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우리를 해방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등록 2025.08.17 16:12수정 2025.08.17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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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과제인 분단이 만들어낸 조난자들이 바로 북향민들이고, 해방의 공간으로 찾아온 북향민들의 한국에서 새 삶이 다시 해방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탈북'이라는 정체성이 장점으로 전환되는 그날에 이들이 진짜 해방에 한 걸음 다가가게 될 것이고, 통일이 되는 날에 이들의 여정이 진짜 해방을 맞이하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 아직 우리를 해방하지 못한 것이 많다. 우리는 여전히 해방을 위해 싸워야 한다." (조경일 작가)

미완의 해방

해방 80주년이다. 여기서 해방은 1945년 일제 식민지로부터의 해방이며 독립국가 건설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해방 3년 후 한반도는 하나의 독립된 국가 대신 두 국가로 출발했다. 남과 북으로 갈라져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게 벌써 77년째다. 우리는 곧 분단 80주년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8.15 해방은 식민지 상태를 해방했지만 우리는 다시 분단되어 서로에게 총구를 들이댔다. 외세로부터 해방되었지만, 우리는 서로를 적대시하는 분단에 다시 구속되었다. 언제든 다시 전쟁이 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태로 불안한 평화를 유지하고 있다.

'특수한 관계'로 통일을 지향해 가자던 남북은 이제 적대적 두 국가체제가 돼 버렸다. 남과 북이 아니라 '조선'과 '한국'의 두 국가 관계로 기정사실화 됐다. 그래서 해방 80주년을 마냥 기쁨으로 축하하기에는 마음이 아주 불편하다. 어쨌든 해방 80주년을 맞아 과거를 잊지 않고 미래로 나아가자는 다짐은 여전히 필요하다. 나는 해방 80주년이 우리에게 주는 과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불과 3년 만에 해방에서 분단을 맞이한 한반도는 여전히 해방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글의 목적은 8.15 해방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또 다른 해방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나에게 해방이란

나에게 해방의 의미는 무엇일까 줄곧 생각한다. '나'라는 존재에게 해방이 무엇인지를 사유함과 더해 "우리에게 해방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질문이 필요한 요즘이라는 생각이 깊어진다. 나는 한국에는 아오지로 더 잘 알려진 함경북도 경흥군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14년을 살았다. 중국에서 2년을 살았고, 한국에서 현재 21년 차를 살고 있다. 해방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개인의 삶에 적용해본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지금 해방의 공간에 있다. 북쪽이 나에게는 억압의 공간이었으니 남쪽은 자연스레 나에게 해방의 공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한국에 도착해서야 새로운 삶을, 새로운 꿈을 얻었으니 나에게 해방의 의미는 남쪽에서 나고 자란 청년들과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매년 해방의 날이 올 때마다 특별히 '해방'의 의미를 더욱 사유하게 된다. 여전히 북쪽에 해방되지 못한 존재들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유로 떠났든 탈북한 존재들에게 한국은 해방의 공간이 분명하다. 한국에서는 적어도 '몸'과 '생각'이 구속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꿈꿀 수 있으며 시도해 볼 수도 있다. 모두가 성공하지는 못하더라도 시도는 해볼 수 있다. 다른 말로 기회가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더욱 해방의 공간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자유 대한민국이라도 불완전한 해방이다. 남과 북은 여전히 체제경쟁을 하는 듯 보인다. 정확하게는 오래전에 체제경쟁이 끝났지만, 여전히 체제경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많은 것이다. 북한 체제가 여전히 건재하니 그렇게 바라본다. 실제로 북한 김씨 가문은 독재를 공고히 했고 인민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다. 이 자명한 사실은 김일성이 사망하고 30년이 지나서도 바뀐 것이 없다. 그러니 남쪽에서는 북한 인민들을 해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 지 오래됐다.


한국에 정착한 3만 5천여 명 가까이 되는 북향민들은 해방되지 못한 북한 주민들의 실상을 낱낱이 고발하며 조속한 해방을 요구한다. 하지만 북쪽의 가해자는 4대 세습까지 준비하는 듯 건재하고, 해방자를 자처하는 남쪽은 목소리 높이는 것 외엔 딱히 관여가 없다. 게다가 방법론을 두고 갑론을박도 모자라 서로를 적대시한다. 남남갈등이다. 이런 가운데 남쪽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해방된 존재들은 가슴 한편에 고통과 부채를 안고 적응하기에 바쁘다.

