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기가 대학시절 청문회에서 집단 토론한 책들. 1980년대 대학가에서 수많은 학생들에게 영향을 주었던 책들이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광주대단지가 배경이다. 청년 전태일의 분신을 통해 당시의 노동현실을 다룬 책이 <어느 청년노동자의 삶과 죽음>이었다.
책자모음
인천 5·3민주항쟁 – 싸우지 않을 수가 없으니 싸웠다
김윤기의 이력 중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은 인천 5.3항쟁이다. 1986년 5월 3일, 인천에선 신민당의 개헌추진위 결성대회가 열릴 예정이었다. 인천지역은 당시 '노동운동의 메카'로 불리고 있었다. 직선제 개헌 요구는 정치권과 시민세력과 대학가의 일치된 목소리였다. 총력전을 펼칠 곳이 5월 3일의 인천이었다. 김윤기는 청문회 선후배들과 참가를 결정한다. 당연하고 필연적인 결정이었다.
집회 당일, 경찰은 오후 5시쯤 대대적인 진압작전을 펼치며 319명을 연행한다. 김윤기도 포함돼 있었다. 그런데 검찰은 이들을 "방화, 파괴, 납치, 폭행 등을 자행한 폭력소요자"로 규정해 소요죄로 기소한다. 조작이었다. 당시 인천대 총학생회장 이재영은 며칠 동안 통닭구이 물고문을 당했다. "무기를 탈취하고 재야세력 연대해 인천시경을 습격하고, 청와대로 진격해 국가를 전복하려 했다"는 '자백'을 경찰은 요구했다. 저항할 수밖에 없었다.
구치소 투쟁의 와중에 그와 동지들에게 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진다. 검사 취조를 다녀온 인천대생 이재영과 인하대생 이용주가 호송차에서 만난 권인숙의 말을 전한 것이었다. "경찰서 소속 문귀동 형사에게 모진 성고문을 당해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려 하니, 남자 사동에 수감된 5·3 동지들도 함께 싸워주기를 바라더라"는 내용이었다. 권인숙의 고발에 대한 7월 16일 검찰조사 결과는 가해자 옹호와 피해자 모략으로 채워졌다.
윤기의 5·3 시위는 헌법이 보장한 집회 시위였다. 폭력행위 현행범도 그는 아니었다. 구치소에서 자술서와 반성문, 탄원서를 쓰고 나갈 기회도 여러 번 있었다. 그가 택한 것은 치열한 투쟁이었다. 그에게 온 그 잔을 그는 피하지 않았다. 그는 1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성남시 – 모순과 생존을 위한 투쟁의 땅을 딛고
징역 1년을 선고받은 김윤기가 대전교도소에서 출소한 것은 1987년 5월 14일이었다. 그는 졸업을 앞둔 학교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어머니 정정원이 윤기 몰래 등록금을 내고 휴학한 상태였다. 윤기의 선택은 노동현장이었다. 1988년 그는 자동 제적된다.
몇 달간의 합숙과 토론 수련의 기간을 거친 뒤, 그가 간 곳이 성남이었다. 도시빈민들이 대규모로 버려졌던 땅, 약속을 모조리 어기는 국가에 시민들이 들고 일어난 곳. 광주대단지가 항쟁 이후 얻은 새 이름이 성남시였다. 그곳에는 청문회 선배들도 있었다. 그는 성남시 하대원동 127-7(현 중원구 원터로18번길 6) 공단 바깥의 소규모 공장에 취직했다. 작은 공장이라 신분 확인은 소홀했다. 초대 노조위원장 김윤기의 첫 그리고 마지막 직장이 된 곳이었다.
성남의 소년공 출신 이재명은 내란의 폭압을 뚫고 대통령이 됐다. 이재명 정부는 2025년 7월말 노동자의 산재사고를 중심에 두고 국무회의를 진행했다. 공개된 그 회의에선 "살려고 나간 일터에서 죽어 돌아오는 일은 노동자는 없어야 한다"는 간명한 가치가 공유됐다. 55년 전 전태일, 36년 전 김윤기가 죽음으로 항의한 노동현장의 문제는 여전히 시대의 과제로 남아있다.
윤기가 아꼈던 여동생 선미는 추모시를 썼었다.
라이터를 켜기 전 / 갈 수 없는 그 순간 / 돌아갈 수 있다면 / 나는 불을 켜지 않으리 부서진 어머니 눈물 / 쓸쓸히 흩어진 구호 / 벗들의 미안한 마음도 / 내가 바란 게 아냐 라이터를 켜기 전 / 갈 수 없는 그곳에 / 돌아갈 수 있다면 / 나는 불을 켜지 않으리 / 흰머리 수북하게 / 작은집에 어머니 모시고 / 여전히 투쟁도 하고 / 여전히 사랑도 하고 / 라이터를 켜기 전 / 갈 수 없는 그날의 나로 / 돌아갈 수 있다면 이번에는 차라리 / 살고 싶은 민주가 되리 / 꺼지지 않는 민주가 되리(하략)
2024년 5월 27일, 정정원 여사는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촉구하기 위한 국회 순례 3보일배를 진행했다(이제 아흔에 가까운 여사를 지금도 곁에서 지켜주고 있는 건, 덕진양행노조 부위원장 이영숙과 김윤기기념사업회 초대회장 박순자다).
5월 28일 국회가 통과시킨 그 민주유공자법을 당시 윤석열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해 소멸시켰다. 과거를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 그들의 시대를 꼼꼼하게 기록한 책은 새로운 증언과 증거로서 남을 것이다.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을 굳건하게 옹호하는 측에 서서.
나는 스물여섯, 덕진양행 노조위원장입니다 - 청년 노동운동가 김윤기 평전
이계형 (지은이), 김윤기기념사업회 (기획),
휴머니스트,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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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읽고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사진 찍고, 흙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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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년 전 분신한 김윤기에 대한 기억과 기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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