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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이 넘어도 읽히는, 시간과 돈에 대한 깊은 통찰

[서평] 미하일 엔데의 동화 소설 <모모>

등록 2025.08.22 11:52수정 2025.08.22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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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MOMO)는 1973년에 출간된 판타지 소설이다. '시간을 훔치는 도둑과 그 도둑이 훔쳐 간 시간을 찾아주는 한 소녀에 대한 이상한 이야기'라는 긴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세상에 나온 지 50년이 넘었지만, 지금도 꾸준히 읽히는 고전이다. <모모>의 출간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동화 작가 미하일 엔데(Michael Ende)는 1995년에 6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모모 - 출간 50주년 기념 개정판, 미하엘 엔데(지은이), 한미희(옮긴이)
모모 - 출간 50주년 기념 개정판, 미하엘 엔데(지은이), 한미희(옮긴이) 비룡소

판타지(fantasy)라는 장르가 그러하듯, 이 소설 역시 현실에선 일어나기 힘든 요소와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판타지는 그저 동화 속 나라에서 벌어지는 공상적인 모험담이 아니다.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드러나지 않은 미래의 일을 눈앞에 떠올릴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무책임한 현실 도피가 아니라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측하고 새로운 기준을 정립할 계기를 만들어 준다.


그런 측면에서 <모모>는 어른들이 읽어야 할 동화책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시간과 돈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엔데는 책 후기에 "모모는 어린이책이 아니다. 나는 어린이를 위해 책을 쓰지 않는다. 나는 '우리 모두의 안에 있는 아이'를 위해 글을 쓴다"라고 적고 있다. 아직 어른이 되지 않은 아이와 어른이 된 아이가 독자이길 바란다는 뜻이다.

생전에 엔데는 <모모>에 대한 서평이 겉으로 드러난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아쉽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사람들이 너무나 바쁜 나머지 시간이 없는 존재가 되었음을 환기하기 위해서 혹은 분주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인간적 요소가 사라지고 있음을 경고하기 위해서'라는 해석이 많은데, 자신의 집필 의도는 그것과는 조금 달랐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이 책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의 핵심은 무엇일까. 독일 경제학자 베르너 온켄(Werner Oncken)은 이에 대해 '<모모>는 금융 자본주의와 화폐 권력에 대한 비판과 대안을 담은 작품'이라고 말한다(1986, 경제학자를 위한 모모). 책 속에 등장하는 회색 신사는 부정한 화폐제도를, 이들을 물리치기 위해 싸우는 모모는 인류가 나아갈 방향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이야기 속 회색 신사들은 시간저축은행의 임직원이다. 이들은 시간의 소중함을 일깨워 사람들에게 시간을 저축할 것을 권한다. '저축한 시간을 찾지 않고 보관하면 그 시간만큼 이자를 받을 수 있다. 재산은 5년 주기로 곱절로 늘어난다. 시간을 허투루 낭비할 텐가 아니면 아껴서 늘릴 텐가?'라는 유혹에 넘어간 사람들은 시간의 노예가 되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바쁜 삶을 살게 된다,

시간저축은행의 영업사원들은 노래를 부르거나, 책을 읽거나, 친구와 시간을 보내는 일은 시간을 허투루 낭비하는 짓이니 당장 그만두고, 시간을 아끼려면 늙은 부모는 서둘러 양로원에 맡기고, 반려동물은 내다 버리고, 남을 돕는 일 따위의 일은 하지 말라고 강변한다(이 책에서 말하는 시간은 곧 돈이다. 시간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자리에 돈을 대입해도 문장은 성립한다).


회색 신사들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목표 즉 모든 인간의 시간을 빼앗아 금고에 가두는 일에 모모가 걸림돌이 될 것으로 판단해 이 어린 소녀를 제거하기로 한다. 거북이의 도움으로 위기를 벗어난 모모가 시간 관리자인 호라 박사와 나누는 대화 속에 이 책의 핵심 주제가 녹아 있다. 호라 박사는 모모가 회색 신사들을 물리칠 수 있도록 돕는 인물이다.