그런데 남쪽에서 맞은 해방이 진짜 해방인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그럭저럭 살아가는 건 애쓰면 가능하다. 막노동이라도 하면 먹고 사는 건 해결되니 각자의 의지와 노력에 달렸다. 물론 이것도 어려운 이들이 많다. 어린 자식들과 굶어 죽는 일도 있고, 백골이 된 지 1년이 지나서야 발견되는 무연고들도 많다. 외로운 존재들이다. 북한에 비하면 천국이라는 누군가의 표현처럼, 한국은 분명 해방의 공간임에도 이들을 힘들게 하는 어떤 장치들이 있다. '탈북자'라는 꼬리표 하나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존재에 대한 차별적 인식이 만들어내는 벽들이 많다.


북향민의 주체성 확보에 대하여

그래서 뭐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나의 주장은 이렇다. 내가 바라는 것은 북향민들의 주체적 발화가 가능하고 그것이 매우 자연스러우며 비난이나 공격의 대상이 더 이상 되지 않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북향민들의 주체성 발현은 북향민 스스로에게, 소속집단에게 필수다. 더 나아가 사회통합과 통일을 지향할 때 더욱 선행되어야 할 부분이다.

또한 북향민 집단 내부의 이질성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북향민'이라는 단일한 범주는 출신성분, 탈북동기, 정착과정, 성별과 세대 등에 따라 매우 이질적인 개인들의 집합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평양출신의 엘리트 북향민과, 아오지 꽃제비 출신 북향민의 경험은 매우 다르다. 북한에서 이 둘은 각각 지배집단과 서발턴(Subaltern)이었고, 이는 그대로 남한에 와서 조차 남한 사회의 엘리트 출신 북향민들에 대한 선택적 활용으로 발화의 수단 확보의 불균형을 가져올 때가 있다.

나의 주된 관심은 북향민들의 주체적 발화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정책과 학문의 연구대상에 머물지 않고 스스로 주체적 발화자가 되어 자신의 서사를 풀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피해자로, 증언자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민주시민으로 주체성과 독립성을 확보하는 것이야말로 사회통합을 위해 나아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한다. 독재정권의 피해자로 끊임없이 피해 서사만 나열한다면, 인권탄압의 증언자로 고통의 기억만 나열하며 고통의 문화산업에 협조하는 존재로만 머물게 된다면 우리는 통일과 미래의 새로운 주체가 되기 어려울 것이다.

북향민들은 두 체제를 살았고 살고 있다. 이 경험은 불필요한 짐이 아니라 경험적 자산이 되어야 한다. 자신의 과거가 숨겨야만 하는 부끄러운 기억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 데에 도움이 되는 자산이 되어야 한다. 한국 사회가 이렇게 되도록 도와야만 한다. 북향민들이 한국 사회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정책이 필요하겠지만, 나는 북향민들의 지난 삶이 경험적 자산으로 전환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속성으로 학습된 한국인으로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공론장의 부재에 대하여

내가 대표로 이끄는 단체 '피스아고라'에서 지난달 세 번의 포럼을 기획했다. 북향민주시민포럼이다. 피스아고라는 경계에 선 청년들이 자신의 삶을 정치와 사회 속에서 자신의 언어로 발화할 수 있도록 돕는 공론장을 지향한다. 북향민, 이주민, 디아스포라 등 '내 이야기가 정치가 될 수 있을까?' 질문하는 이들이 삶의 경험을 말로 바꾸고, 그 말에서 변화가 시작되는 순간을 함께 만들어간다는 목표로 활동하고 있다. 분단으로 경직된 사회에 작은 균열을 내고, 경계인의 목소리를 주류 담론으로 승격하고, 이념적 갈등을 좁히고 평화를 넘어 통일의 비전으로 나아가자는 취지로 만들었다.

