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수집 장면 6.25전쟁사진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사진자료실에서 관련 사진을 수집하다(왼쪽 백암 박은식 임시정부 대통령 손자 재미동포 박유종 선생, 오른쪽 필자)
박도
소년 시절 세 가지 꿈
나는 소년 시절 세 가지 꿈을 가졌다. 그 첫째는 작가가 되는 꿈이었고, 그 둘째는 교사가 되는 꿈이었다. 작가 꿈 원천은 할아버지의 유언이었다.
"도야."
"예, … 할아버지!"
"우리 조선이 그 고약한 왜놈한테 해방이 됐으면, 우야든동(어쨌든), 이승만과 김일성이 서로 손을 잡고 둘로 쪼개진 나라를 하나로 합칠 생각은 하지 않고, 서로 미국 놈, 소련 놈들이 무기를 거저 준다고 하니까 얼씨구 좋아라 마구잡이로 끌어다가 애꿎은 조선 백성들 마이(많이) 죽였다. 이 세상에 공짜처럼 무서운 게 없다. 그것도 모른 채 …. 바보 천지 등신처럼."
"……."
"니(너)는 꼭 글 쓰는 선비가 돼라. 지난 전쟁 중 본 모든 걸 글로 자세히 남겨 후세에 전해라."
"네에! 할아버지." - 박도 지음 미 발표 장편소설 <한국전쟁> '여는 글' 중에서
그리하여 나는 어린 시절부터 작가의 꿈을 키워 여든에 이른 최근에야 장편 소설 2부작 <한국전쟁>을 마침내 탈고했다. 그 두 번째 꿈은 교사가 되는 일로 그 꿈의 원천은 아버지다. 내가 태어난 1945년은 해방이 되던 해로 아버지는 당시 구미보통학교(현, 구미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시다가 10. 1 항쟁으로 해직을 당한 뒤, 이후 당신의 인생 길은 뒤죽박죽, 수난의 일생을 보내셨다. 그런 영향 탓인지 나는 꼭 교사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군에서 전역 후 옆도 돌아보지 않고 여주 제일중학교, 서울 오산중학교, 서울 중동고등학교, 이대부속 고등학교에서 꼬박 33년 동안 평교사로 봉직 했다. 그 세 가지 꿈 가운데 교사의 길은 가장 먼저 이뤘으나, 이후 작가의 꿈과 기자의 꿈은 쉽사리 이루어지지 않았다.
고교 졸업 후 대학은 곧장 국어국문학과로 진학하여 작가 수업을 쌓았다. 하지만 재능과 노력 부족으로 48세가 되도록 등단치 못하고 해마다 낙방만 거듭했다. 1992년에야 <사람은 누군가를 그리며 산다>라는 장편소설로 문단 말석에 얼굴을 내밀었다.

▲압록강 항일유적 답사 중 단둥에서 압록강을 배경으로
박도
기자의 꿈
이들 세 가지 꿈 가운데 기자의 길은 고교 시절 가정 사정으로 신문 배달을 하면서 어느 독자 집 개한테 된통 물리면서 갖게 된 꿈이었다. 그 당시(1960년대) 서울 서촌과 북촌은 대부분 단층 기와집으로 조석 간 신문을 대문 틈 사이로 넣으면 주인 집 개들이 갑자기 대문 밖으로 튀어 나와 바지 가랑이를 물고 늘어졌다. 그때마다 나는 고함을 쳤다. "야, 사람 차별하지 마! 너, 내가 신문 배달원이라고 우습게 보는데, 나 이 다음 신문사 주필이 되거나 사장이 될 귀하신 몸이야!"라고
나는 그 세 번째 꿈을 이루고자 교사로 재직 중, 신문 기자 공채 시험에 두어 번 응시했다. 하지만 실력 부족(특히 영어 실력 부족) 번번이 낙방을 하여, 교사로 명예 퇴직했다.
그런 가운데 항일유적 답사 길에 하얼빈 열사기념관에서 내 고향(구미) 출신의 '만주 제일의 항일 파르티잔' 허형식 장군을 만났다. 내 고향 구미에 이런 위대한 항일 열사가 있다니... 그때 나는 너무나 감동하여 그 이듬해(2000년) 여름방학을 맞아 여름 보너스를 아내에게 주지 않고 몽땅 내 지갑에 넣은 채 북만주 광야를 헤맨 뒤 '영웅을 찾아서'란 기행문을 썼다. 그 기행문을 독립기념관 발행 월간 '독립'지에 기고했다. 그 글을 본 한 인터넷 신문(오마이뉴스) 편집자가 '일본군 장교는 기념관 세우고, 항일군 총참모장 허형식 생가는 헐려'라는 제목의 톱 기사로 게재한 이후, 원고료 지불에 필요하다면서 시민기자로 등록케 하였다. 그렇게 나의 세 번째 꿈이 마침내 이뤄졌다. 그리하여 2002년부터 현재까지 약 2천 꼭지 가까운 기사가 온라인으로 국내외 독자들에게 전달됐을 것이다.

▲단지동맹비 안중근 의사 유적지 답사 중 러시아 연추하리 어귀 단지 동맹비에서 필자.
박도
인세 보고
나는 소년 시절의 막연히 동경했던 세 가지 꿈은 모두 이룬 듯하다. 근데 나는 그 어느 분야에서도 뚜렷한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 며칠 전, 한 출판사에서 메일로 보낸 2025년 상반기 인세 보고를 본 뒤, 다음의 답장을 보냈다.
판매가 이토록 부진하다니... 저자로서 미안합니다. 무척 공들여 썼는데 아니, 이럴 수가.... 그저 입을 다물 수가 없습니다.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 박도 올림
그 날 밤 서점을 운영하는 고향의 후배에게 그 하소연을 하자 그 후배 왈(曰) "선배님 책만 그런 게 아닙니다"고 애써 나를 위로 하면서 요즘 뉴스가 소설보다 더 재미있는 시대이기에 사람들이 더욱 책을 보지 않는단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시골 간이 역에서 외로이 숨을 거뒀다. 미국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엽총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런 얘기에 그래도 나는 80 평생 굶지 않고 이제까지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데 감사하다.
미국의 작가 멜빌은 <백경(白鯨)>이란 그의 작품이 사후 50년 후에야 빛을 봤다고 한다. 그 고사에 용기를 얻어 나는 이제까지 쓴 미 발표 작을 유고로 남겨야겠다고 작정을 했다. 마침 오늘 저녁, 엊그제 잃어버린 돋보기 안경을 새로 맞춘 상지대 앞 단골 안경점에 가서 새 안경을 찾아 돌아오면서 '그래, 작가는 쓰는 기쁨에 사는 거야'라고 내 기존의 생각을 고쳤다. 그러면서 현세의 인기에 영합치 않기로 작정했다. 나는 다음 작품으로 어린 시절 할머니 품에서 재미있게 들었던 어느 조막(주먹)만한 간 큰 어느 신랑(전 박정희 대통령)의 남다른 생애 이야기에 전심 전력을 쏟아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2025년 광복절, 여든이 되도록 별 볼 일 없는 어느 못난 해방둥이는 광복 80 돌을 결연히 맞는다.

▲청산리 전적지 나무비 항일유적지 답사 중 청산리 전적지에 세워진 비목, 이 나무 비는 현재 볼 수 없을 것이다. 이후 석비로 교체됨.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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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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