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심마을 발달장애인 일자리 * 출처: 김영수·박남도·신미정·정현주·하윤주. 2022. "통합돌봄에서 마을돌봄의 역할 현장연구". 대구시 마을공동체만들기 지원센터. 34쪽.
김영수 외(2022)
위기에 빛을 발하는 관계의 힘
아직 마을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발달장애인의 숫자가 많은 편은 아니다. 그러나 안심마을에서는 발달장애인의 네트워크가 활발하게 형성되어 있다. 고립되어 있지 않고 발달장애인간의 관계, 발달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이 안심마을의 가장 큰 미덕이다.
이런 특성은 정부 사업만으로는 만들어질 수 없다. 발달장애인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주로 장애 당사자를 지원하는 데 초점이 맞춰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심마을에서의 지원은 '관계'를 지원하는 것을 뜻한다.
"(다른 지역 발달장애인들이 안심마을에서 살고 싶다고 해서 이유를 물어보니) 의외의 대답이에요. ...(중략)... 뭐냐면, '동료가 있잖아요'. ...(중략)... 그냥 이야기 나눌 수 있고 술 한잔 같이 할 수 있고 뭔가 저의 민낯을 다 보일 수 있는 사람이 여기에 있는 것이 좋은 것처럼, 그들의 삶을 봤을 때 마찬가지거든요. 그들의 삶에도 동료가 있어야만 되는 거예요."(김영수 외, "통합돌봄에서 마을돌봄의 역할 현장연구" 89쪽에서 인용)
이런 연결망은 공동체의 위기에서 빛을 발한다. 2020년, 신천지 집회를 계기로 코로나 팬데믹이 대구에 가장 먼저 심각한 타격을 입혔을 때, 이른바 '마스크 대란'이 일어났다. 정부는 주민번호를 토대로 요일을 나눠 마스크 배급제를 시작했지만, 합법적으로 일하기 어려운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들은 사각지대에 놓이게 됐다.
전국의 구호품이 대구로 쏟아졌지만, 발달장애인들은 비장애인들과 함께 소매를 걷어 올리고 천 마스크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밤을 지새우며 만든 마스크는 발달장애인만이 아니라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에게, 독거노인에게,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사각지대의 사람들에게 돌아갔다. 팬데믹이 더 크게 확산하자, 발달장애인 모임은 대구 중구 쪽방촌으로 찾아가, 구호품을 나누는 일에 나섰다.
위기의 국면에서도 그들은 도움을 받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공동체의 당당한 성원이었다. 이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다양한 네트워크는 마을에서 일어나는 각종 행사와 축제들과 얽히고설켜, 끈끈한 유대감을 형성한다. 그렇게 안심마을은 발달장애인을 마을이 아니라, 장애인과 비장애인으로 구분되지 않는, 그냥 '안심마을 사람들'로 통칭되는 마을이 되었다. 좋은 일이라도 오래 하면 힘들고, 같이 부딪히다 보면 서로 싸우기도 하는, 그런 마을 말이다.
안심마을의 연결망
안심마을의 사례는 공동체 활동이 어떤 모습과 형식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적지 않은 시사점을 준다. 특히 공동체를 조직하는 방식은 남다르다.
안심마을은 다양한 복지기관과 단체, 협동조합과 사회적 기업 등 사회연대경제 조직들, 로컬푸드와 마을 카페, 주민단체 등 공동체 조직들이 얽히고설켜 있다. 그러나 다른 지역에서는 보통 이런 조직들이 서로의 관계망을 형성하기보다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안심마을에서 돌봄, 사회연대경제, 공동체 활동 등은 서로 독립된 영역이 아니라 역할 분담일 뿐이다. 물론 그렇게 분담된 역할도 명확한 경계가 있거나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서로의 필요에 따라 단체나 조직을 만들고, 서로 도우면 그만이다.
그러나 여기에 예산과 '사업'이 투여되면 문제는 달라진다. 대게의 경우, 행정의 사업 카테고리에 따라, 보조금이나 지원 예산의 출처에 따라, 현장도 구획되기 마련이다. 비슷비슷한 사업이 예산의 출처에 따라 우후죽순 만들어졌다 사라지고, 성과보고회와 마을 축제 같은 것도 어디에서 예산이 나오냐에 따라 제각기 열리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안심마을축제 안심마을의 축제는 여러 단체가 함께 준비하고 개최한다.
