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두 국가, 슬기로운 공존 방법은

[주장] 현실과 제도의 불일치, 통일을 지향하는 두 개 국가로 가자

등록 2025.08.16 18:32수정 2025.08.19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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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연천군 한반도통일미래센터의 38선
경기도 연천군 한반도통일미래센터의 38선 정일영

지난 8월 15일 이재명 대통령은 광복 80주년 경축사를 통해 "남과 북은 서로의 체제를 존중하고 인정하되 평화적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의 특수관계"라 지적하고 "현재 북측의 체제를 존중하고, 어떠한 형태의 흡수통일도 추구하지 않을 것이며 일체의 적대행위를 할 뜻도 없음"을 밝혔다.

관련하여 지난 8월 13일 국정기획위원회는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로 '화해·협력의 남북관계 재정립 및 평화 공존 제도화'를 제시하고 이를 위해 1972년 독일통일의 기초가 된 '동서독 기본조약'을 참조한 '남북기본협정' 체결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남북관계에서 현실과 제도의 부조화로 발생한 불안정을 해소하고 새로운 남북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의지와 고민으로 읽힌다.

이 글에서는 변화된 한반도 정세에 맞는 새로운 남북관계의 성격을 어떻게 모색할 것인지 정리해 본다.

한반도의 두 국가, 그때 그때 다르다?

국제정치에서 한반도에는 두 국가가 존재한다. 다만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이 존재를 그때 그때 달리 규정해 왔다.

먼저 한반도에서 각각의 정부를 수립한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서로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아 왔다. 대한민국은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를 영토로 규정하고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해 왔다. 북한 또한 대한민국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았으며 '해방'해야 할 대상(공간)으로 규정해 왔다.

서로를 부정해 온 남과 북은 냉전의 해체 과정에서 서로를 인정하는 일련의 조치를 취했다. 남과 북은 1991년 9월 유엔에 동시 가입함으로써 국제정치의 영역에서 서로의 국가성을 인정하게 된다. 외교부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194개국, 북한은 159개 국가와 수교한 상태이다. 국제정치에서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분명 개별 국가이다.


탈냉전의 변화 속에 남과 북은 제도와 현실의 불일치를 해결하고자 했다. 서로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지만, 국제정치에서 두 개 국가로 존재하는 이 이상한 상황을 '특수한 관계'로 수렴한 것이다.

관련하여 남북은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를 통해 "쌍방사이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 관계라는 것을 인정하고 평화통일을 성취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을 경주할 것"에 합의하게 된다. 소위 남북의 특수관계론이 등장한 것이다.


더 이상 '특수'하지 않은 남북관계

남북의 특수관계론은 국제정치에서 존재하는 두 국가 규범과 남과 북이 서로를 규정하는 국내 규범, 즉 상대방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규범을 절충한 방법이었다.

남북관계는 특수하다는 명제는 정전체제 하에서 남북 당국이 협상 공간을 마련하고 교류와 협력을 진행할 수 있는 정치적 자율성을 부여했다. 이는 2000년대 이후 남북관계의 황금기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러한 자율성은 상대적으로 불안정한 것이었으며 남북관계는 제도화되지 못하고 쉽사리 무너졌다. 서로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상황에서 체결된 남북합의서는 '신사협정'으로 취급되며 법적 효력을 잃고 사문화되기 일쑤였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남북관계는 어떤 의미로 특수한가? 남북관계는 한반도 정전 체제하에서 서로를 적대하고 있지만, 통일을 지향하는 관계라는 점에서 특수하다. 그런데 이 특수성이 무너지고 있다. 어떤 면에서 그런가?

무엇보다도 통일이란 공동의 목표가 흔들리고 있다. 북한은 2023년 12월 김정은 위원장이 '적대적 두 국가'를 주창하며 남북관계가 "더 이상 동족관계, 동질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 전쟁 중에 있는 완전한 두 교전국 관계"라고 주장했다. 그는 "헌법에 있는 '북반부',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이라는 표현들이 이제는 삭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주장은 선대 수령들의 유훈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돌이킬 수 없는 대남·통일정책이라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북한의 지도자가 그러한 정책 의지를 표명한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관련 기사: 김정은의 '두 국가론', 성급한 판단은 위험하다, https://omn.kr/28kl0).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어떠한가? 우리 헌법과 법률은 통일을 국가 목표로 명시하고 있다. 다만 우리 국민의 통일 인식은 역대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의 통일의식조사(2024.11)에 따르면, '통일이 필요하다'는 우리 국민의 응답은 36.9%로 '필요하지 않다'는 의견(35%)보다 높게 나타났지만, 역대 가장 낮은 수치를 나타냈다. 또한 통일이 언제 가능할지에 관한 질문에는 '불가능하다'는 의견(39%)이 전에 없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왜 통일해야 하나? 답을 찾지 못하는 미래세대

