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메라. 자료사진.
연합=OGQ
카메라를 켜야 한다. 저장된 영상을 어떻게 쓸 것인가는 나중에 생각할 문제이고 되도록 많이 찍는 게 급선무다. 그러나 원형의 버튼을 누르기 전에 언제나 조금은 주저한다. 당장 찍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지금은 아무것도 찍고 싶지 않다는 반발심이 뒤따르고 두 마음은 팽팽하게 맞선다.
주저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그중 밖에서도 휴대 전화를 내려놓을 줄 모르는, 촬영에만 열 올리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이유가 크다. 그런 모습은 외부와 소통할 줄 모르거나 일부러 단절되고 싶은 것처럼 보이고 여유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그 외에 여러 사람이 뜻을 모아 한 가지 일에 열중하는 중이라면 촬영을 구실로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다. 또 의무감에 휘둘려 아름답지 않은 영상을 남기고 싶지 않은데 아름답지 않은 것에는 나도 포함된다. 유독 피곤하고 나이 들어 보이는 모습을 되돌려 보고 이걸 완성본에 넣을지 말지 고민하는 일을 되도록 피하고 싶다.
이렇게 여러 생각이 교차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누군가가 촬영하지 않을 거냐고 묻는다. 이제부터 유튜버라고 공공연하게 말한 탓이다. 유튜버가 주저하거나 생각에 잠긴다니, 가당찮은 일이다.
최근에 책에서 '그는 원래 행동하려고 태어난 사람은 아니었다'라는 문장을 발견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하려고 태어난 사람인가? 내가 하는 일, 기쁨을 느끼는 순간, 욕망이 향하는 곳을 두루 종합하면 나는 '표현하는 사람'쯤으로 정의할 수 있다. 촬영 버튼을 누르는 것도 주저하면서 '표현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지만 말이다.
물론 표현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그렇지만 이 시대에 '표현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내가 무슨 곡인지도 모르는 음악에 맞춰서 이른바 챌린지 영상을 쉬지 않고 업로드하거나 어떤 밈이든 척척 따라 하는 사람이 떠오른다. 주저하거나 수줍어하지 않고 마치 경쟁하듯 표현을 밀어붙이는 사람.
그런 사람은 언제 봐도 놀랍고 솔직히 말하면 두렵기도 하다. 그들의 거침없는 몸짓은 고독이나 침묵이라고 불릴 만한 작은 틈조차 필요하지 않다. 표현할지 말지의 여부, 또는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고민하다가 사그라드는 영감도 없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도 없다.
멈추지 않는 표현의 연료는 뭘까. 여러 가지 요인 중에 불안이 상당한 지분을 차지할 것이라고 본다. 그것도 보통의 불안이 아니라 전염성이 강한 불안일 것이다. 불안이 스며든 표현은 다수보다 한 발쯤 앞서 있고 결과물을 감상하는 사람까지 고양하는, 반짝이고 사랑스러운 면을 간직한 표현과는 성질이 다르다. 대량의 멈추지 않는 표현은 하나의 대열에서 동시적으로 일어나고 당장 무엇이든 표현하지 않으면 뒤로 밀려날 것 같은 위태로운 인상을 준다.
수치심
표현이 동반하는 불쾌감을 처음으로 인식하게 한 건 구식 카메라였다. 아이 시절의 모습이 사진으로 남은 건 너덧 살 무렵부터다. 앨범에는 그보다 더 어릴 때 사진도 남아 있지만 그 사진들은 카메라를 빌렸거나 기념할 만한 날에 찍은 것이고 생활감이 묻어나는 사진이 수십 장씩 등장한 건 우리 집에 카메라가 생긴 이후였다.
그 시절의 나를 찍어준 사람은 지금의 나보다 훨씬 젊은 부모님이다. 물건을 갖는 것보다 돈을 쓰는 감각 자체를 좋아하는 아버지가 값이 제법 나가는 수동 카메라를 사들이는 데에 어린 두 남매를 찍어야 한다는 게 좋은 핑곗거리였다.
귀엽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깜찍하게 웃고 있는 사진도 있지만 사진 찍히는 걸 한 번이라도 좋아했던가 떠올려보면 회의감이 든다. 사진 찍기는 부모님이 주관하는 의식 같은 것이었고 그에 따른 만족도 그들이 더 크게 느끼는 것 같았다. 나는 사진으로 남들과의 다른 점을 확인하는 일에만 열중했다.
또래 아이들보다 체격이 크고 발육이 빠른 게 당시로선 큰 문제였다. 다른 아이들보다 목이 하나 더 껑충하게 올라온 큰 키와 일찍 성숙한 몸이, 나를 아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른도 아닌 어정쩡한 존재로 보이게 했다. 아이가 아이답지 않다는 게 나에게는 부끄러움을 넘어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일찍부터 입력된 가르침의 탓인지, 아니면 흔히 천성이라고 하는 것 때문인지 몰라도 나는 작은 일에도 수치심을 느끼곤 했다. 수치심은 판단보다 빠르게 찾아와서 무엇을 판단할 때는 수치스럽다는 감정이 벌써 지나간 후였다.
