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5.18민주묘지. 추념문 사이로 추모탑이 보인다.
이돈삼
1980년대 지난한 '오월투쟁'을 거쳐 5·18이 폭동에서 민주화운동으로 자리매김했다. 94년 11월 5·18묘지 성역화 사업이 추진됐다. 97년 희생자 유해가 새 묘지로 옮겨졌다. 폭도로 매도된 희생자는 그사이 민주유공자가 됐다. 지금의 국립5·18민주묘지다.
묘지에는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소설 <소년이 온다>의 주인공 동호의 실존인물 문재학, 일기를 통해 한강 작가에게 소설의 방향을 일깨워 준 박용준을 비롯 김경철, 박금희, 최미애, 손옥례, 조사천, 전재수, 박병규, 양창근 등 희생자 유해를 안치했다.
박관현, 김영철, 신영일, 윤한봉, 안철, 윤영규, 문병란 등도 묻혔다. 행방불명자 묘역엔 봉분 없이 비석만 세웠다. 정동년, 전옥주, 강신석, 이광영, 송기숙, 윤강옥 등 최근 사망자는 2묘역에 따로 모시고 있다.
5·18 희생자들의 투쟁

▲ 5.18민주묘지 행방불명자 묘역. 봉분 없이 비석만 세워져 있다.
이돈삼

▲ 5?18민주묘지 이세종, 김의기, 김종태의 묘. 이세종은 5.18 당시 첫 희생자, 김의기와 김종태는 5.18 직후 광주학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자신의 몸을 던졌다.
이돈삼
5·18 직후 광주학살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자신의 몸을 던진 김의기, 김종태, 김태훈의 유해도 여기에 모셨다. 김의기는 광주가 공수부대에 짓밟히고 사흘 뒤인 5월 30일, 서울기독교회관 6층에서 광주학살을 알리는 전단을 뿌리며 온몸을 던졌다.
김종태는 그해 6월 9일 서울 이화여대 앞 사거리에서 광주학살을 고발하며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김태훈은 5·18 1주기를 맞은 이듬해 5월 27일 서울대 도서관 6층에서 "전두환 물러가라!"라는 구호를 세 번 외치고 온몸을 던졌다.
민주묘지 추념문은 영령들의 숭고한 희생을 두 손으로 떠받들고 있다. 당간지주를 형상화한 추모탑은 희망의 씨앗과 생명의 부활을 상징한다. 우리나라 민주화의 태 자리가 5·18임을 보여준다. 상징 조형물인 환조(丸彫) '무장항쟁군상'은 불의에 저항하는 시민군을, '대동세상군상'은 슬픔을 딛고 승리를 노래하는 시민을 표현하고 있다.

▲ 5.18민주묘지 상징 조형물인 환조(丸彫) ‘무장항쟁군상’. 불의에 저항하는 시민군을 형상하고 있다.
이돈삼

▲ 5.18민주묘지 추모탑과 상징조형물 환조(丸彫). ‘무장항쟁군상’과 '대동세상군상'이 추모탑 양쪽에 들어서 있다.
이돈삼
10개 부조는 열흘간의 항쟁을 일기 형식으로 묘사하고 있다. 김준태 시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도 새겨졌다. 1980년 6월 2일자 <전남매일신문>에 실린 시는 당초 12연 109행이었다. 신군부 검열에서 3분의 2가 잘려 나갔다. 비상계엄 시기 언론통제 실상을 보여준다.
2묘역 앞에 세워진 헌수(獻樹) 기념비도 애틋하다. 민주묘지 조성에 맞춰 광주·전남 12개 언론사가 주도한 범국민 헌수 운동을 기념한 조형물이다. 성금과 나무를 기탁한 개인과 단체 이름이 모두 새겨져 있다. 기념비는 5·18사적지 표지석을 디자인한 김왕현 작가의 작품이다. 헌수 운동은 5·18정신 계승과 전국화에 큰 도움이 됐다.
국립5·18민주묘지에는 80년 5월 신군부의 총칼에 맞선 민주유공자가 잠들어 있다. 그해 봄 신군부에 패배했지만, 그 정신은 이어져 우리 민주주의의 초석이 된 영령들이다. 그날을 잊지 않아야 하는 이유다. 기억하면 계승되기 때문이다. 5·18민주묘지로 가는 발길은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 국립5.18민주묘지와 묘비. 희생자들의 사망 날짜가 1980년 5월로 적혀 있다.
이돈삼

▲ 80년 5월을 배우고 기억하려고 찾은 발길들. 초등학생들이 해설사의 얘기를 귀 기울여 듣고 있다.
이돈삼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공유하기
계엄군이 핏자국 지운 그곳, 민주화의 성지가 되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