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후위기비상행동 회원들이 지난 6월 11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새 정부가 기후정의 원칙에 기반한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과학적 근거와 국제적 기준에 맞게 수립하고 기후위기 대응의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도록 ‘2035NDC 정의롭게 수립’ ‘탄소중립기본법 전면 개정’ ‘많이 배출하는 자, 많이 책임져라’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재구성’ 등을 촉구했다. 이재명 대통령 가면을 쓴 한 참가자가 ’온실가스 감축’을 선택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권우성
한편으로는 공공선에 명백히 부합하지만 세법에서는 철저히 무시되는 영역도 있으니 대표적으로 기후위기를 꼽는다. 역대 최강의 폭염과 역대 최악의 폭우와 역대 최대의 산불에서 우리는 과학이 예지한 심상치 않은 지구의 변화를 직접 체험하고 있다. 영화 <투모로우>와 <매드맥스>의 사이 어디엔가의 세상으로 질주하고 있는 모양새다.
기후위기와 세법이 무슨 상관이냐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엄청난 관계가 있다. 직접적으로 개별소비세나 교통·에너지·환경세 같은 화석연료에 매겨지는 세금 수준은 사회의 화석연료에 대한 규제 수준과 기후위기 대응 재원 수준을 결정한다. 어떤 에너지와 산업에 혜택을 주는지에 따라 시장 주체의 에너지 선호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무엇보다도 기후위기 대응에는 막대한 돈이 들어간다.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우리 주변의 풍경을 완전히 바꿔야만 한다. 탄소와 질소화합물을 뿜어내는 석탄화력발전소들이 거대한 바람개비가 돌아가는 해상풍력 단지로 바뀌는 일이다. 석유나 가스로 달리는 2천만 대의 차량을 전기차로 바꾸는 일이다. 수백만 채 건물의 단열성능을 높이기 위해 리모델링하는 일이며, 수백만 대의 보일러를 히트펌프로 바꾸는 일이기도 하다. 이 모든 일을 설렁설렁해서도 안 되고, 최소 10년 안에 달성해야만 한다. 이런 과업이 순전히 민간투자나 금융만으로 가능할까? 절대로 불가능하다.
기후대응을 사실상 내팽개치고 원전에 올인하다시피 한 윤석열 정부와는 달리 새 정부는 '
진짜 성장'을 말하며 에너지전환과 산업전환을 주요 정책목표로 내걸었다. <탄소중립산업법>을 만들어 기존 산업의 탈탄소와 녹색산업을 확대하고, 'RE100산단'을 만들어 핵심 산업을 지역에 유치하면서 재생에너지를 싸게 공급하겠다고 하고, '에너지고속도로'와 분산에너지를 내걸며 그리드에 투자하겠다고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잘 설계된 세부 정책이나 '기후에너지부'와 같은 컨트롤타워 조직, 금융과 기술 투자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경제적 그라운드 자체를 결정하는 세법이 받쳐주지 않으면 안 된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에너지전환과 녹색산업을 극적으로 확대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 IRA)이 있다. 해당 법안의 핵심은 재생에너지와 녹색산업 투자와 연구개발에 대한 막대한 규모의 세액공제다. 10년간 600조 원 이상의 세제혜택을 에너지 전환에 쏟아붓는 기획이다. 즉 핵심은 세법에 있다. 이는 1000조 원 이상의 대규모 증세와 결합된 안으로, 재정건전성을 와해시키는 무분별한 기업 감세와는 차별화된다.
그런데 새 정부의 세법개정안에서는 이런 고려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정부의 세법개정안 설명에서 '성장'은 18차례 등장하지만, '기후'라는 단어는 단 한 차례 등장할 뿐이다(상세본에는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 당연하게도 녹색산업과 에너지 전환을 위한 세제개편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여전히 대한민국의 '녹색 세액공제'는 기존의 통합투자세액공제에 열거된 극히 일부 영역의 투자에 한정된다.
윤석열 정부의 파멸적인 세원 축소에 대응하는 5년간 35조 원의 증세 결정은 재정 여력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고무적이기는 하다. 그러나 이걸로 충분할까? 윤석열 정부가 결정한 감세 규모의 절반도 회복하지 못하는 수준이다.
여기에 기후위기만이 아니라 인구위기, 지역위기, 연금위기, 교육위기, 산업위기에 이르는 온갖 '위기 시리즈'를 챙겨야 한다. 공약 수행에만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는, 윤석열 정부를 넘어서는 연 100~150조 원의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감내할 수 있을까? 이번 세법개정안은 여기에 대한 해답을 유보한다. 수송부문 탄소세나 보유세 개편, 디지털세·로봇세·부유세와 같은 신규 세원의 검토, 신용카드 소득공제 같은 쓸모 없음이 수차례 확인된 대형 세액공제 제도의 전면적 개편도 필요했다. 그러나 '코스피 5000'에 대한 열망과 '성장을 향한 희구'가 이 모든 것을 압도하는 모습이다.
