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민들이 우수관로를 청소하는 모습(왼쪽)과 청소 후 모습(오른쪽). 하지만 우수관로 하단부 10여 미터 이상은 토사와 낙엽이 켜켜이 쌓여 풀이 우거지는 등 더는 주민들 힘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상태다. 이 때문에 주민들은 지난 3월 처음으로 지자체에 준설과 시설개선을 요청했다. 대전서구청은 6개월간 묵묵부답하다 최근 '우수관로가 설치된 임야의 소유주가 관리 주체'라는 댭변을 내놓았다.
심규상
지난 7월, 큰 비가 예고되자 이재명 대통령이 '과할 정도로 피해 예방에 필요한 자원을 충분히 배치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시민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던 이 말은, 대전 서구청과 지난 6개월간 민원을 제기해 온 민원인에게는 공허한 구호일 뿐이었습니다. 시민의 안전과 신뢰와는 너무도 거리가 먼 '과할 정도의 소극 행정의 민낯'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대전 서구 변동의 일부 주민들은 비가 올 때마다 인근 도솔산을 접한 U자형 우수관로 때문에 시름이 깊어집니다. 산에서 내려오는 빗물을 받아내는 이 관로는 주택단지 조성 당시 수해 방지를 위해 지방자치단체가 설치한 공공 시설물입니다.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우수관로와 축대는 1988년경 자치단체에 의해 조성됐습니다. 당시 정부가 대전시 유성구 자운동·신봉동·추목동 일대에 군사학교인 '자운대'를 조성하기로 하자, 대전시가 나서 이곳(620 사업지구)에 살고 있던 주민들의 집단이주단지로 마을을 조성했다고 합니다. 현재 자운대에는 영관급 장교 보수교육기관인 육군대학, 해군대학, 공군대학과 국군대전병원이 있습니다.
주민들은 '전부 논밭이었던 곳을 1980년대 말, 대전시 등 자치단체가 자운대 이주민들을 정착시키기 위해 택지를 조성해 주택단지를 만들었고, 이때 산 쪽에서 내려오는 빗물 피해와 산사태를 막기위해 우수관로와 축대를 설치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택지개발을 위해 자치단체의 필요에 의해 조성된 기반시설이라는 얘기입니다. 대전시는 비슷한 시기 우수관로가 속한 도솔산을 월평공원(도시계획시설)으로 지정해 유지·관리해 오다 몇 년 전 공원지역에서 해제했습니다. 해당 시설물을 공원시설로 오랫동안 관리해 온 겁니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면, 변동의 해당 마을 주민들은 수십 년간 비가 올 때마다 토사와 낙엽을 치우며 관리해왔습니다. 그러나 고령화로 인해 이제는 그마저 어려운 상황에 놓였습니다. 특히 하단부에 쌓인 토사는 몇몇 주민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불어나 있습니다.
결국 지난 3월, 많은 비로 배수관이 막히자 주민들은 관할 서구청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주민들의 힘으로는 해결이 어려우니 우선 긴급 준설을 해주고, 덮개형으로 시설을 개선해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6개월 만에 도착한 민원 답변, 그러나...
주민들의 첫 민원 요청 이후 6개월의 시간은 한 편의 지루하고 답답한 '미로 찾기'였습니다.
지난 3월, 처음 전화를 걸었을 때, 민원인은 재난관리과·건설과·공원녹지과를 오가며 한 시간 넘게 열 번도 넘는 통화를 해야 했습니다. 소관 부서가 아니라며 서로 책임을 떠밀었기 때문입니다. 어렵게 연결된 담당자는 '인근 주택 소유주들의 책임'이라고 했다가, '임야 소유주와 상의하라'고 말을 바꾸는 등 일관성 없는 답변으로 일관했습니다.
6월, 큰 비로 또다시 배수관이 막히자 주민들은 비를 맞으며 응급조치를 해야 했습니다. 서구청에선 '경계 측량을 해봐야 알 수 있다'고 했지만, 아무런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습니다.
7월, 민원 서류를 다시 제출했지만, 새로 부임한 담당자는 '인수인계를 받지 못했으니 자료를 다시 보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4개월간의 과정이 삭제되고 민원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된 것입니다.
