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앤드류스 대학교 전경 생태환경사는 세계 여러 대학에서 독립적인 학문 영역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일례로, 세인트앤드류스 대학교에는 '환경사연구기관'이 설립되어 있다.
세인트앤드류스 대학교
생태환경사는 한국에서는 아직 낯선 학문이다. 이 분야는 1970년대 미국과 유럽에서 환경주의 운동과 함께 학문 분과로 자리 잡았고, 이후 세계 각국으로 확산됐다.
생태환경사는 인간과 자연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얽혀 왔는지를 밝히는 학문이다. 단순히 인간 중심의 사건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기후와 숲, 질병과 동식물 같은 자연 요인이 사회와 정치, 문화의 변화를 어떻게 이끌었는지, 또 인간의 행동이 자연을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함께 탐구한다. 미국 환경사학자 도널드 워스터가 정리했듯이, 생태환경사는 사람들이 자연을 어떻게 인식했는지, 그 인식이 사회 구조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그리고 인간의 행동이 자연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핵심 질문으로 삼는다.
이 때문에 생태환경사는 역사학에만 머무르지 않고 생태학·기후과학·의학사 등 다양한 학문을 넘나드는 융합적 성격을 띤다. 실제로 1962년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이 농약의 위험을 폭로하며 환경 문제를 공론화했고, 1970년 첫 번째 '지구의 날(Earth Day)'과 환경보호청(EPA)의 출범은 환경을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역사를 움직이는 주체로 바라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오늘날 생태환경사는 기후위기와 생태 파괴를 이해할 역사적 맥락을 제공하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설계하기 위한 교훈을 제시하는 학문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이날 영상으로 축사를 전한 김택중 대한의사학회 회장(인제대)은 "질병의 역사는 곧 환경의 역사이기도 하다"며 "환경사와 의학사는 서로 깊이 교차하는 분야"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구미에서 1970년대부터 환경사가 본격화된 것처럼, 한국의 환경사 연구도 이제 막 걸음마 단계를 벗어나 달리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연구반에서 독립 학회로
한국생태환경사학회의 뿌리는 2014년 한국역사연구회 분과에서 김동진 선생의 주도로 시작된 '생태환경사 연구반'이다. 초기에는 국내 학자를 초청한 특강과 서양 번역서를 함께 읽는 세미나를 중심으로 운영됐지만, 참여자가 줄어들면서 2015년 무렵에는 6~7명의 한국사 연구자만이 남았다. 이현숙 한국생태환경사연구소장(연세대)은 "공부를 이어갈수록 이렇게 한정된 규모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했다"며 "동양사와 서양사 전공자들까지 함께할 수 있는 독립 학회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에 2015년 11월 20일, 서초동의 한 카페에서 열린 창립총회에서 학회가 공식 출범했고, 동시에 연구소도 함께 설립됐다. 창립 한 달 만에 학회지는 첫 호를 내면서 놀라운 속도를 보여주었고, 이후 '숲과 권력', '인류세와 기후사', '재해와 질병' 등을 주제로 학술대회와 세미나를 이어갔다. 국제 석학을 초청해 교류를 확대하기도 했다. 2019년에는 한국연구재단 '신생·소외 학술지 지원사업'에 선정되었고, 2023년에는 등재 학술지로 승격되며 연구 기반을 공고히 했다.
고태우 부회장(서울대)은 연혁 보고에서 "박사 과정 연구자들이 중심이던 작은 모임이 학술지 등재 단계까지 성장했다"며 "이제는 국제학계와의 교류를 본격화하고 교육 현장과의 접점을 넓혀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10주년 기념식과 향후 과제

▲김문기 한국생태환경사학회 회장 10주년 기념식 인사말에서 “앞으로 100년을 내다보는 학회가 되자”고 강조했다.
임정우
이번 기념식은 김문기 회장(부경대)의 인사말로 시작됐다. 그는 "다른 분과 학회들이 통폐합을 고민하는 상황에서도 생태환경사학회는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며 "앞으로 100년을 내다보는 학회로 발전하자"고 강조했다.
이날 공로상은 학회 창립을 주도한 이현숙 연구소장에게 돌아갔다. 그는 "한국에서 이루어지는 생태환경사 연구는 매우 독창적이고 세계사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며 "앞으로는 한국어 논문을 영어로 번역하거나 처음부터 영어로 작성해 세계 학계에 소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연구반 활성화 ▲영어 학술지 창간 ▲학제 간 협력 확대를 미래 과제로 제시했다.
한편, 사토 노리코 전임 회장(부경대)은 축하 인사를 전하면서 "한국의 환경사 연구가 중심인데, 아시아와 세계 환경사 연구와의 연결이 더 필요하다"고 학회의 향후 방향성을 제시했다.
기후위기 시대, 역사학의 역할

▲고태우 한국생태환경사학회 부회장 학회 연혁 보고에서 “박사과정 연구자들이 시작한 작은 모임이 학술지 등재 단계까지 성장했다”고 밝혔다.
임정우
한국생태환경사학회는 향후 ▲소규모 연구반 체계화 ▲영문 저널 'Ecohistoria' 발간 ▲자연과학·의학·과학사와의 융합 ▲교육 현장과의 연계를 추진할 계획이다. 이날 함께 열린 국제학술대회 "동아시아 생태환경사의 최근 동향과 한국 근현대사"는 그 첫걸음을 보여주는 자리였다.
기후위기라는 시대적 과제를 맞아, 생태환경사 연구는 단순히 과거를 해석하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역사 속에서 비추는 학문은, 오늘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성찰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고태우 부회장은 "환경사는 결코 한 시대나 한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장기적이고 초국가적인 시각을 필요로 한다"며 "앞으로의 10년은 기후위기라는 전 지구적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 역사학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생태환경사학회 10주년 기념식 포스터 2025년 8월 21일 열린 기념식의 일정을 알리고 있다.
임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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