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구 아저씨' 김재홍 그림
푸른책들
아이들만 보면 엉덩이를 쑥 내밀고 방구를 뀌어 깔깔 웃음을 만들던 방구 아저씨는 친일하는 이장이 데리고 온 일본 순사 이또오의 곤봉에 맞아 그 자리에서 숨진다. 방에 있던 '은나비 괴목장'을 내어 놓지 않았다는 이유로. 징용이니 징병, 공출에 일본인들의 패악질까지 고스란히 감당해야 했던 우리 백성들의 아픔이었다.
'꽃을 먹는 아이들'은 관동 대지진의 여파가 되었던 '조선인 대학살'을 보여준다. 그때, 그들이 얼마나 무자비했는지, 그때 그들이 얼마나 미치광이 같았는지를 겐지라는 일본 소녀의 시선을 따라가며 그린다. 소녀는 죽는다. 조선인들이 잘 발음하지 못하는 일본말을 소녀도 발음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혀가 짧은 그 일본인 소녀는 폭도들 앞에서 그저 죽어야 할 조선 아이였다.
'남작의 아들'은 일본인의 아이, 친일파의 아이, 그리고 창씨개명 하지 않은 조선 아이의 갈등을 그린다. 조선인이지만, 조선인일 수 없고, 일본인도 될 수 없었던 친일파 자손들의 아픔을 조명한다.
'잠들어야 새야'는 일본군 위안부의 이야기다. 열세 살 꽃 같은 어린 소녀의 독백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심장을 저리게 한다.
"아, 부끄러워라! 조선의 남자들은 어쩌다가 제 나라 하나 지켜 내지 못하고, 풀잎 같은 딸들을 이토록 더럽히는지. 어떻게 했기에 한 떨기 꽃 같은 제 누이들을 이렇듯 욕보이며 천덕꾸러기로 만드는지."
소녀의 쓰라린 한탄이 가슴을 울린다.
'잎새에 이는 바람'은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해방을 눈앞에 둔 채 눈을 감아야 했던 윤동주의 모습을 상상한다. 여린 성정의 그가 조국의 아픔 앞에 어떻게 아파했는지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긴 하루'는 해방된 조선에 남은 일본인을 바라보았다. 순이의 학교 선생님 데라우치는 천황의 항복 앞에 갈 길을 잃는다. 성난 조선인들을 피해 달아나는 데라우치를 챙기는 순이와 순이 엄마의 마음은 컸다. 덕분에 해방된 조선은 일본인 데라우치에게 큰 나라가 되었을 것이다.
'흙으로 빚은 고향'은 해방 후에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제일 조선인들이 어떻게 살았을지를 들여다본다. '조센징'으로 불리며 차별 받아야 했던 삶 속에서도 정체성을 지켜나간 수많은 이들의 삶을 그려보게 한다.
표제작이자, 마지막 작품인 '마사코의 질문'은 일본인 아이와 할머니의 대화로 이어진다. 할머니는 원자 폭탄이 떨어진 날에 관해 이야기하며 얼마나 잔인하고 나쁜 행동이었는지를 말한다. 그러나 손녀 마사코는 질문한다.
"왜 미국은 우리 일본에다가 꼬마를 떨어뜨렸어?"
마사코는 지구 위에 많은 나라 중에 왜 일본이었는지, 왜 전쟁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할머니는 일본이 피해자란 말만 되풀이 했지만, 마사코가 정작 궁금한 건 전쟁의 이유였다.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그날의 일일 뿐 아니라, 오늘의 일이며, 내일의 일이 될 수 있다. 역사를 바르게 인식하지 않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속한 공동체, 우리의 국가가 힘을 잃을 때 국민이 어떤 아픔을 겪어야 하는지 과거가 우리에게 알려준 것이다.
역사의 아픔을 생생하게
<마사코의 질문>에 그려진 삽화는 그림책 <동강의 아이들>로 알려진 김재홍의 작품이다. 이 이야기의 삽화를 그가 맡은 것은 신의 한 수다. 그의 그림은 언제나 생생하고, 빛난다. 어두움 속에서도 빛이 보이고, 등장인물들의 표정이 살아있다. 그가 그린 눈빛들 덕분에 이야기의 등장인물들이 독자에게 와서 생생하게 살아난다.
어른 책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삽화가 어린이책에서는 꼭 등장한다. 어린 독자가 이야기의 상황을 직관적으로 느끼고. 몰입할 수 있게 하는 장치일 것이다. <마사코의 질문>에서는 그 장치를 잘 사용했다. 김재홍이 그린 그림들 속 배경과 빛, 그림자의 의미를 곱씹으며 동화를 읽어낼 수 있다면 이야기는 한층 더 생생해질 수 있을 것이다.
8월이 간다. 8월이 가도 언제든 손만 뻗으면 잡을 수 있는 책 속에, 잊지 말아야 할 우리의 이야기가 아직 남아 있으니 고마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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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년생 동화작가의 당부 "다시는 꺾이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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