대구시마을공동체만들기지원센터
안심마을에서 이런 문제를 해결한 방법은 이미 마을 곳곳에 뻗어 있는 연결망이었다. 2013년 3월 창립한 안심협동조합을 모태로 2019년 7월 결성한 '안심마을 사람들'에는 25개 단체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느슨한 네트워크를 표방하는 '안심마을 사람들'은 각자의 활동에서 서로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을 공유하거나, 지역 내 공동 관심사를 상의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공간으로 존재한다.
공동체 활동은 단지 행정의 보조금이나 지원금을 규모 있게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민 주도의 공동체, 조금 어렵게 말하면 민간 차원의 거버넌스를 튼튼히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마을의 여러 조직과 사람 간의 거버넌스를 튼튼하게 만들기 위해 꼭 사업을 많이 하거나, 여러 분야를 포괄할 필요는 없다. 튼튼한 거버넌스, 공동체는 서로 간의 관계, 이 관계에 대한 신뢰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야 신뢰에 기반한 해결책이 나온다.

▲안심마을 공동체 출처: 이형배. 2015. "도시 속 행복한 마을살이: 대구 안심마을 사례". 《국토》. 통권 제404호. 일부 수정.
손우정
관계가 살아남을 수 있게
그렇다고 이런 안심마을의 공동체 활동이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하다고 단언하기에는 이르다. 안심마을의 활동 역시 다른 여러 사회연대경제나 마을공동체 조직처럼, 늘 수많은 난관에 마주하고 있다. 대표적인 난관은 역시 돈, 재정적 기반의 문제다.
물가가 오르고 소비 심리가 위축되면, 협동조합도 어려움에 처한다. 사회적 기업이나 마을 기업처럼 아무리 취지가 좋더라도 수익이 줄거나 적자가 나면 마을 일자리 역시 위협받는다. 정부의 지원을 받아 여러 사업을 활발하게 펼칠 수 있었지만, 대출 상환이 다가오면 목이 타는 것도 어쩔 수 없다. 다른 지역의 자산화 사업(지역 건물 등을 공동으로 매입해 마을의 공동 자산으로 만드는 일)처럼, 안심마을의 자산화 사업도 금리의 공포에서 쉽게 벗어나기 어렵다.
공동체적 연대망과 저력으로 웬만한 위기는 손에 손잡고 헤쳐갈 수 있다고 해도, 근본적 처방은 될 수 없다. 안심마을에서 주민들이 만든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경제 조직들은 20여 개에 이르고 각종 주민단체나 조직은 10여 개가 있다. 그러나 각종 조직의 총회 때가 되면 "아직 안 망하나?"하는 질문이 잦다.
"흔히 이야기하는 바우처 사업들은 협동조합들도 국가로부터 예산을 지원받아서 사업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갈 수 있어요. 그렇지 않은 일반 협동조합이나 사회적협동조합들 같은 경우에는 다들 고전을 면치 못하죠. '안심협동조합'만 하더라도 매번 총회 때 가면 '문 안 닫나?', '안 망하나?' 이러는데도 이제 갈 수 있는 거는 그것도 사람인 것 같아요. ···(중략)···'진짜로 위기다'라고 했을 때 거기에 관심 있는 많은 마을 사람들이 또 십시일반 지원을 하면서, 어떤 형태든 유지되어 갈 수 있도록 지금까지 끌고 오고 있는 것 같고요."(김영수 외, "통합돌봄에서 마을돌봄의 역할 현장연구" 인용)

▲안심마을사람들 안심마을의 네트워크인 '안심마을사람들'이 마을 공동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대구시마을공동체만들기지원센터
행정은 지역의 복지를 위해 많은 일을 하지만, 모든 일에는 항상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이 보이지 않는 영역을 훌륭히 채울 수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공동체의 관계망이다. 그래서 마을 공동체 사업은 대상이 아니라 '관계' 지원에 초점을 맞춘다. 다만, 그 관계를 유지하는 것에는 어쩔 수 없이 비용이 든다.
마을의 공동체적 관계를 기반으로 발달장애인과 함께 상품을 만들고, 이 상품을 판매한 수익으로 일자리를 만드는 메커니즘은 간혹 작동이 안 될 때가 있다. 의미가 좋더라도 냉정한 시장 경쟁을 통해 수익이 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일도 점차 뒷전으로 밀려난다. '십시일반'에도 한계는 있다.
뒷전으로 밀려나지 않게, 지속 가능한 기반이 좀 더 튼튼해질 수 있도록 지원할 수는 없을까? 대상이 아니라 관계에 지원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 관계가 공동체를 어떻게 바꿔 나갈 수 있을까? 안심마을의 사례는 완벽한 성공 사례라고 규정하기에는 아직 이르지만, 분명 하나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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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안심'되는 마을... 대구에 이런 곳이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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