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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밥부터 포기합니다, 그래야 한 달 버텨요

굶고, 아껴쓰고... '황금' 같은 장애인 활동보조 시간, '일상' 제대로 살아내기 위해선 개선이 필요합니다

등록 2025.08.23 19:41수정 2025.08.23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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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사진 오른쪽)가 지난 5월 23일 활동보조사의 도움을 통해 횡단보도를 걷고 있다.
기자(사진 오른쪽)가 지난 5월 23일 활동보조사의 도움을 통해 횡단보도를 걷고 있다. 조현대

장애인들의 활동을 돕는 '활동지원 서비스 제도'가 어느덧 시행 20주년을 앞두고 있다. 이 제도는 2006년 11월 서울시에서 전격 도입한 후 2007년 전국으로 확산됐고 2011년부터는 법률로 제정돼 운영 중이다. 활동지원 서비스 제도는 신체 및 정신적 장애로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에서 어려움을 겪는 장애인들의 자립생활을 돕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시각장애인인 기자 역시 활동보조사를 통해 정부 정책이나 법률 자료에 대한 설명을 듣고 더 정확한 기사를 작성할 수 있게 됐다.

이처럼 '활동지원 서비스 제도'가 중증 장애인들에게 하나의 제도로 자리 잡았지만 여전히 기자 주변에 있는 많은 장애인들, 특히 시각 장애인들은 시간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한다.

부족한 활동지원 시간, 일단 '밥'을 포기한다

대체로 중증 시각 장애인들은 한 달 평균 150시간, 많게는 180시간의 활동 보조 시간을 받고 있다. 한 달 내내 서비스를 이용한다고 가정하고 시간 계산을 해보면 매우 빠듯한데, 180시간의 경우 하루 6시간만 사용할 수 있다. 150시간인 경우 더 줄어 5시간밖에 쓰질 못한다.

하루 평균 5~6시간만 서비스를 이용하는 상황과 달리 실제 중증 시각 장애인들에겐 그 배가 넘는 시간이 필요하다. 당장 아침에 일어나면 활동보조사가 집에 방문해 식사를 준비하고 가사 일을 하면 3~4시간. 또 점심에 병원 진료나 장 보기 등의 일에 동행하면 3~4시간이 지나간다. 여기에 활동보조사가 저녁 식사까지 준비하면 하루 평균 10~12시간 정도는 서비스를 이용해야 생활이 보장되는 셈이다.

대부분의 일상생활에서 활동지원 서비스가 필요한데도 시간이 적다 보니 주변 지인들은 하는 수 없이 덜 중요한 업무를 혼자서 처리하며 한 달을 버틴다고 말한다. 가장 쉽게 줄이는 것이 식사다. 아침식사를 건너뛰고 점심 때부터 활동지원 제도를 이용하는 식이다. 오후 6시가 되면 활동보조사가 퇴근하는데 가끔 새벽에 배가 고파도 별다른 식사를 할 수 없어 미리 준비해 둔 빵이나 식은 누룽지를 먹기도 하고 이마저도 힘들면 굶는다는 지인들도 있었다.

치매 노모 두고 혼자 응급실로... 서럽고 답답한 이 상황


하는 수 없이 혼자 힘으로 뭔가를 하려다 대형사고가 나기도 하는데 용인 원삼에 사는 중증 시각 장애인 지인이 그랬다. 그는 활동지원 서비스 시간을 아끼려 아침에 혼자 컵라면을 먹으려다 그만 커피 포트에 끓인 물을 엎질러 발등에 3도가 넘는 화상을 입었다. 경증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모시고 있던 그는 어머니를 둔 채 119를 불러 용인 세브란스 병원에서 응급 처치를 받았다.

'2주 입원' 진단을 받은 그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자신이 아니면 누군가 어머니를 돌봐야 하는데 마땅히 돌볼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미안함과 죄책감 때문이었다. 그나마 어머니를 돌봐주는 요양보호사가 있었지만 이마저도 3~4시간밖에 되지 않아 남은 시간 동안은 어머니 혼자서 외로이 계셔야 했던 상황이었다.


수원에 사는 맹학교 후배 역시 턱없이 부족한 활동보조 시간에 전전긍긍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50대 중증 시각장애인인 그는 어느 날 새벽 갑작스러운 복통을 겪었다. 활동보조사가 동행하는 낮이라면 도움을 받을 수 있었겠지만 아무도 없는 새벽에 그는 혼자 아픈 배를 움켜쥐며 근처 대학병원 응급실에 가야만 했다. 병원 측에선 "중증 장애인이 혼자 응급실에 오면 안 된다"며 보호자를 계속 찾았고, 그에게 여러 번 주의를 주며 치료를 마쳤다. 당시 상황을 기자에게 설명하던 그는 "대한민국 복지가 이 정도밖에 안 되냐"며 한탄했다.

장애인 활동지원 서비스 제도가 시행된 지 19년, 법으로 제정된 지 14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중증 시각 장애인들에게 이 시간은 맘 편하게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굶어가면서 아껴 쓰는 '황금' 같은 시간이다. 이들에게 활동보조사가 없는 시간은 언제든 위험에 놓일 수밖에 없다. 밖에 나가서 장을 보는 일, 커피를 끓여 마시는 일, 약을 타러 약국에 가는 일 등 비장애인들이 일상적으로 누리는 생활 전반에서 이들은 위험을 겪을까 조마조마해하고 있다.

이들에게 필요할 때 언제든 쓸 수 있는 활동지원 서비스 시간이 주어졌다면 어땠을까. 갑작스럽게 복통을 겪은 지인은 혼자서 119를 불러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됐고, 안 그래도 아픈데 보호자가 없다는 이유로 괜한 잔소리를 병원 측에 듣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3도 화상을 입은 다른 지인도 활동지원 시간이 하루 3~4시간만 더 있었더라면 아침 식사를 굶지 않아도 됐을 것이고 덕분에 경증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조금은 더 돌볼 수 있었을 것이다.

진정으로 '기본이 튼튼한 사회'를 위해서는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정기획위원회 국민보고대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정기획위원회 국민보고대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이재명 정부가 지난 13일 발표한 5대 국정목표 및 123대 국정과제
이재명 정부가 지난 13일 발표한 5대 국정목표 및 123대 국정과제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이렇듯 중증 장애인에게 장애인 활동지원 시간은 생명과도 같다. 이제라도 부족한 시간 때문에 아침밥을 포기하는 장애인들은 없어야 한다. 이재명 정부는 지난 13일 5대 국정목표 중 하나로 '기본이 튼튼한 사회'를 언급했다. 여기에 제1 추진전략이 '생명과 안전이 우선인 사회', 제2 추진전략은 '내 삶을 돌보는 복지'였다.

특히나 정책브리핑을 통해 '장애인 맞춤형 지원체계 구축'을 추진한다고 언급한 만큼 중증 장애인의 활동지원 서비스 시간에도 큰 관심을 기울여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는 중증 장애인들의 복지 향상뿐만 아니라 비장애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앞으로 이재명 정부의 남은 5년 동안 배곯으며 활동지원 서비스 시간을 사용하는 중증 장애인들의 안타까운 사례를 더는 듣지 않았으면 한다.
#장애인 #활동보조 #활동지원 #중증장애인 #이재명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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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둠 속에서도 색채있는 삶을 살아온 시각장애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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