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미 사건 조사 각하를 결정한 진실화해위원회 전원위원회 회의(2023.5.24)를 앞두고 '베트남전쟁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 네트워크'가 회의실 앞 복도에서 조사 개시를 촉구하는 피켓팅을 벌였다.
한베평화재단
항소심에서조차 실망스러운 판결이 나온 지금, 나는 한걸음 물러나 이번 진화위 사태를 다시 생각해보고자 한다. 사실은 당시 진화위 전원위원회에서 위원장의 의지가 있었다면, 혹은 윤석열 정권이 아닌 민주당 정권의 인사가 위원장이었다면 하미 사건 조사는 개시될 수 있었다. 재판에서는 핵심이었지만 조사 범위에 대한 해석 공방은 어찌보면 부차적이다. 당시 전원위원회에서는 양자가 다양한 쟁점에서 갑론을박을 벌였다. 이것은 베트남전 과거사 청산 문제를 두고 진보와 보수가 벌인 논쟁이었고 그것은 한국 사회의 베트남전 갈등의 축소판이기도 했다.
사실 진화위에 하미 사건이 처음 접수되었을 때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했던 정근식 위원장이 재임 중이었고 그의 임기중 7개월의 시간이 있었음에도 하미 사건이 조사 개시되지 못한 아쉬운 점이 있었다. 퇴임 후 정근식은 한 기고글에서 자신이 하미 마을을 찾은 일을 소개하며 "진화위의 (각하) 결정은 한때 진실규명의 책임자로 일했던 나에게도 큰 부담이었다. 유족들을 위로하고 희생자들에게 작은 사과라도 하고 싶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베트남전 진실규명을 거부하는 한국 정부 기관들
한국의 정부 기관들 중에 그나마 진실화해위원회가 베트남 피해자들의 진실규명 요구를 들어줄 수 있는 곳이었다. 사과도 배상도 아닌, 그저 진실규명이었다. 정권을 막론하고 한국의 정부 기관들은 베트남전 진실규명 문제를 회피하고 외면해왔다. 국방부는 2019년 베트남 피해자의 청원 요구를 "전투사료에 학살 관련 내용이 없다"는 무성의한 이유로 거부했다. 국정원은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자료가 있음이 확인되었지만 관련 국가배상소송을 이유로 사법부가 자료 제출을 요구했음에도 안보와 외교를 이유로 거부했다. 외교부는 베트남 정부의 실용주의 외교의 다면적인 면모를 단순화시켜 자신들에 유리하게 '베트남은 사과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언설을 유통시켜왔다. 지금의 한국 정부에는 희망이 없다.
법과 제도는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시대가 요구하는 정의와 인권의 가치 실현에 한계를 갖는다면 지도자 혹은 구성원들의 과감한 결단으로 법과 제도를 유연하게 적용해 절규하는 피해자의 목소리와 시대의 과제에 응답해야한다. 항소심 재판부는 과거사법의 입법 취지를 살펴볼 때도 베트남전 피해자는 해당사항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을 판결문에 남겼다. 그러나 정작 과거사법 입법에 참여했던 장완익 변호사는 이번 항소심 판결 소식을 듣고 "과거사법에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에 대해서는 대상을 떠나 조사 개시를 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있다"며 입법에 참여한 법조인으로서 "깊은 자괴감을 느낀다"고 탄식했다.

▲ ‘이재명 대통령에게 요구하는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등 인권침해 진실규명 촉구 1만 541명의 시민 청원’을 6월 24일 대통령실에 접수한 후 시민들이 대통령실 앞에서 대형 피켓팅 액션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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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상고 취하, 지금 이재명 정부가 할 수 있다
베트남의 피해자들과 한국 시민사회는 지난 10년간 법과 제도를 통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진실규명 투쟁을 벌였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의 싸움으로 투명해진 것이 있다. 한국의 정부 기관들은 베트남전 진실규명을 강력히 거부한다. 22대 국회에서의 베트남전 진실규명 특별법 입법에도 그들은 저항할 것이다.
체제와 시스템의 보수성이 강할 때 희망을 걸 수 있는 것은 사람이다. 구성원들과 지도자의 용기와 결단이 변화를 이끌 수 있다. 퐁니 퐁녓 학살 피해자 응우옌티탄의 국가배상소송이 1심과 2심에서 승소한 상황에서 피해자 탄과 시민사회는 지난 6월, 1만 시민 청원을 제출하며 국방부의 대법원 상고 취하를 최우선 사항으로 대통령에게 요구했다. 상고 취하는 국방부가 늦었지만 스스로 책임을 인정한다는 측면에서, 가장 책임있는 한국 정부 기관의 태도전환이라는 큰 의미가 있으며 다른 기관들에도 긍정적인 연쇄효과를 줄 수 있다. 퐁니 퐁녓 사건이 최종적으로 승소한다면 하미 사건도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가해자의 자리에 스스로를 정체화하고 책임을 다하는데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진화위 사태와 사법부의 실망스런 판결로 이재명 대통령의 결단이 더욱 요구된다. 그는 야당 대표 시기 베트남전 민간인학살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사법부의 판결을 환영하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베트남전 진실규명에 대한 의지를 품고 있는 그가, 베트남에 대한 말뿐인 '사과'나 '반성'대신 국가지도자로서 용기있는 결단을 통해 베트남전 진실규명의 역사적 전환점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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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베평화재단 사무처장. 평화란 고통을 이해하려는 마음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26살이었던 2008년부터 베트남전 진실규명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 평화활동가로서 삶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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