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치매 할머니를 가족에게 인계하던 날

90세 할머니께 받은 환한 미소... 경찰로서 보람을 느낍니다

등록 2025.08.27 15:48수정 2025.08.27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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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찰청 긴급 신고 112입니다."
"폐지를 실은 손수레를 끌고 할머니가 도로로 걸어가는데 너무 위험합니다."

"정확한 위치를 말씀해 주시겠어요?"
"잠실에서 성남 쪽으로 가는 탄천 길입니다."


"손수레를 끌고 가고 있는 게 맞나요?"
"노인 분들이 보행기로 쓰는 보조 기구 있잖아요. 거기에 폐지를 담아서 밀고 가고 있어요."

"알겠습니다. 경찰관이 현장으로 출동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지난 8월 18일 오후 5시 30분. 112신고가 접수되었다. '코드 2' 위험 방지 신고다. 신고자가 말한 장소는 손수레를 끌고 올라가기가 쉽지 않은 곳이다. 아래쪽 도로에서 탄천 길로 가는 길은 경사가 심한 오르막길이 대부분이다. 아니면 아주 멀리서 손수레를 끌고 와야만 가능한 도로였다. 또한, 해당 도로는 편도 1차선 좁은 도로다. 사람이 보행할 수 있는 인도도 없다. 그런 곳에 손수레를 끌고 가는 건 젊은 사람도 쉽지 않다.

순찰차가 현장에 도착했다. 마침, 현장을 주행 중이던 오토바이 운전자가 할머니를 보호하고 있었다. 다행이었다. 탄천 길 아래 이면도로의 안전한 곳으로 할머니와 함께 이동했다. 할머니는 걷기 힘든 어르신들이 사용하는 보행 보조기 위에 상당히 많은 양의 폐지를 담아 두고 있었다.

후배 경찰관은 그 보행기를 끌고 내려왔다. 나는 할머니의 한쪽 팔을 잡고 매우 천천히 걸었다. 내 의지가 아니었다. 제대로 걷기도 힘든 할머니의 보폭에 맞춘 것이었다. 할머니는 제대로 걷지도 못할 정도로 힘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 무거운 보행기를 끌고 이곳까지 왔을까.


"아휴"만 하시던 할머니, 치매셨다

치매 할머니 폐지를 실은 노인 보행 보조기
▲치매 할머니 폐지를 실은 노인 보행 보조기 박승일

"할머니 댁이 어디세요?"
"아휴..."


"말씀하시기 힘드세요? 물 좀 드릴까요?"
"아휴..."

"할머니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우리 경찰관이에요."
"아휴..."

그렇다. 할머니는 치매였다. 너무도 작은 목소리로 뭐라 말씀하시는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몇 번을 물어도 돌아오는 건 흐릿한 신음 뿐. 성함도 연세도 제대로 말을 못 했다. 그러다 알아낸 건 성씨가 유아무개라는 정도만이었다. 여기서 집 주소를 알아낸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순찰차에는 치매 노인들의 지문을 확인할 수 있는 장비가 있다. 업무용 휴대전화와 연계되어 있어 현장에서 바로 인적 사항을 확인 할 수 있는 장비다. 할머니의 손가락을 엄지부터 검지, 중지, 약지, 소지. 여러 번을 실시했는데 쉽게 확인할 수 없었다.

아주 어린 아이들은 지문이 제대로 생성되지 않아 정보 확인이 안 될 때가 있다. 반면 어르신들의 경우에는 지문에 상처가 많고 닳고 닳아서 제대로 확인이 안 될 때가 있다. 장시간 여기서 계속 있다간 할머니께서 더욱 지치실 것 같았다. 결국 정확한 주소지를 확인하지 못하고 할머니를 순찰차에 태워 지구대로 왔다.

할머니께 차근차근 집 주소를 물었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고향이 남원이라는 정도였다. 자녀들의 휴대전화라도 알고 있는 게 있는지 물어봤다. 가끔 치매가 있더라도 자녀의 휴대 전화번호를 기억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자필 이름 치매 할머니께신 쓰신 글을 보고 이름을 유추했다.
▲할머니의 자필 이름 치매 할머니께신 쓰신 글을 보고 이름을 유추했다. 박승일

그럴 때마다 신기하단 생각을 한다. 그런데 할머니가 숫자를 띄엄띄엄 말한다. 나는 급하게 볼펜과 메모지를 가져왔다. 그리고 써 달라고 부탁드렸다. 실제로 휴대전화 번호를 쓰셨다. 아쉽다. 등록된 전화번호가 아니다.

이름도 써 달라고 부탁했다. 도저히 알아볼 수 없는 흐릿한 필체였다. 그 정보로 여러 차례 유사한 이름으로 조회했다. 드디어 이름과 주소를 확인했다. 물론 함께 살고 있는 가족도 확인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연락해 보호자와 연락 되었다. 60대 아들이 지구대로 오기로 했다.

