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도의 미역 말리기 가지런히 만들어진 미역이 햇빛에 말려지고 있다
정윤섭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 보았다. 70대로 보이는 노인부부가 집 앞에서 미역 붙이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해남 화원에서 시집을 왔다고 한다. 집 앞에 검은 천막을 치고 의자에 앉아 두 부부는 나무 틀에 미역 붙이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그 풍경이 아주 오래전 섬의 모습을 떠올렸다. 수십년전, 아니 수백년전부터 미역은 이렇게 만들어지고 있었을 것이다. 노인 부부는 목포에서 주로 살다가 미역 철이 되면 곽도에 들어와 미역 작업을 하며 한철을 보낸다고 한다.
노인 부부처럼 곽도 사람들은 대부분 목포나 외지에 살다가 미역철이 되면 섬에 들어온다. 미역철이 아니면 열악한 교통과 생활환경, 경제활동을 하기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 도회지에서 살다가 미역철에 들어오는 것이다.
곽도의 미역채취는 돌미역 채취의 원형처럼 느껴진다. 다른 섬이 배를 이용해 미역을 채취하는 것에 비해 이곳은 대부분 작업을 직접 몸으로 해야 한다. 곽도는 맹골 3도에서도 가장 작은 섬이다. 작은 섬 때문인지 배를 가지고 어업을 하는 어민도 없다.
피항을 하기 힘든 선착장의 여건 때문이기도 하다. 이들은 선착장 주변이나 작업하기 좋은 섬의 바위에서 직접 손으로 채취할 수밖에 없다. 마을 사람들은 물이 쓰기를 기다렸다가 낫을 들고 물속으로 들어가 바위에 드러난 미역을 벤다. 바위에서 베기도 하지만 물에 들어가 작업을 할 수밖에 없다. 파도가 치고 물살이 세면 매우 힘들고 위험한 작업이기도 하다.
이렇게 벤 미역은 모아서 긴 줄에 메단다. 긴 줄에 메다는 것은 미역을 모두 선착장 부근으로 옮기기 위해서다. 선착장으로 옮겨진 미역은 트럭에 실려 마을의 작업장까지 옮겨진다.
곽도를 지키는 김영표 반장

▲곽도를 지키는 김영표 반장 김영표씨는 25년전 곽도에 다시 돌아와 섬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정윤섭
곽도를 지키고 이끄는 사람은 김영표(57) 반장이다. 인상이 좋고 핸섬한 얼굴 탓인지 섬사람 같아 보이지 않는다. 김영표 반장은 여느 섬 사람들처럼 공부를 하기 위해 뭍으로 나가 학교를 다니고 한 때는 사업을 하며 직장 생할을 하였다. 그러나 고향이 그리워 25년 전 다시 고향에 돌아와 죽도를 지키고 있다.
김영표씨는 이곳에서 민박집을 운영하며 낚시나 섬에 온 사람들을 맞이하며 온전히 섬을 지키고 있다. 때문에 미역철이 끝나면 대부분 섬을 떠나는 것에 비해 일년 연중 섬에 살고 있다. 김씨는 직접 민박집을 짓고 주변에 후박나무를 심었다. 그때 심은 나무가 커서 지금은 숲이 되고 그늘을 만들고 있다며 자랑스러워 하고 있다.
"이곳은 섬이지만 섬 같지가 않아요. 아주 아늑하고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나만의 천국이죠, 이곳의 생활이 행복합니다."
김영표씨는 곽도가 미역으로도 유명하지만 낚시하는 사람들이나 관광객들이 찾아올 때 주변을 쉽게 둘러볼 탐방로가 조성되었으면 하였다. 섬의 남쪽으로 병풍도를 비롯 바다 풍경이 아주 뛰어나지만 이를 감상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되어 있다는 것이다. 섬 주변에 탐방로를 조성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편안한 휴식을 취하다 갈 수 있기를 행정기관에 바라고 있다.
곽도의 석양은 망망대해 서해로 지는 노을이 너무 아름답다. 미역 섬 곽도 섬사람들의 삶이 아름다워 보인다.

▲곽도의 아름다운 노을 서해의 망망 대해로 지는 석양의 노을이 너무 아름답다
정윤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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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를 중심으로 지역의 다양한 소재들을 통해 인문학적 글쓰기를 하고 있다. 특히 해양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16세기 해남윤씨가의 서남해안 간척과 도서개발>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바 있으며 연구활동과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 <녹우당> 열화당. 2015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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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그 미역이 제일이제라, 한 뭇에 백만 원도 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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