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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5.08.19 15:12수정 2025.08.19 15:12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3년 전. 초복 다음 날 엄마는 여느 때처럼 새벽 4시에 일어났다. 평소와 다르게 엄마는 밭에 가는 걸 망설였다고 아빠가 말했다. 아빠는 얼른 갔다 와서 쉬라고 말하고, 자신은 과수원에 농약을 뿌렸다고 했다. 전날 마치지 못한 일을 빨리 하고 쉬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엄마는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고 냉수 한잔 들이키고, 옆집 아저씨의 트럭을 타고 가서 마늘 밭에 닭똥 비료를 뿌렸다. 이후 집으로 돌아오는 사거리에 도착한 시간이 오전 7시. 옆집 아저씨는 초록색 신호를 받고 출발했다. 엄마는 트럭 뒤 짐 칸에 비료 포대를 깔고 앉아 있었다.
엄마는 내 하늘이었다

▲ 엄마 없는 세상을 상상하지 않고 살았다.
bakutroo on Unsplash
동산에서 한 승합차가 무서운 속도로 내려와 트럭 뒤를 받았다. 48kg의 엄마가 비료 포대와 함께 날아갔다. 정확한 사건 파악을 위해 그 시각 그 장소에 있던 차들을 수배했고, 블랙박스를 확보했다. 나는 임신 5개월이었다. 엄마의 마지막을 볼 수 없었다. 이 모든 이야기는 아빠와 남편이 해 줬다.
엄마를 죽게 한 운전자는 음주운전에 신호 위반이었다. 혈중 알코올 농도가 면허취소 수준이었다.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일터로 가는 중이었다고 했다. 집도 절도 없이 떠도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 엄마를 죽였다는 사실에 나는 극도의 분노를 느꼈다. 엄마는 내게 하늘이고 전부였다.
나는 한 번도 엄마 없는 세상을 상상하지 않고 살았다. 5천 원짜리 티셔츠도 내가 입으면 10만 원이 넘는 옷 같다며, 예쁘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상장을 받은 날에는 학교에서 15분 걸리는 동산 위에 있는 집까지 숨도 안 쉬고 뛰어갔다. 엄마한테 자랑하고 싶어서.
엄마가 알면 얼마나 좋아할까 생각하면 날아가고 싶었다. 아무리 밖에서 힘들어도 엄마한테 말하고 나면 기분이 풀렸다. 누워 있는 엄마를 뒤에서 꼭 안고 엄마 냄새를 맡으면 기분이 좋아졌다. 언제부턴가 엄마는 점점 작아져서 내 품에 다 들어왔지만, 그래도 엄마가 있어서 살아갈 수 있었다.
결혼 후 7년 동안 아이가 없을 때 나보다 더 속상해 했던 것도 엄마였다. 전국에 있는 유명한 한의원을 다 돌아다니며 큰딸이 행여나 아이를 못 낳아 고생할까 조마조마하는 마음으로 없는 살림에 한약을 해서 먹였다. 7년 만에 딸을 낳았을 때 웃으며 너 이제 큰소리 빵빵치라고 했던 것도 엄마였고, 둘째가 아들이라는 소리에 내가 발 뻗고 자겠다고 웃었던 것도 엄마였다. 우리 엄마는 그렇게 가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누군가에게 일어나는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 <세네카 인생철학 이야기> 중에서
나는 7년 동안 아이가 없었을 때는 불행했다. 어떻게 해도 안 되길래 좌절하고 절망했다. 7년 만에 딸을 낳고, 10년 만에 아들을 품자, 그제야 비로소 행복이 나를 찾아온다고 생각했다. 나는 안심했고, 행복했다. 불행했던 시간을 금세 잊어버렸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날마다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 사고가 나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했다. 위험이 닥치고 나서야 "이럴 줄을 몰랐다"며 탄식했다. 모든 경우는 변하고, 누군가에게 닥치는 일은 나에게도 닥칠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
아들은 이제 13살이 되었다. 한여름에 찌는 듯이 덥다가도, 날이 선선해지면 엄마 제삿날이 다가오는구나 한다. 엄마의 제삿날은 아무리 덥다가도 구름이 끼고 비가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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