"왜 거북을 시켜 저를 데려오게 하셨어요?" 모모가 물었다.
"회색 신사들로부터 널 보호하기 위해서였지." 호라 박사가 말했다.
"그 사람들을 잘 아세요?" 호라 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람들 얼굴은 왜 잿빛이에요?" 모모가 물었다.
"죽은 것으로 목숨을 이어가기 때문이지. 그들은 인간의 일생을 먹고 살아간단다. 허나 진짜 주인에서 떨어져나온 시간은 죽은 시간이 되는 게야. 모든 사람은 저마다 자신의 시간을 갖고 있거든. 시간은 진짜 주인의 시간일 때만 살아 있지."
"그럼 회색 신사들은 사람이 아네요?"
"아니야,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을 뿐이지."
"그럼, 뭐예요?"
"실제로 그들은 아무것도 아니야."
"그럼 어디서 온 거예요?"
"그들은 사람들이 생겨날 기회를 주면 생겨난단다. 그런데 이제 사람들은 그들에게 자기들을 좌지우지할 기회까지 주고 있어."
"만약 시간을 더 이상 훔칠 수 없게 되면요?"
"그럼, 그들이 태어난 무(無)로 돌아가게 되지. 하지만 애석하게도 사람들 가운데 그들을 돕는 협력자가 벌써 아주 많단다."
"저는 제 시간을 누구한테도 빼앗기지 않겠어요."

이 이야기의 결말은 해피엔딩이다. 모모는 호라 박사가 제안한 위험한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회색 신사들을 무(無)로 돌리고 금고 안에 잠자고 있던 시간을 본래의 주인들에게 돌려준다. 시간이 늘어난 사람들은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 아이들과 어울려 놀고, 이웃에게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고, 창가에 놓인 꽃의 아름다움에 감탄한다. 가능한 짧은 시간에 가능한 많은 일을 해야 할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그러나 작가의 바람에도 현실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 버렸다. 회색 신사들은 무(無)로 돌아가기는커녕 지구별에 자신들의 왕국을 건설했고, 인간은 그들이 만든 질서에 복속하며 살아가고 있다. 시간 도둑들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노동은 오직 시간과 돈의 관계로 설명된다. 더 많은 시간을 저축하려면, 즉 더 많은 돈을 벌려면 촌음을 아껴야 한다. 아이와 놀거나 창가에 핀 꽃 따위를 감상할 시간이 없다.

이들이 왕국을 건설하도록 도운 인간 협력자는 누구인가. 이들의 사상을 받아들여 사람들에게 시간을 절약하도록 부추기고, 시간을 아껴 돈을 벌어야 한다는 강박을 심어준 자들, 지난 수 세기에 걸쳐 '돈의 제국'을 설계하고 관리하는 자들이다. 이 부역자들 덕분에 인류의 대다수는 돈에 중독된 좀비가 되었고, 지구의 얼굴은 잿빛으로 변했다.

독일어 초판 표지 / 생전의 미하일 엔데 표지 그림은 작가가 직접 그렸다고 함
▲독일어 초판 표지 / 생전의 미하일 엔데 표지 그림은 작가가 직접 그렸다고 함 표지(위키피디아) / 사진(나무위키)

엔데는 물질만능과 배금주의가 만연하면 삶이 풍요로워지는 게 아니라 시간을 빼앗기는 삶을 살 수 있음을 경고하고자 <모모>를 집필했을 것이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동화는 행복하게 끝을 맺었지만, 현실은 끔찍한 디스토피아(dystopia)의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엔데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 한 작가와 대화를 나누며 예언적인 말을 남겼다.

"이 시스템이 필연적으로 초래할 사태가 나타나기 전에, 이성과 이해로 자본주의가 개혁되리라는 환상은 갖고 있지 않습니다. 역사에서 흔히 보듯이 이성이 사람을 움직이지 않을 경우, 사건이 그것을 대신하게 됩니다. 그 사건은 우리의 후손이 이 지구별에서 살아가기 힘들게 만들고 말 겁니다. 그들은 우리를 저주하겠죠. 그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내가 작가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자손들이 우리와 같은 과오를 범하지 않도록, 사고하고 관념을 만들어내는 일입니다. (중략) 모든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없어 힘들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해야만 합니다. 돈은 인간이 만든 것입니다. 틀림없이 바꿀 수 있습니다." - 2000, <엔데의 유언>

같은 책이라도 누가 읽는가에 따라 해석은 달라진다. 어른이 되지 않은 아이에게 <모모>는 환상적인 모험이 전개되는 판타지로, 어른이 된 아이에겐 섬뜩한 현실이 담긴 비판서로 비칠 것이다. 세상에 나온 지 반세기가 넘었지만 <모모>는 여전히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판타지 같은 현실을 꿈꾸는 이들, 새로운 상상력으로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이들에게 권한다.
덧붙이는 글 문진수 기자는 사회적금융연구원장입니다

모모 - 출간 50주년 기념 개정판

미하엘 엔데 (지은이), 한미희 (옮긴이),
비룡소, 2024


#모모 #MOMO #미하일엔데 #엔데의유언 #E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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