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리아에서 포르토마린 가는 길
김상희
걷는 길에서 경치가 너무 좋다고 내내 감탄했다. 차마 입밖에 꺼내지 못했다.
"이건 좋은 축에도 안 들어. 산티아고 초반 길에 비하면."
피레네와 네바라, 리오하의 구릉과 평원을 걸어본 사람은 내 말에 동의할 것이다.
사리아 근교를 빠져나오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오세브레이로에서 내리막길을 거쳐 트리야카스텔라까지만 가면 산악 지역은 끝나는 줄 알았는데 포르토마린 가는 길도 짧은 산길이 많았다. 야트막한 고개를 몇 개씩 오르내렸다.
산티아고 길에 없는 것, 두 가지
그늘은 잠시고 땡볕 길은 길다. 지친다. 이럴 때 내 머릿속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가득 찬다.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시원한 음료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대체할 수 없을 것 같다.
바(Bar)에 들어갔다. 찬 음료는 탄산음료를 제외하면 맥주밖에 없다. 불행히도, 카미노에는 아이스아메리카노가 없다. 한겨울에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끼고 사는 우리 한국인에게 너무 가혹하다. 남편은 바에만 가면 같은 말을 되풀이한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팔기만 하면 외국인들도 많이 사 마실 텐데..."
유일한 대안은 커피와 얼음을 따로 시키는 방법이다. 그러면 주먹만 한 얼음 2개와 감질나는 뜨거운 커피 작은 잔을 준다. 그러나 이 걸로 '차고 청량한 카페인'이 가슴속까지 공급될 리 없다. 산티아고 길, 유감이다. 다 좋은데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없네.
또 산티아고 길에서 아쉬운 것은, 공공 화장실이다. 깨끗한 공공 화장실이 지천에 있는 나라 한국 출신의 순례자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걷는 세계적으로 공인된 걷기 길에 공공 화장실 하나 없다'는 사실을. K-화장실도 카미노로 수출하자.
산티아고 길에 있는 것, 두 가지
대신 순례길에서 꼭 만나게 되는 것도 있다. 성 야고보껜 불경스럽지만, 비종교적 순례자인 내게 카미노의 꽃은 '바(Bar)'이다. 큰 산을 넘어가는 날만 아니면 적어도 두 시간 만에 바(Bar) 하나는 만나고 간혹 메세타처럼 장시간 긴 들판만 이어질 때는 '바퀴 달린 바(Bar)', 푸드 트럭이라도 나타난다.

▲ 순례자들의 오아시스, 바에서 즐기는 맛있는 휴식
김상희
앞서 공공 화장실 타령을 했지만, 스페인은 공공 화장실을 못 만드는 게 아니라 안 만드는 게 틀림없다. 카미노 상에 있는 수많은 바(Bar)의 생존을 위해서.

▲ 언제든 대환영! 바퀴 달린 바(Bar)
김상희
하루 순례길은 '바투바(bar-to-bar)' 여행이다. 하루 중 서너 번은 들르게 되니, '바(Bar) 순례'다. 이때 화장실도 가고 식사도 하고 커피나 맥주도 마신다. 특히 바에서 아침을 먹는 경우가 많다. 스페인 사람들이 즐겨 먹는 아침 메뉴, 토르티야(Tortilla)와 판콘토마테(Pan con Tomate)는 산티아고 길에서 꼭 추천하고 싶다.

▲ 감자 오믈렛 토르티야
김상희

▲ 붉은 태양의 나라 스페인을 닮은 요리, 판콘토마테
김상희
또 카미노 어디에나 '노란 화살표'가 있다. 카미노 전역에 수도 없이 만나는 노란 화살표는 성배의 기적으로 유명한 오세브레이로(O'Cebreiro)의 산타마리아 성당의 교구 사제 돈 엘리아스(Don Elias Valiña Sampedro)가 창안한 것이라고 한다. 순례 루트를 보존하고 복구하는데 평생을 바친 사람이다.

▲ 가리비와 노란 화살표의 길 표시석. 산티아고까지 남은 거리도 알려준다.
김상희

▲ 가리비 화살표
김상희

▲ 길가의 벤치도 길을 알려준다.
김상희

▲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돌무지 화살표
김상희
로그로뇨처럼 가리비나 길 표지판을 미적으로 고안해 설치해 둔 곳도 있지만 '노란 화살표'만큼 눈에 잘 띄고 직관적인 것은 없다. 노란 화살표는 걷는 이에게 생명줄이나 다름없다. 지도가 필요 없다. 노란 화살표만 따라가도 길 잃을 염려는 없다.

▲ 비오는 피레네 산맥에서 생명줄과 같았던 화살표
김상희

▲ 숨은 화살표도 찾아보자.
김상희
개성 있는 노란 화살표도 있고 순례자와 숨바꼭질이라도 하듯 살짝 숨어있는 화살표들도 있다. 보물찾기 하듯 찾다 보면 걷기가 덜 지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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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없어도 '가리비 화살표'가 있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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