우리 국민의 통일 인식이 악화한 것은, 단기적으로 통일의 대상인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등 우리에게 위협을 가하고 그에 대응해 우리 정부, 특히 윤석열 정부가 대북 강경정책과 통일독트린으로 대표되는 흡수통일론을 펼치며 남북갈등이 고조된 결과라 할 수 있다. 결국 악화된 통일 인식은 남북관계의 회복을 통해 일부 복원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우리 미래세대의 통일 인식이 악화하고 있으며 이는 단순히 한반도 정세의 문제를 넘어선 구조적인 결과라는데 있다. 위의 조사에서 미래세대인 20~30대는 '통일이 필요하지 않다'는 의견이 '필요하다'는 의견보다 2배 더 높게 나타났다.

하나의 민족이니 통일해야 한다는 당위론이 퇴색하는 상황에서 미래세대는 왜 통일을 해야하는지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미국이나 중국보다 북한에 대한 이해가 낮은 우리 통일교육의 문제이기도 하다. 북한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 통일을 원하느냐고 질문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결국 한반도에 두 개의 국가가 실존하는 상황에서 '통일을 지향하는'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활용한 관계 설정이 점차 현실과 멀어지고 있다.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서독이 '사실상의 두 국가관계'를 수용한 지혜

우리 헌법은 제4조에서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통일에 대한 우리 국민의 인식이 악화하고 있으나 역설적으로 남북관계가 최악의 상황임에도 통일은 여전히 더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한반도 분단체제를 해소하고 평화를 정착하기 위해서 통일이 종국적인 대안임도 분명하다.

다만 한반도에 사실상 실존하는 두 개의 국가를 특수성론에 묶어둘 수만은 없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관련하여 최근 남북관계는 동서독 관계와 오버랩되는 부분이 많다. 동독은 동서독 관계를 별개의 두 개 국가라 주장했고 서독은 기본법(헌법)상 독일 민족의 통일 노력을 지속하는 상태에서 이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또한 국제정치에서 실존하는 두 개 국가를 마냥 부정할 수도 없었다. 과연 서독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1969년 동방정책의 상징인 빌리 브란트가 총리에 취임한 이후, 서독은 동독의 '국가성'을 사실상 인정하면서도 동서독 관계는 '외국'이 아닌 '특별한 성격'을 갖는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사실상 두 국가관계를 인정하면서도 동독에 대한 국제법적 국가 승인을 거부한 것이다. 이러한 접근은 당시 야당의 제소로 위헌 재판까지 열렸지만, 합헌으로 판결되었다.

결국 서독의 두 국가 규정은 현존하는 두 국가라는 현실을 수용하면서도 통일을 지향하는 두 국가관계라는 '특수성'을 유지함으로써 동서독의 자율성을 구현할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을 마련하고 제도적 불안정을 해소한 접근이었다. 우리가 북한을 국가로 승인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혼란을 제도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새로운 남북관계에 관한 생산적 논의를 기대하며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는 긴장감이 속에서도 상호 신뢰 조치를 조심스럽게 진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변화된 한반도 정세의 현실과 제도, 그리고 통일에 대한 우리 국민의 인식 변화를 반영한 새로운 남북관계에 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우리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국가로 인정하는 논의 자체에 이념적 평가를 덧씌워왔으며 그런 이유로 변화된 현실에 눈감아 왔다. 앞서 언급한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북한도 하나의 국가다'라는 의견에 응답자의 52.1%가 '그렇다'고 답했고 '아니다'라는 응답은 11.3%에 그쳤다. 이제 새로운 남북관계를 이야기해야 한다.

국제정치에서 실존하는 두 개의 국가, 그 상대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더 이상 부정할 수 없으며 부정할 필요도 없다. 다만 한반도에 존재하는 이 두 국가관계가 서로 상생하며 평화와 통일을 지향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지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정일영씨는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입니다. 관심분야는 북한 사회통제체제, 남북관계 제도화, 한반도 평화체제 등으로, <한반도 리빌딩 전략 2025>, <한반도 오디세이>, <북한 사회통제체제의 기원>, <북한경제는 죽지 않았습니다만>, <평양학개론> 등을 집필했습니다.
#남북관계 #두국가 #대한민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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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정일영입니다. 저의 관심분야는 북한 사회통제체제, 남북관계 제도화, 한반도 평화체제 등입니다. 주요 저서로는 [한반도 리빌딩 전략 2025], [한반도 오디세이], [평양학개론], [북한경제는 죽지 않았습니다만], [속삭이다, 평화], [북한 사회통제체제의 기원]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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