이런 내가 어떻게 사진을 좋아할 수 있겠는가. 사진이라는 건 한순간의 결정적인 것을 그대로 보여주며 수정도 불가한데 영원히 남는다는 점에서 잔인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예를 들면 나도 여느 아이들처럼 과자나 아이스크림을 무척 좋아했고 사진마다 그것들이 찍혀 있었다. 나는 과자 포장지의 입구를 촘촘하게 주름잡아 손에 쥐고 있거나 한두 입만 더 먹으면 사라질 아이스바를 위태롭게 들고 있다.
과자, 빵 조각, 아이스크림을 쥔 작은 손은 어찌나 야무진지 그것을 누군가와도 나누지 않을 것이며 절대적인 내 거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그런 사진이 여러 장, 적나라하게 남아서, 가족들에게 그 사진은 '얘는 항상 먹을 걸 들고 있네' 하는 웃음거리가 됐고 나는 그조차도 성장이 빠른 몸과 결부시켜 수치스럽게 여겼다.
내면의 모순

▲ 핸드폰. 자료사진.
연합=OGQ
이 감정은 학교라는 최초의 사회 집단에서도 나를 따라다녔다. 소풍이나 운동회가 끝나면 교실 뒤편의 벽면이 사진으로 도배되다시피 하던 풍경이 떠오른다. 일차적으로 샘플을 인화해 전시하면 그중에서 필요한 사진의 뒷면에 출석 번호를 적고 며칠 뒤에 장당 200원 남짓한 돈을 내고 사진을 찾곤 했다. 그때도 나는 추억이 물질로 남았다는 만족감보다 이상하게 찍힌 내 모습이나 사진 자체로 인한 불쾌감에 몰두했다.
지금은 '아날로그'라는 이름으로 추억되는, 말도 안 되게 느린 그 사진들이 그때는 가장 인스턴트한 것이었다. 그러다가 2000년대 초반에 갑자기 등장한 디지털 기기들은 표현의 양적인 한계를 모두 없애버렸다. 사진이 현물이 아니라 파일로 존재하는 것도 모자라서 무제한으로 복제하거나 삭제하고 옮길 수 있다니!
근래 그 디지털카메라가 'Y2K 감성'이라는 유행을 타고 재등장했다. 시대를 불문하고 첨단의 반작용으로 복고는 존재하기 마련이지만 구글이 벌써 일인칭 영상을 자유자재로 찍을 수 있는 스마트 안경에 인공지능(AI)까지 추가했다(한편으로 나는 누구보다 빠르게 일인칭 영상을 찍어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런 때에 사람들이 디지털카메라의 저성능, 저화질에서 위로를 얻는 건 의미심장하다.
표현에 따른 불쾌감이 집단적인 피로를 유발한 걸까? 필름 카메라처럼 너무 불편하지 않으면서 약간은 후진적인 성능에 만족하고 안심하는 마음. 그 마음은 표현의 불쾌감은 거부하면서 표현하는 사람이라는 허영은 마음껏 채우고 싶은 내 마음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나는 그런 마음으로 오랫동안 글쓰기에만 머물렀다.
글을 쓰는 사람은 뒤에 숨겨져 있고 비교적 신비한 존재로 남을 수 있다. 요즘은 아무도 글을 읽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지만 그조차도 허영심을 충족시켜 주기에는 나쁘지 않았다. 지극히 소수만 글을 읽는다면 그들은 문해력, 취향, 안목이 어느 정도 뒷받침되는 사람들이고 그런 사람들에게 평가받는 건 불특정 다수의 먹잇감이 되는 것보다 나을 거라고 믿었다. 아니, 내 글은 그런 사람들에게만 읽히길 바랐다.
그러면서도 더 많은 사람이 내 글을 읽길 바랐고 그 바람으로 글과는 비교할 수 없이 큰 두려움과 불안을 유발하는 영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나는 글과 마찬가지로 영상도 더 많은 사람이 봐주길 바라는 동시에 나의 허영을 채워줄 사람들만이 소비하길 바란다. 내면의 모순을 정돈하고 완결된 결과물을 만들고자 시작한 작업이 어떻게 된 일인지 모순을 더 증폭시키는 것 같다. 앞으로 이 모순에 질서를 부여할 수 있을까? 아니면 이 모순이야말로 내가 지속적으로 표현해야 할 대상인 걸까?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운동하는 여자>를 썼습니다.
오마이뉴스 '주짓떼라의 유튜브 생존기', 한겨레21 '액션 읽는 여자', 여성신문 '운동사이' 연재 중입니다.
공유하기
이제부터 '유튜버'라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녔는데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