이런 목표는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민주시민의 참여로 가능하다. 북향민주시민포럼은 한국 사회에 정착한 북향민들이 사회 정착을 넘어 사회의 구성원이자 주체적인 민주시민으로서 당사자의 목소리를 사회에 발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북향민들이 한국 사회에서 민주시민으로서 주체성을 갖고 발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기획했고, 포럼의 이름도 그래서 북향민주시민포럼이다. 포럼의 이름을 이렇게 정한 이유가 있다. '북향'은 북향민 정체성을 담았다. '민주'는 민주주의, '시민'은 말 그대로 시민이다. 다소 진부한 이름 같지만, 그냥 만든 것이 아니다.

지난해 12.3 계엄선포로 사실상 내란이 발생하면서 한국의 민주주의가 견고하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말도 안 되는 국가폭력이 하마터면 우리네 일상을 지배할 뻔했다. 내가 더욱 우려하며 유심히 봤던 것은 계엄 사태 이후 북향민 사회의 분위기였다. 한 마디로 좌절감의 연속이었다. 북한인권운동을 한다던 탈북단체장들이 계엄을 계몽령이라 옹호하며 목청을 돋우는 작태들을 보면서 절망스러웠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다. 우리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민주적 절차를 존중하고 토론을 통해 타협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를 이미 오래전에 도출했다. 하지만 불법적인 계엄은 이 모든 민주적 절차를 제거하는 폭력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북한인권을 말하는 사람들의 행위가 인권을 존중하는 행위가 아닌 경우를 많이 봤다. 강경한 목소리를 낼수록 더욱 다른 인권을 짓밟는 이중적인 태도를 목격했다. 독재와 집단주의를 경험한 북향민들이 한국에서 여전히 국가폭력을 옹호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씁쓸하고 안타까운 심정이다.

나는 북향민들이야 말로 두 체제를 경험했기에 이들의 장점이 분명히 크다고 생각한다. 두 체제의 삶을 경험적 자산으로 만들어 미래의 장점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게 가능하려면 북향민들이 더욱 민주주의를 옹호해야 한다. 그래야만 장점이 되고 나아가 혹자들이 말하는 '먼저 온 통일'로써 가교(Bridge)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북향민들만이 이 역할을 감당할 자격이 있을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국가폭력을 정당화하는 계엄을 계몽령이라며 옹호하는 자들은 결코 민주주의자도 아니며 먼저 온 통일로 불러서도 안 된다. 포럼의 이름을 북향민주시민포럼이라고 결정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민주주의를 옹호하고 시민적 주체로 참여하는 북향민들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김금혁 평론가와 조경일 작가 피스아고라 주최 제1회 북향민주시민포럼
▲김금혁 평론가와 조경일 작가 피스아고라 주최 제1회 북향민주시민포럼 조경일

첫 번째 포럼은 '북에서 온 청년 정치인 토크 콘서트' 현재 국민의힘에서 활동하는 북향민 청년 김금혁과 더불어민주당에서 활동하는 내가 함께 패널로 진행했다. 진보와 보수 두 진영에서 활동하는 북향민 청년 정치인 토크라서 그런지 더 주목을 받았다. 보수진영에서 활동하는 북향민은 많아도 진보진영에서 활동하는 북향민은 찾아보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 이유는 앞서 위에서 언급했던 이유들 때문이다.

민주당 또는 진보정치를 지지하면 빨갱이라며 다시 북으로 돌아가라는 공격이 워낙 많아서 북향민들 중에 공개적인 진보적 목소리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어쨌든, 이 포럼을 기획한 이유는 분명했다. 북향민들도 정치적 지향이 다양하고 민주시민으로써 주체적인 정치적 의사 표현을 공개적으로 해도 비난받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박예영 전 통일코리아협동조합 이사장과 조경일 작가 피스아고라 주최 제2회 북향민주시민포럼
▲박예영 전 통일코리아협동조합 이사장과 조경일 작가 피스아고라 주최 제2회 북향민주시민포럼 조경일

두 번째 포럼은 '북향민의 슬기로운 정치생활'을 주제로 진보진영에서 정치활동을 하는 북향민들의 이야기였다. 박예영 전 통일코리아협동조합 이사장과 내가 패널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진보진영에서 북향민이 정치활동을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이며,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이야기하는 시간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합리적이거나 진보적인 북향민의 목소리는 쉽게 '종북정당'에 동조하는 것이라는 공격을 받게 된다. 한국 사회 주류 기득권이 북향민들에게 기대하는 "자유 대한민국 만세"라는 감사 표시와 "인권 탄압하는 독재정권 타도"와 같은 증언대에서의 동조가 아닌 이야기는 검증의 대상이 되기 쉽다. 그래서 민주시민의 당연한 권리인 정부 정책 비판이나 계엄선포 비판 목소리는 북향민들에게는 피해를 감수해야만 가능한 권리다. 그래서 북향민이 진보진영에서 정치활동을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한국에 정착 후 사회 활동 하면서 18년째 빨갱이, 간첩 소리를 들어서 이제는 이런 비난에 익숙해졌다.

