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사를 소개하는 소책자들이 인촌 생가의 건물마다 꽂혀 있다. 인촌 김성수의 생애를 미화하는 내용으로, 한 아이는 흡사 '종교 교리서' 같다고 말했다.
서부원
심지어 그의 친일 행적을 부정하는 글마저 버젓이 내놓고 있었다. 그가 식민지 조선의 청년들에게 학병을 권유하는 글은 언론사의 기자들이 인촌의 이름을 도용해 쓴 거라는 내용이다. 이는 인촌을 기리는 기념사업회 측의 일방적 주장일 뿐 역사적 사실로 공인된 게 아니다.
아전인수격 주장도 서슴지 않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인촌의 정치, 사상적 계승자라고 규정하는가 하면, 인륜적 제도와 민주공화국의 틀을 만든 정치인으로 소개하고 있다. 해방 후 토지개혁을 가능하게 했다는 데에 이르면,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들었다'는 김일성 저리 가라다.
그의 친일 행적을 감추기 위해 김일성까지 끌어들인 대목도 나온다. 민족의 영원한 스승인 그를 친일파로 내모는 파렴치한 행위의 배후에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끊어 놓으려는 김일성 집단의 음모가 있다는 거다. 극우 반공주의자로 잘 알려진 이철승의 발언을 인용한 것이다.
제2대 부통령을 역임했다는 화려한 이력으로도 그의 친일 논란을 잠재울 순 없다. 누구든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평가받는 게 옳다. 아이들조차 그의 생가에서 벌이는 '광복 잔치'가 그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친일 논란을 숨기기 위한 몸부림으로 여겨질 뿐이라고 말했다.
뼈아픈 교훈 증명하는 역사의 현장
하물며, 이곳은 그의 친동생인 수당 김연수의 생가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와 만주국 명예 총영사까지 역임한, 대표적인 친일 기업인이다. 노골적인 친일 행각을 벌인 그는 해방 직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가장 먼저 체포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생가 입구 안내판에는 수당 김연수를 '근대 공업화의 선구자요, 민족 자본 육성의 수범자'로 소개하고 있다. '공사(公事)에 헌신하여 우리 사회에 크게 이바지하였다'는 찬사까지 덧붙였다. 스스로 매판 자본가였다고 실토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는 곡학아세와 아첨이 놀랍기만 하다.
인촌과 수당이 나고 자란 이곳은 '역사적 성찰'의 공간이 되어야지, '광복 잔치'를 벌일 곳이 아니다. 거칠게 말해서, 이곳은 '친일하면 3대가 흥하고,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뼈아픈 교훈을 증명하는 역사의 현장이다. '잔치'라는 말이 독립운동에 대한 조롱처럼 들린다.
"탈이념도 좋고 실용도 좋지만,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광복 잔치' 준비로 들뜬 인촌 생가를 나오며 한 아이가 내뱉은 외마디 소감이다. 뜬금없이 '대한민국의 정상화'는 친일 잔재 청산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친일파 집안에서 광복과 건국의 이름을 내걸고 잔치를 벌인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목울대를 세웠다.

▲ 학교로 돌아오는 길, 휴게소 삼아 박관현 열사의 생가에 들렀다.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는 동아리 선배가 열사의 동상 앞에서 그의 불꽃 같았던 생애에 대해 후배들에게 설명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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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 휴게소 삼아 5.18 민주화운동 당시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장이었던 박관현 열사의 생가에 들렀다. 그는 대학 진학률이 10% 남짓에 불과했던 당시 판검사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법대에 진학한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열악한 삶을 목격한 뒤 그의 인생행로가 바뀌게 된다.
그는 자신의 출세와 세속적 성공보다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겠다고 다짐했다. 시민들 앞에서 민주화의 염원을 담은 그의 사자후는 그에게 '민주화의 새벽 기관차'라는 별칭을 선사했다. 스물아홉의 젊은 나이에 옥중에서 사망했지만, 그의 이름은 후세에게 영원히 기억되고 있다.
비록 시대는 다를지언정 공동체를 위한 그의 헌신과 불꽃 같은 생애는 오로지 일신의 영달을 위해 민족을 배신했던 친일파들의 비루한 삶과 너무나 대조적이다. 아이들은 '청년의 길'이 새겨진 열사의 동상 곁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인촌과 수당을 반면교사 삼으려는 뜻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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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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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집안에서 연 '광복 잔치', 이게 말이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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