라 한국 출신의 순례자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걷는 세계적으로 공인된 걷기 길에 공공 화장실 하나 없다'는 사실을. K-화장실도 카미노로 수출하자.

산티아고 길에 있는 것, 두 가지

대신 순례길에서 꼭 만나게 되는 것도 있다. 성 야고보껜 불경스럽지만, 비종교적 순례자인 내게 카미노의 꽃은 '바(Bar)'이다. 큰 산을 넘어가는 날만 아니면 적어도 두 시간 만에 바(Bar) 하나는 만나고 간혹 메세타처럼 장시간 긴 들판만 이어질 때는 '바퀴 달린 바(Bar)', 푸드 트럭이라도 나타난다.

 순례자들의 오아시스, 바에서 즐기는 맛있는 휴식
순례자들의 오아시스, 바에서 즐기는 맛있는 휴식 김상희

앞서 공공 화장실 타령을 했지만, 스페인은 공공 화장실을 못 만드는 게 아니라 안 만드는 게 틀림없다. 카미노 상에 있는 수많은 바(Bar)의 생존을 위해서.

 언제든 대환영! 바퀴 달린 바(Bar)
언제든 대환영! 바퀴 달린 바(Bar) 김상희

하루 순례길은 '바투바(bar-to-bar)' 여행이다. 하루 중 서너 번은 들르게 되니, '바(Bar) 순례'다. 이때 화장실도 가고 식사도 하고 커피나 맥주도 마신다. 특히 바에서 아침을 먹는 경우가 많다. 스페인 사람들이 즐겨 먹는 아침 메뉴, 토르티야(Tortilla)와 판콘토마테(Pan con Tomate)는 산티아고 길에서 꼭 추천하고 싶다.

 감자 오믈렛 토르티야
감자 오믈렛 토르티야 김상희

 붉은 태양의 나라 스페인을 닮은 요리, 판콘토마테
붉은 태양의 나라 스페인을 닮은 요리, 판콘토마테 김상희

또 카미노 어디에나 '노란 화살표'가 있다. 카미노 전역에 수도 없이 만나는 노란 화살표는 성배의 기적으로 유명한 오세브레이로(O'Cebreiro)의 산타마리아 성당의 교구 사제 돈 엘리아스(Don Elias Valiña Sampedro)가 창안한 것이라고 한다. 순례 루트를 보존하고 복구하는데 평생을 바친 사람이다.

 가리비와 노란 화살표의 길 표시석. 산티아고까지 남은 거리도 알려준다.
가리비와 노란 화살표의 길 표시석. 산티아고까지 남은 거리도 알려준다. 김상희

 가리비 화살표
가리비 화살표 김상희

 길가의 벤치도 길을 알려준다.
길가의 벤치도 길을 알려준다. 김상희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돌무지 화살표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돌무지 화살표 김상희

로그로뇨처럼 가리비나 길 표지판을 미적으로 고안해 설치해 둔 곳도 있지만 '노란 화살표'만큼 눈에 잘 띄고 직관적인 것은 없다. 노란 화살표는 걷는 이에게 생명줄이나 다름없다. 지도가 필요 없다. 노란 화살표만 따라가도 길 잃을 염려는 없다.

 비오는 피레네 산맥에서 생명줄과 같았던 화살표
비오는 피레네 산맥에서 생명줄과 같았던 화살표 김상희

 숨은 화살표도 찾아보자.
숨은 화살표도 찾아보자. 김상희
개성 있는 노란 화살표도 있고 순례자와 숨바꼭질이라도 하듯 살짝 숨어있는 화살표들도 있다. 보물찾기 하듯 찾다 보면 걷기가 덜 지루하다.
#산티아고 #산티아고길 #산티아고순례 #사리아 #포르토마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생활여행자입니다. 여행이 일상이고 생활이 여행인 날들을 살아갑니다. 흘러가는 시간과 기억을 '쌓기 위해' 기록합니다.


톡톡 60초

AD

AD

AD

인기기사

  1. 1 해안도로 곳곳에 나타나는 '경고'... 강릉 바다가 위험하다 해안도로 곳곳에 나타나는 '경고'... 강릉 바다가 위험하다
  2. 2 '평택' 밑으로는 인재 못 간다? 세상에 이런 나라가 또 어딨나 '평택' 밑으로는 인재 못 간다? 세상에 이런 나라가 또 어딨나
  3. 3 황혼 육아 고단함 날린, 며느리의 뜻밖의 선물 황혼 육아 고단함 날린, 며느리의 뜻밖의 선물
  4. 4 쿠팡 없이 40일 살아보니 이런 소득도 있네요 쿠팡 없이 40일 살아보니 이런 소득도 있네요
  5. 5 "설마 너도 그렇게 생각해?" 판사 제자에게 묻고 싶은 말 "설마 너도 그렇게 생각해?" 판사 제자에게 묻고 싶은 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