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암사 미륵불 금강산 화암사 미륵전의 미륵불. 전망대를 지나면 미륵전이 나온다. 푸른 하늘에 쉴 새없이 피어나는 하얀 뭉게구름을 배경으로 고요히 서 있는 미륵불은 마치 이 세상이 아닌 듯한 느낌을 준다.
우현주
전망대의 환상적인 분위기는 미륵불을 볼 때 절정에 달했다. 미륵불은 파란 하늘을 이고 홀로 고요히 서 있었다. 미륵불의 얼굴은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바람에 따라 빠르게 피어나고 지는 하얀 뭉게 구름은 마치 극락에라도 온 듯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언제까지라도 그곳에 서서 머물고 싶었다.
드디어 신선대에서 조망한 울산바위
하지만 우리에게는 갈 곳이 있었다. 금강산에 오르는 길이 바로 저기에 있는데 여기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아쉽지만 미륵불의 차분한 미소를 마음에 새긴 채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등산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금강산 1코스는 쉬운 코스로 통한다. 거리도 짧고 길도 험하지 않아 올라가는 데 기껏해야 1시간 30분, 설렁설렁 가도 1시간 40분이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등산을 좋아하는 이들의 말이다.
남편과 나처럼 산을 타는 것보다는 보는 걸 더 좋아하고, 산이래야 기껏 계절이 바뀔 때 한번 가는 게 고작인 사람들에게는 사정이 달랐다. 게다가 우리가 출발한 시각도 이미오전 11시가 넘은 때였다. 제대로 산을 탄다면 오르는 게 아니라 이미 내려왔어야 하는 시각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왕 마음먹은 것,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더웠다. 역대급이라는 7월만큼은 아니더라도 한여름 정오의 온도는 견디기 쉽지 않았다. 화암사가 이름을 따 온 수바위까지는 금방이라 별문제 없었지만, 시루떡 바위, 그리고 이어지는 신선대까지 가는 길은 생각보다 미끄럽고 가팔랐다. 1시간 반 안에 오르기는 진작 포기했다.
더위를 참으며 꾸역꾸역 올라가는데 몇 년 전 갑상선암 수술 뒤 부쩍 더위를 타는 남편은 몇 번이나 앓는 소리를 했다. 어림짐작했을 때 신선대는 바로 위였다. 남편에게는 쉬엄쉬엄 오라고 말한 뒤 마지막 계단을 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신선대에 올랐다.

▲신선대에서 바라 본 울산바위 금강산 신선대에 올라 남쪽을 바라보면 이렇게 환상적인 울산바위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우현주
실은 고성을 이번 휴가의 목적지로 정한 데에는 금강산에 오르는 것 이외 또 다른 목적이 있었다. 요즘 SNS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신선대에서 조망한 울산바위'를 직접 경험하고 싶었다. 울산바위야 잘 알고 있었고 몇 번 가까이 가서 보기도 했지만 그런 사진은 처음이었다. 산줄기 사이에 우뚝 솟아 있는 울산바위의 자태는 너무 신비스러워 차마 우리나라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였다. 꼭 신선대에 올라 그 풍경을 보고 싶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자리에 섰다. 장관이었다.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가 없었다. 폰을 꺼내들고 수없이 사진을 찍었다. 한 장면이라도 더 그 순간을 남기고 싶었다. 그러다 문득 의문이 떠올랐다. 울산바위를 왜 '바위'라고 부르는 걸까? 저 정도 규모라면 바위가 아니라 봉우리라고 해도 충분했다. 그런데 왜 바위인 걸까?

▲울산바위 '바위'라기엔 위풍당당한 '울산바위'. 구름이 만드는 하늘 그림자가 바위에 시시각각 다른 무늬를 아로새기고 있다.
우현주
전설에 따르면 울산바위는 금강산의 봉우리가 되고 싶어 울산에서부터 올라왔다고 한다. 하지만 바위가 너무 크고 무거운 까닭에 너무 느려 결국 미처 금강산에 도달하기도 전에 금강산 봉우리가 다 찼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낙심해서 되돌아가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은 것이 지금의 설악과 금강의 경계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울산바위는 감히 금강산의 봉우리를 꿈꿀 정도로 웅장하고 수려했다는 이야기다. 다르게 말하자면 금강산에는 이 위풍당당한 울산바위조차 봉우리가 아니라 바위로 보이게 할 정도로 수려한 봉우리들이 일만 이천 개나 된다는 소리도 된다. 그러니 금강산은 도대체 얼마나 아름다운 걸까?
어느 순간 나는 사진 찍기를 그만두었다. 아무리 사진을 많이 찍어도 모든 모습을 다 담기란 불가능했다. 대신 울산바위를 바라봤다. 지긋이 바라보며 그 풍경을 마음에 새겼다. 햇볕은 온몸을 태워버릴 듯 뜨거웠지만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세찬 바람 때문에 더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곳은 다른 세계였다. 신화와 현실이 겹치는 곳, 현실과 비현실이 맞물리는 곳. 신라가 멸망했을 때 금강산으로 들어갔다는 마의태자는 결국 신선이 되었다고 한다. 금강산의 끝자락에 서 있던 그 순간에는 그 전설도 어쩐지 그럴 듯하게 여겨졌다. 남한의 금강산은 그런 곳이었다. 우리 민족에게 가장 사랑받고 가장 친근하면서도 가장 잔인한 현실을 보여주는 곳. 그 금강산에 나는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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