할머니는 정확히 90세의 나이였다.

"할머니 손톱을 뜯으면 안 돼요. 아파요."

할머니를 지켜보던 후배 경찰관이 말했다. 나는 무슨 일인가 싶어 할머니에게 다가갔다. 할머니의 왼쪽 중지 손톱이 심하게 깨져 있었다. 그 손톱이 계속 신경 쓰이셨던 것이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다. 지난해 어머니의 발톱을 깎아 드린 일이 생각났다. 그 이야기는 <오마이뉴스>에 글로도 소개했다(관련기사 : "어머니 발톱을 깎아 드리고 생긴 일").

개인 관물함에 있던 손톱깎이를 가져왔다. 할머니께서는 자연스레 손을 내밀었다. 조심해서 깨진 손톱을 다듬어 드렸다. 한결 할머니는 편안해진 표정이다. 그 사이 할머니의 보호자인 아들이 지구대에 도착했다.

할머니께서는 치매가 있기 전에도 종종 폐지를 주워 손자들 용돈을 주곤 했다고 한다. 지금은 치매가 심해서 집에서 나가지 않도록 자주 말씀을 드려도 틈만 있으면 나가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할머니께 실시간 위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단말기를 목걸이로 달아 드렸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을 꺼내 보여 주었다.

보통은 치매 어르신들의 보호자 연락처를 팔찌에 새겨 차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할머니는 목걸이를 하고 있었다. 웃옷 안쪽으로 차고 있던 목걸이가 겉으로는 보이지 않아 발견하지 못했다. 나는 몇 번이나 잘했다고 말했다.

경찰에서는 치매 노인들의 지문을 등록해 관리하는 '안전 드림'이라는 제도가 있다. 가까운 지구대나 파출소에 방문하면 쉽게 등록할 수 있다. 치매 노인이 집을 나갔을 때 실종 시스템에 등록되어 전국 경찰관서에서 동시에 확인할 수 있는 유용한 제도다. 전국에 동시에 전파되기 때문에 쉽게 찾을 수 있다. 만약 가족 중에 치매 어르신이 있다면 적극 활용했으면 한다. 물론 팔찌나 목걸이에 보호자의 연락처를 기록해 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치매 노인의 보호자 연락처 치매가 있는 어르신들의 팔찌나 목걸이에 보호자의 연락처를 남겨두자.
▲치매 노인의 보호자 연락처 치매가 있는 어르신들의 팔찌나 목걸이에 보호자의 연락처를 남겨두자. 박승일

할머니의 미소, 이 맛에 경찰로 산다

"어르신 아드님 보니까 좋죠?"
"..."

"이제 폐지 줍는 일은 그만 하세요. 너무 위험해요. 그리고 가족들도 걱정하니까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아시겠죠?"
"..."

할머니께서는 옅은 미소로 답을 대신했다. 60대 아들의 부축을 받아 지구대를 나섰다. 쉽게 걷지 못했다. 나는 아들의 반대편에서 팔을 잡아 도왔다. 그러자 할머니께서는 걸음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지금까지 본 것 중에 가장 큰 미소였다. 그것도 한번이 아니었다. 몇 발짝을 걷다 다시 멈춰서고 고개를 들어 여러 번 미소 지었다. 너무도 편안하고 보기 좋은 미소였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너무 생생하다.

우리나라도 이제 초고령화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다. 얼마 전 뉴스에서 올해 기준 치매 환자 수가 97만 명으로 집계, 이듬해 100만 명을 넘길 것으로 예측된다는 보도를 봤다. 이번 사례처럼 홀로 길 위를 방황하는 치매 어르신의 모습 또한 더 많아질 것이다.

치매는 누구나 맞닥뜨릴 수 있는 노년의 질병이다. 경찰은 경찰 나름의 방법으로 우리 이웃은 이웃대로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주변에 의심되는 치매 어른을 발견했을 때 신고 하나가 소중한 생명을 지킬 수 있다. 치매 어르신들의 삶은 그때 훨씬 더 따뜻하고 안전해질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사회의 품격이 될 것이다.

나는 현재 25년여를 경찰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오늘 할머니께 받은 환한 미소는 나의 품격을 높여 주었다. 이 맛에 나는 오늘도 폴리스로 살아간다. 진짜 기분 좋은 날이다. 그런 날을 만들어주신 할머니께 감사드린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런치스토리(박승일의 경찰관이 바라본세상에서) 금요일 연재에도 실립니다.
#박승일 #경찰 #서울경찰청 #송파경찰서 #치매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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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방경찰청에 근무하고 있으며, 우리 이웃의 훈훈한 이야기를 쓰고 싶은 현직 경찰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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