화석연료 조세지출이 온실가스 감축 예산보다 많은 나라

▲ 충남의 한 화력발전소 모습.
이희훈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정부의 여건상 대규모 세제개편이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먼저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은 세금감면, 즉 조세지출 부분이다. 대한민국은 온실가스 감축에 쓰는 예산 이상을 화석연료에 대한 세금감면과 보조금으로 쏟아붓는 나라다. 윤석열 정부에서(2023~2025) 연평균 화석연료 보조금 규모는
12.9조 원에 이르러 재생에너지 보조금 1.3조 원의 10배에 달했다. 동 기간 온실가스 감축예산으로 설정된 10~12조 원을 상회한다.
경제 충격을 막기 위한 유가 급등기 유류세 감면은 단기적으로는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처럼 장기간 대폭의 유류세 감면을 시행하는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 2023~2024년 2년간 15조 원에 달하는 유류세 감면은 화석연료 사용량을
오히려 확대하는데 공헌했으며, 실제 시중 유가 하락으로 이어졌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이런 지적은 관행적으로 일몰이 연장되는 농업·임업·어업용 유류에 대한 간접세 면제에서도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온실가스 다배출자들에게는 혜택을 누적시키고, 기업들을 더욱 화석연료에 의존하도록 만든다.
화석연료 조세지출에 대한 일몰 로드맵이 이제는 필요하다. 빈곤층에 대한 에너지 복지가 필요하다 하더라도 화석연료를 지원하고 요금을 감면하는 데 의존하기보다는, 재생에너지 설비를 확대하고 온실가스 배출을 감축하는 방향으로 이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싼 에너지'가 아닌 '따뜻하고 시원한 집'이어야 한다.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활동에는 혜택을, 지속가능성을 해치는 활동에는 불이익을 줘야 한다. 운동장을 완전히 반대로 기울여야 한다.
이번 세법개정안에 약간의 고려가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일몰이 도래한 석유제품 전자상거래 세액공제, 노후자동차 교체시 개별소비세 한시적 감면 종료가 그렇다. 석유제품 시장을 확대하고 신차 구매를 자극하는 방향의 정책이었기 때문이다. 재활용폐자원 부가세 매입세액공제의 제도 개선 방침도 바람직하다. 기존 고물상들의 부실한 기장을 자초하면서 자원순환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물선 경유에 대한 유류세 감면, 지속적으로 탄소중립 기여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는 목재펠릿에 대한 부가세 면제 혜택이나, '대왕고래 사기극'을 겪고서도 해저광물자원개발을 위한 과세특례를 단순 일몰연장하는 결정은 실망스러운 부분이다. 여전히 대한민국은 화석연료와 재생에너지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코스피 5000의 세계와 기후위기 없는 세계

▲ 한미 무역협상이 타결된 지난 7월 31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 지수 등이 표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여기서 한 정치인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원래 기후 활동가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이다. 국회에서도 기후대응을 위한 다수의 입법활동을 수행해 왔다. 그러나 다수의 대중은 그로부터 '기후'를 떠올리기보다는 '금투세'와 '배당소득세'를 연상하는 듯하다.
초선 의원 시절에는 양평고속도로 사태에서 김건희와 원희룡의
저격수로 주가를 올렸다. 재선 의원이 된 지금은
금투세 논쟁과 이번
세법개정안 논쟁을 계기로 주식투자자들의 수호신으로 자리매김한 모습이다.
이는 권영국 후보와 이준석 후보의 표차로 대변되는 부진한 한국의 기후정치의 한 단면일 수도 있고, 그가 대변하지 않을 수 없는 부유한 수도권 도시의 분위기를 대표하는 것일 수도 있으며, '김앤장'과 같은 최상위 엘리트 집단의 인식이나 자본시장에 대한 민주당의 전통적인 우호적 태도가 반영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언젠가 그가 희구하는 것이 틀림없는 '산업화 이후 지구 온도 상승 1.5도 이내 경로로 들어선 세계'에서 만나기를 희망해 마지않는다. 국민의 삶과 거주 환경을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기후위기에 대한 세금 차원의 고려가 반도체와 AI, 경기 진작을 위한 고려보다 적어야 할 이유가 있는가? '코스피 5000의 세계'에 열렬히 응답하는 정치를 돌이키며, '기후위기 없는 세계'에 응답하는 조세정치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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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피 5000 달성' 몰두한 한국사회... 중요한 건 조세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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