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로 전하는 마음 매번 병원에 올 때마다 서로를 챙겼다
김은영
우리는 서로 병원 일정도 공유하고, 먼저 병원을 옮겨가는 쪽은 도착한 병원의 좋은 자리가 어느 병실에 있다며 빨리 오라는 연락도 해주었다. 벌써 몇년 전이 되어버린 코로나 시기 병원에 감금(?) 되어 있을 때는 각자 병실에 전달할 짐을 놓고 가면서 귀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쇼핑백에 몰래 넣어주는 등 서로의 가족을 살뜰히 챙기던 사이였다.
갑작스런 소식에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메신저를 봤지만 따님의 프로필은 변함이 없다. 마침 집에 있었던 나는 연락이 오면 장례식장을 찾아갈 생각에 기다리고 있었지만, 끝내 연락은 오지 않았다.
먼저 연락을 하지 않은 이유가 있겠지. 갑작스러운 상황에 정신이 있을까. 그런데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아저씨도 아빠처럼 내과적 이상은 크게 없는 환자였는데...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아빠 같은 오랜 와상 환자들은 평소 아무 전조 증상이 없어도 '어느 날 갑자기' 아무 이유 없이 응급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 뒤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고 내 예상 대로였다. 아저씨는 당일 오전까지도 재활 치료를 평소처럼 잘 받으셨고 오후에 교대를 하러 온 어머님과 함께 아저씨를 깨끗하게 목욕을 시킨 뒤 평소처럼 저녁까지 잘 경관식으로 드셨다고 한다. 그런데 새벽에 갑자기 이상 증상이 나타나 구급차를 불러 인근 종합 병원으로 이동을 했지만 결국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렇게 우리처럼 꽉 찬 7년, 햇수로는 8년의 가족 간병 생활이 끝이 났다. 덤덤하게 얘기를 하면서 갑작스레 돌아가셔서 재활 병원에 있는 짐을 장례 후 빼오는 날, 담당 의사선생님과 치료사 분들이 인사를 해주시며 위로를 해주시는데 새삼 그 병원에서 5년여간 울고 웃으며 지내던 날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더란다.
그리곤 아버지 휠체어를 병원 정문에서 밀며 나오는데 거기에 타고 계셔야 할 아버지 없이 빈 휠체어를 들고나오는 기분이 너무 이상해 병원 입구에 주저앉아 하염 없이 울었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듣는 나 역시 그 심정이 어떤지 너무 잘 알겠기에 전화기를 들고 조용히 눈물을 줄줄 흘렸다.
"그래도 아버님 많이 아프지 않고 가셔서 너무 다행이잖아요, 그날 깨끗하게 목욕도 시켜드리고 잘하셨어요. 그동안 고생 많았고 아버님도 다 아시니까 너무 속상해 하지 말아요. 우리 다 알잖아. 이제 어머님이랑 여행도 다니고 맛있는 것도 둘이 먹으러 다니고 그래요."
"그래야죠, 엄마가 안 그래도 많이 놀라셨는데 좀 지나면 괜찮으시겠죠? 아 그리고 언제 시간 되세요? 병원복이랑 카테터랑 이것저것 저희가 챙겨 놨거든요. 오셔서 보시고 필요한 거 가져가세요."
"네, 동생이랑 얘기해서 날짜 알려줄게요."
미신보다 무서운 건 돈... 보호자들과 나누는 병원 물품

▲한아름 챙겨주신 환자 용품 사진 외에도 박스로 바리바리 싸주셨던 환자 물품들을 차에 싣고 왔다.
김은영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에서는 환자에게 쓰는 물품들이 넉넉하게 제공이 된다. 하지만 환자가 집이나 요양병원급으로 가게 되면 확실히 환자에게 사용하는 간병 용품도 전보다 넉넉하지 않게 된다. 사소하지만 필요한 물품들을 개인이 준비를 해야 하다 보니 소소하게 돈이 들어가고 그것들이 쌓이다 보면 금액이 만만치 않다.
간병을 하면서 이런 금전적인 상황들을 서로가 알다 보니 이번처럼 환자가 돌아가시는 상황이 되면 그동안 집으로 갈 생각을 하면서 잘 모아 놓았던 것들이나 사 놓고 이젠 필요가 없어진 환자 용품들(기저귀나 환자복, 그리고 휠체어 등)을 필요한 사람에게 나눠주게 된다. 중고로 판매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같이 병원 생활을 했던 친한 보호자들에게 나눠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혹자는 죽은 사람이 쓰던 물건을 받는 건 좀 그렇지 않냐고 할 수 있는데, 나 역시 아마 그냥 일상생활을 했던 사람이라면 그런 미신(?)들을 의식했을 것 같지만, 미신조차 별 힘을 못쓰는 병원이란 곳에서 생활한 지 오래되다 보니 그런 얘기들은 이제 신경 쓰지 않는다. 미신보다 무서운 건 '돈'이다.
병원 교대 일정 때문에 동생이 혼자 차를 몰고 갔다 왔다. 혼자서는 다 옮기지도 못할 정도로 차 트렁크가 꽉 찰 만큼 간병 물품들을 받아왔다. 같이 저녁이라도 먹자는 말을 하셨지만 조심스레 감사 인사만 하고 나왔다고 했다.

▲한아름 챙겨준 환자용품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마음. 감사하게 받아왔다.
김은영
이렇게 하나의 인연이 또 떠나간다.
환자가 사망을 하고 간병하던 사람이 병원을 떠나가면 우리는 다른 세상의 사람이 된다. 마치 이제는 만날 수 없는 또 다른 세상으로 떠난 그 사람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랄까? 지긋지긋한 병원을 떠나 창문 밖의 사람들과 똑같은 일상을 사는 '평범한 세상'으로 돌아간 그 사람에게 굳이 연락을 하는 것은 영 마음에 내키지 않는다. 만약 내가 그 입장이 되어도 당분간 병원이란 곳은 쳐다보기도 싫을 것 같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같이 생활을 했기 때문인지 부재중 전화가 와 있다. 전화를 걸어보니 그간 아버지를 간병하면서 생긴 이명 치료를 위해 병원에 왔는데 우리 생각이 나서 전화를 했단다. 아직 일은 하지 않고 어머니와 평범한 일상을 조금 누리고 있다는 이야기와 함께.
외동딸로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며 살다가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간병과 그 외 모든 집안의 대소사를 어머니와 함께 챙겼던 그녀. 이제는 모든 짐을 훌훌 털고 자신이 있던 그 자리로 가서 못 누렸던 일상의 행복도 찾고, 부모님을 돌보느라 놓쳤던 늦은 청춘의 시간들을 행복하게 즐길 수 있기를 온 마음 다해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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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간 가족 간병하던 사람에게 차 트렁크 넘치게 받아온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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