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아무르> 중
티캐스트
어르신의 남편 분은 아흔 중반이 넘은 연세시다 보니 치매 증상도 약간 있고 전체적인 신체 기능도 떨어진 상태다. 이번에는 자식들까지 다 왔다고 했다.
자식들은 본인들이 병원 갔다올테니 엄마 좋아하는 글쓰기 수업 다녀오시라 했다는데, 어르신은 마음이 불편해서 못 왔다며 내게 죄송하다 하셨다. 나는 마음 편한 게 제일 중요하니 그런 말씀 절대 마시라고 했다.
며칠 전 봤던 프랑스 영화 <아무르>가 생각났다. 2012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다. 제목을 해석하면 그냥 '사랑'이다. 이 영화는 시작 몇 분을 제외하고 주인공 노부부의 집이 배경이다. 영화를 볼 때는 그저 '세트 제작 예산 진짜 알뜰하게 썼다' 싶었는데 어르신과 통화하면서 영화가 현실을 무섭게 반영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전에도 어르신은 남편 때문에 외출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복지관 수업에 열심인 것도 이 시간은 그나마 남편이 적응한 덕이라 그랬다. 만일 남편 상태가 나빠지면 이 시간마저 없을 거라며 쓸쓸히 웃으시던 모습이 떠올랐다.
영화에서 안느는 첫 뇌졸중 증상으로 입·퇴원을 경험한 후 자기를 요양 시설에 절대 보내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다. 남편 조르주는 안느의 부탁을 받아들이고 몸이 불편한 안느와 함께 살아갈 준비를 한다. 그 과정에서 둘은 서서히 고립된다.
안느의 상태는 점점 나빠진다. 조르주는 간병인을 구해보지만 안느를 거칠게 대하는 모습을 보고 바로 해고한다. 조르주 혼자 돌봄을 감당하는 건 절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인지 조르주는 살해 당하는 꿈까지 꾼다. 쇠락한 노년의 삶은 실제로 '집'에서만 이뤄진다는 것을 영화가 보여주고 있었다.
영화는 어떤 흥미진진한 장면이나 인위적 요소는 전혀 없다. 오히려 카메라는 정적인 순간들을 그대로 담고 있다. 두 걸음이면 끝날 거리를 안느가 조르주 부축을 받으며 3분 동안 조금씩 움직일 때 그 모든 움직임을 딱히 음악 없이, 카메라 움직임도 없이 멀찍이 그대로 다 담아낸다. 처음엔 그런 편집이 지루했는데, 나중에는 두 주인공 내면의 심리와 불안감이 내게 고스란히 전달되는 느낌이었다.
삶이 점점 닫힐수록 문틈을 파고드는 빛, 글쓰기
그 불안감이 떠오르면서 통화의 끝에서 나도 모르게 "왕언니가 집에만 계시면 안 되죠. 다음 주는 꼭 나오셔야 해요!"라고 말했다. 왕언니는 우리 반 다른 어르신들이 부르는 말이다. 내가 어르신께 왕언니라고 한 건 처음이다. 내 '왕언니'에 어르신은 큰 웃음이 터졌고, 나도 덩달아 그냥 웃어버렸다.
어르신이 남편을 부축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일까. 어르신의 하루 어딘가 안느와 조르주의 풍경이 있을 것 같았다. 조르주는 안느보다 덩치라도 있지, 어르신은 그 작은 몸으로 할아버지를 어찌 부축할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다.
영화 <아무르>는 사랑 영화도, 공포 영화도 아닌 그냥 현실을 가장 냉철하게 바라본 영화다. 중산층 가정이라 해도 노쇠 앞에서는 피해갈 수 없는 황폐한 모습이었다.
내가 수강생으로 만나는 어르신들은 어쨌든 집 바깥 활동을 할 수 있으니 아직 <아무르> 상태로 가진 않았지만 그런 순간이 '도둑처럼' 찾아올지 모른다. 그러고 보니 영화 초반에 주인공의 집에 도둑 침입 흔적이 있다는 설정이 '도둑처럼' 찾아오는 순간을 의미한 걸지도 모르겠다.
영화 속 안느와 조르주의 고립된 집이 더 이상 스크린 속의 낯선 공간이 아니었다. 어르신과의 통화는 그 풍경을 현실로 끌어와 내 앞에 놓아주었다.
그럼에도 어르신은 글을 쓰고 싶어 하신다는 것을 나는 안다. 어쩌면 글쓰기 수업은 창문을 닫아버린 집 안으로 스며드는 바깥 바람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삶이 점점 닫혀갈수록 글은 문틈으로 들어와 빛과 바람을 불어넣는 마지막 숨결이 된다.
그 과정을 오래도록 함께 하고 싶다. 왕언니 어르신을 다음 수업에서는 꼭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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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수업 결석한 어르신... 영화 <아무르>가 떠올랐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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