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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7세 고시', '4세 고시'라는 말이 낯설지 않습니다. 제도 이름은 아니지만, 유아 때부터 학원 입학시험과 선행학습을 요구하는 현실을 빗댄 표현입니다. 최근 유아 대상 입학시험과 과도한 선행을 줄이려는 업계의 자율 규제와 행정 점검이 이어지는 것은 분명 바람직한 흐름입니다. 그러나 불안과 경쟁을 부추기는 뿌리가 바뀌지 않는 한, 이름만 달라진 새로운 사교육은 언제든 다시 등장할 수 있습니다.
부모의 마음은 사랑에서 비롯됩니다. 더 좋은 배움을 주고 싶은 바람은 너무도 자연스럽습니다. 다만 그 바람이 조급함과 비교로 기울 때, 아이의 행복이 먼저 닳아갑니다. 일부 학원들은 "먼저 시작해야 앞선다"는 말을 앞세워 부모의 불안을 자극합니다. 대입 중심의 경쟁 구조, 정보 쏠림, 돌봄의 빈틈 같은 사회적 요인도 부모를 서두르게 만듭니다. 그렇기에 이 문제를 단순히 개인의 욕망으로만 돌려볼 수는 없습니다. 구조와 문화, 제도가 함께 바뀌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아이의 발달은 속도를 겨루는 경주가 아닙니다. 여러 연구가 보여주듯, 어린 시절 과도한 학업 스트레스와 비교 경험은 정서 안정, 자기조절 능력, 또래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남깁니다. 실제로 아동·청소년의 우울과 불안 관련 진료가 해마다 늘고 있다는 통계가 이를 뒷받침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너무 이른 나이에 단선적인 목표를 쥐여주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봐야 합니다. 앞만 보고 달리도록 채근받는 경주마에게, 과연 배움의 기쁨이 남아 있을까요.
아이에게 놀이는 사치가 아니라 권리입니다. 유엔 아동권리협약도 놀고 쉬며 여가를 누릴 권리를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함께 뛰놀며 어울리는 가운데 아이들은 말과 마음을 나누는 법을 배우고, 부딪히고 화해하는 과정에서 사회성과 공감 능력을 키웁니다. 상상하고 만들고 깨닫는 힘도 놀이 속에서 더 단단해집니다. 최근 학교 교육도 점점 과정과 경험, 성장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문제집 한 권을 더 푸는 것보다, 하루 한 시간 마음껏 놀며 스스로 궁리해 보는 시간이 아이를 오래 가는 배움으로 이끕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멈춤과 전환입니다. 말만 바꾸는 대책이 아니라, 삶을 바꾸는 실천이 이어져야 합니다.
가정은 아이의 속도를 존중하고, 오늘의 표정과 잠자는 시간을 성적표보다 먼저 살펴야 합니다. 미리 앞서는 공부보다 꾸준히 읽고 묻고 대화하는 시간을 지켜줍시다.
지역사회는 아이들이 안전하게 놀고 모일 수 있는 마을 놀이터, 도서관, 돌봄터를 촘촘히 마련해야 합니다. 방과후에 갈 곳이 있을 때 사교육 의존은 자연히 줄어듭니다.
학원은 유아 대상 입학시험과 과도한 선행 광고를 스스로 절제하고, 기준을 세워 지켜야 합니다. 행정은 그 기준이 현장에서 지켜지도록 점검하고 안내해야 합니다.
학교는 점수 위주의 줄 세우기에서 벗어나, 과정을 살피는 평가와 서술형 피드백을 넓혀야 합니다. 부모 교육과 상담도 일상적으로 열어 불안을 함께 낮추어야 합니다.
국가와 지자체는 지역 간 교육·돌봄 격차를 줄이는 맞춤 지원을 강화해야 합니다. 아이가 사는 곳이 아이의 미래를 가르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문제를 개인의 선택에만 맡겨둘 수 없다는 점입니다. 부모가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제도와 구조가 그대로라면 불안을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유아 대상 입학시험과 조기 선행을 법으로 명확히 금지하는 장치가 필요합니다. 현재의 법령은 사각지대가 많습니다. 별도의 금지법을 마련하거나 기존 법률을 고쳐 금지 조항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가정과 학교, 지역사회가 안심하고 아이들에게 놀이와 배움의 시간을 돌려줄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한 아이의 하루입니다. 좋아하는 것을 스스로 찾아보는 시간, 서툴러도 해볼 기회, 실수해도 다시 일어나는 용기. 이 세 가지가 모여 아이의 평생을 떠받치는 힘이 됩니다. 좋은 대학보다 행복한 아이가 더 중요하다는, 너무도 단순한 진실을 우리 사회 전체의 약속으로 다시 세워야 합니다.
지금, 경쟁의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아이와 함께 천천히 걸어가 봅시다. 그 길 위에서 배우는 것들이야말로 아이를 단단하게 키우는 참된 배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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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성은 교육희망네트워크 상임대표,교육대개혁국민운동본부 공동운영위원장으로 교육개혁 운동을 함께하고 있다. 하늘씨앗교회 목사이며 행복마음연구소 대표로서 영성과 마음챙김 명상으로 개인과 공동체의 회복을 돕고 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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