전후석 감독과 조경일 작가 피스아고라 주최 제3회 북향민주시민포럼
▲전후석 감독과 조경일 작가 피스아고라 주최 제3회 북향민주시민포럼 조경일

세 번째 포럼은 쿠바 혁명 속 숨겨진 한인의 삶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 <헤로니모>를 만든 전후석 감독과 내가 패널로 진행했다. 주제는 '경계인들의 이중정체성과 평화적 공존'이었다. 전후석 감동은 재미 한인 디아스포라로 그가 살아온 삶과 이야기를 통해 북향민들의 경계인적 정체성과 정치적 주체성, 시민적 주체성을 디아스포라라는 더 넓은 세계사적 흐름과 연결해 보고자 했다. 나는 통일이라는 국가적, 민족사적 과제가 남북한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남북이 합의돼서 통일이 되면 좋겠지만, 이건 불가능한 시나리오다.

특히 한국 사회에 정착한 북향민들의 삶이 '먼저 온 통일'의 삶이 될 수 없다면, 한국 사회 기저에 배태된 심리적 차별과 편견, 그리고 이중적 시선이 이들의 삶을 어렵게 한다면 통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경계인'으로, '이방인'의 심정으로 살아가는 북향민들의 경계인적 정체성을 억지로 '한국사람' 만들기에 밀어 넣기보다는 차라리 더 넓은 디아스포라(Diaspora)적 사유 안에서 존재론적 의미를 찾는 것도 의미 있는 도전이 될 것이다. 나는 전후석 감독의 디아스포라적 사유와 북향민의 경계인적 사유를 연결해 보고 싶었다. 경계인들의 연대로 지리적 통일을 넘어 열방에 흩어진 코리언들의 연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나는 일단 가능성을 보고 시작했다.

다시 해방을 위하여

해방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북향민의 주체성 확보까지 다소 연결이 되지 않을 것만 같은 넓은 스펙트럼을 오가며 굳이 글을 쓴 이유가 있다. 8.15해방과는 다소 연결이 안 되지만 나는 결국 분단을 해체하는 것이 진짜 해방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8.15 해방은 우리 민족에게, 한반도에게 미완의 해방이다. 나아가 이 미완의 과제인 분단이 만들어낸 조난자들이 바로 북향민들이고, 해방의 공간으로 찾아온 북향민들의 한국에서 새 삶이 다시 해방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탈북'이라는 정체성이 장점으로 전환되는 그날에 이들이 진짜 해방에 한 걸음 다가가게 될 것이고, 통일이 되는 날에 이들의 여정이 진짜 해방을 맞이하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 아직 우리를 해방하지 못한 것이 많다. 우리는 여전히 해방을 위해 싸워야 한다.
덧붙이는 글 조경일 작가는 함경북도 아오지 출신이다. 정치컨설턴트, 국회 비서관을 거쳐 현재 작가로 활동하며 대립과 갈등의 벽을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까 줄곧 생각한다. 책 <아오지까지> <리얼리티와 유니티> <이준석이 나갑니다>(공저) <분단이 싫어서>(공저)<한반도 리빌딩 2025>(공저)를 썼다.
#서발턴 #스피박 #북향민 #계엄선포 #조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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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일 작가는 함경북도 경흥(아오지) 출신이다. 정치컨설턴트, 국회 비서관을 거쳐 현재 피스아고라 대표로 활동하며 대립과 갈등의 벽을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까 줄곧 생각한다. 책 <아오지까지> <리얼리티와 유니티> <이준석이 나갑니다>(공저) <분단이 싫어서>(공저)<한반도 리빌딩 2025>(공저)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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