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 도곡 신덕리 소나무 신덕리의 소나무는 단순한 경관 요소를 넘어 세월을 품은 상징이며, 지역의 역사와 정신문화가 응축된 살아 있는 유산이다.
김일호
지난 7월 초순, 35도의 뜨거운 햇살이 도곡 벌판을 달구는 한여름 날, 지석천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따라 동네 어귀에 이르면 현대의 선과 전통의 결이 어우러진 대문과 담장 사이로 바람과 햇살, 세월을 품은 채, 마치 시간의 문지기처럼 신비롭고도 장엄한 자태로 한 그루 소나무가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서 있다.
이곳은 전남 화순군 도곡면 신덕리. 지석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면 종괘산에서 이어지는 능선 아래 아늑하고 평온한 마을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마을에는 소나무 뿐 아니라, 마을 천을 따라 늘어선 왕버들과 아름드리 팽나무가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마을의 내력을 증언한다. 특히 2001년 보호수로 지정된 수령 250년의 왕버들은 가지마다 시간의 흔적을 켜켜이 품고 있다.
그 옛날, 삶과 죽음을 함께한 소나무
2022년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일반인 1200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선호 나무 설문조사 결과, 37.9%가 소나무를 가장 좋아한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소나무를 가장 좋아하는 이유로는 경관적 가치(29%)와 환경적 가치(24.8%)를 각각 꼽았으며, 설문 대상자의 83.5%는 소나무림이 자신의 삶에 매우 큰 영향을 주고 있다고 답했다.
한국인이 유독 소나무를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소나무는 단순히 나무를 넘어 정신적·문화적 상징으로 우리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전통 마을에서는 소나무가 마을의 정체성과 공동체 의식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장수와 절개의 상징 소나무는 사계절 내내 푸르름을 유지하는 상록수로 불변의 의지를 상징한다. 그래서 십장생(十長生) 중 하나로 여겨지며 오래도록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목으로 인식되었다.
도곡면 신덕리에 있는 소나무의 붉은 나뭇결에는 오랜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이 소나무는 수령 약 300년, 가슴높이 둘레 3m, 나무높이 17m에 달하는 아름다운 노송이다. 1998년에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또한 1985년 화순군 향토문화유산 제8호로 지정된 한산 정씨 삼강문의 유서 깊은 문중 공간에 자리하고 있어, 오랜 세월 마을과 후손을 지켜온 존재로 단순한 자연 유산을 넘어 역사적·문화적 의미도 함께 지니고 있다.
마을 어귀나 중심에 소나무를 심는 전통은 마을을 지키는 신성한 존재로서의 의미와 함께 풍수적으로 좋은 기운을 불러들이고 나쁜 기운을 막는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소나무는 인간의 삶과 함께하는 동반자 나무로 막 태어나면 솔가지로 금줄을 치고, 소나무로 지은 집에서 송편을 먹고, 소나무 속껍질인 송기를 벗겨 먹었다. 자장개비(삭정이), 갈퀴나무 등 소나무 땔감으로 불을 지핀 밥을 먹고 살다가 관솔불을 켜고 소나무 관으로 들어간 후, 무덤 주변에 소나무를 심음으로써 삶과 죽음의 모든 순간을 소나무와 함께했다.
마을 어른들은 소나무가 하늘과 땅을 잇는 숨결이며, 잡귀를 막고 정화를 돕는 신성한 경계의 나무로 마을의 기운을 지켜주는 수호신이라고 믿고 있다. 이처럼 신덕리 소나무는 단순한 경관 요소를 넘어 세월을 품은 상징이며, 지역의 역사와 정신문화가 응축된 살아 있는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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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 안 우뚝 선 시간의 문지기, 수백 년 마을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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