8월, 재차 자료를 보냈지만 기다리는 동안에도 아무런 답변이 없었습니다. 결국 국민권익위의 문을 두드려 긴급 조치를 요청했고, 서구청은 회신 기한을 10일 연장한 끝에야 답변을 보내왔습니다.

▲ 대전 서구청은 6개월 만에 내놓은 민원회산을 통해 "해당 배수로는 공공시설물이 아니며 유지관리는 설치자가 이행해야 한다"면서 "산림 소유주에게 불편 사항을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산림 소유주는 물론 인근 주민들 모두 "해당 우수관로는 지자체가 설치한 공공 시설물"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 때문에 대전서구청이 6개월 동안 해당 시설 설치 주체조차 파악하지 않았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심규상
6개월 만에 받은 서구청의 답변은 앞뒤가 맞지 않았습니다. 서구청은 "해당 배수로는 공공시설물이 아니며 유지관리는 설치자가 이행해야 한다"면서도, "산림 소유주에게 불편 사항을 전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산림 소유주는 물론 인근 주민들 모두 "해당 우수관로는 지자체가 설치한 공공 시설물"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서구청은 6개월 동안 해당 시설 설치 주체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무책임한 회신을 했다는 것입니다.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대전 서구청에 연락했습니다. 대전 서구청 관계자는 '해당 배수로는 자운대 이주민들을 위한 택지단지 조성을 위해 대전시 등 자치단체가 설치한 것' 아니냐고 묻자, "그런가?"라며 당황해하다 "하지만 구청에서 해 줄 수 있는 건 없다"고 답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대통령이 강조한 '과할 정도의 선제 대응'의 현실에서 마주한 민낯입니다. 배수로가 심하게 막힌 건 흙과 낙엽 때문이었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불통은 '과할 정도의 소극 행정'이었습니다.
대전 서구청의 소극적 대응은 인근 대전 동구청 행정 사례와 비교됩니다. 대전 동구청은 지난 7월 큰 비가 예고되자 관내 곳곳에 '막힘없는 빗물받이를 만들겠다'며 '쓰레기, 낙엽 등으로 막힌 빗물받이(우수관로)가 있을 경우 구청에 알려달라'고 홍보했습니다.
시민들이 원하는 건 거창한 정책이 아닙니다. 그저 땀 흘려 가꾼 삶의 터전이 안전할 수 있도록, 지자체가 맡은 일을 제대로 해주는 것입니다. 우수관로에 쌓인 흙더미가 준설되고, 덮개형 배수로 덕분에 비오는 말에도 물난리 걱정 없이 발 뻗고 편히 잘 수 있는 작은 안도감입니다.
민원인 등은 국민권익위를 통해 사안에 대한 사실확인을 요청했습니다. 문제의 우수관로에, 공공의 책임과 믿음이 다시 흐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하지만 우수관로 하단부 약 10여 미터 이상은 토사와 낙엽이 켜켜히 쌓여 풀이 우거지는 등 더는 주민들 힘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상태다. 이 때문에 주민들은 지난 3월 처음으로 자치단체에 준설과 시설개선을 요청했다. 대전서구청은 6개월간 묵묵부답하다 최근 우수관로가 설치된 임야 소유주가 관리주체라는 댭변을 내놓았다.
심규상

▲ 대전 서구청의 책임 떠넘기기는 인근 대전 동구청 행정 사례와 비교된다. 대전 동구청은 지난 7월 큰 비가 예고되자 관내 곳곳에 '막힘없는 빗물받이를 만들겠다'며 '쓰레기, 낙엽 등으로 막힌 빗물받이(우수관로)가 있을 경우 구청에 알려달라'고 홍보하고 있다.(사진). 반면 대전 서구청은 인근 주민들이 수십 년간 지발적으로 관리해오던 빗믈받이가 막혔다고 신고하자 6개월을 '검토하겠다'며 시간을 끌다 임야 소유주에게 책임을 떠밀었다.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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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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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말한 '과한 선제 대응', 왜 여긴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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