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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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첫 일본-미국 연쇄 순방(23~24일 일본, 24~26일 미국)에서, '국익 중심 실용 외교'의 첫 단추를 잘 끼웠습니다.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특검 수사를 겨냥해 '숙청', '혁명'이란 험악한 용어가 담긴 메시지를 발신해 긴장감이 돌기도 했으나, 회담 뒤엔 '위대한 지도자' '전폭 지지'라는 찬사로 분위기가 반전됐습니다.
이 대통령의 최대 난관으로 꼽혔던 한일, 한미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난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미국에 앞서 일본을 먼저 방문한 결정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때문에 이 대통령은 일본에서 상상 이상의 큰 환영을 받았습니다. 미국보다 먼저 일본을 방문한 최초의 한국 대통령이니 일본 쪽으로선 당연히 '즐거운 놀람(pleasant surprise)'을 느꼈을 겁니다. 더구나 이 대통령은 당선 전부터 일본 주류 사회에서 '반일 친북'의 과격한 지도자로 낙인찍혀 있는 상태였습니다. 이 대통령의 파격 행보가 놀라움의 강도를 더욱 높인 이유입니다.
나카소네의 '선 한국- 후 미국' 방문과 형식 비슷
일본 총리 중에서도 미국 방문 직전에 한국을 먼저 방문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나카소네 야스히로입니다. 1982년 11월 총리가 된 그는, 다음 해 1월 11일 가장 먼저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일본 총리의 첫 공식 방한이기도 했습니다. 박정희 군사 정권 내내 군사 정권을 지지하는 인상을 줄까 봐 공식 방문을 사려왔던 일본 총리가 '광주의 피'를 제물 삼아 등장한 전두환 정권 때 '이 중의 첫 번째'라는 역사적 의미를 띤 방한을 결행했으니, 많은 한국 사람이 '불쾌한 당혹감'을 느꼈습니다.
나카소네가 미국 방문(1월 17~20일)에 앞서 한국을 먼저 방문한 건 1982년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 파동으로 경색된 한일 관계를 개선하고, 이를 발판으로 대미 외교력을 강화하며 동아시아에서 일본의 위상을 높이려는 다층적인 외교 전략의 일환이었습니다. 그는 한국 방문에 이은 미국 방문에서 그 유명한 '일본 열도 불침항모' 발언을 합니다. 전후 맥락으로 봐, 그의 선 한국 방문은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나카소네 총리가 이끄는 소련 대항 연합전선에 전두환 군사 정권을 끌어들이려는 전략적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대통령의 일본 선제 방문은 '동병상련'의 연대 의미
그러면 이 대통령이 미국 방문 직전에 먼저 일본을 방문하기로 한 의도는 무엇이었을까요? 저는 간단히 말해, 한일 간 '동병상련의 연대'를 꾀하려는 전략적 노림수라고 봅니다. 한일 두 나라 모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내뿜는 경제·안보 양면의 '광풍'에 직면해 있습니다. 더욱이 한일은 미국과 동맹이면서 통상 중심 국가이고, 혼자서는 미국에 맞설 힘이 없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런 때 두 나라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은 비슷한 어려움을 공유하고 협력하면서 위기를 타개하는 것입니다. 이 대통령이 일본 방문에서 굳이 과거사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미래 협력을 강조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 1박2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한 이재명 대통령이 23일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회담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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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보수 성향 한반도 전문가 빅터 차는 <적대적 제휴-한국, 미국, 일본의 삼각 안보 체제>라는 책에서, 한일 두 나라는 미국으로부터 방기의 위험을 공유할 때 서로 불안을 공유하고 협력을 확대한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또 미국으로부터 방기의 불안을 느끼는 정도가 비대칭적일 경우에 한일의 역사 갈등이 재발한다고 했습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이 대통령이 역사 문제를 밑으로 내려놓은 건 한일 두 나라가 미국으로부터 동시에 거센 압박을 받는 상황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볼 수 있는 거죠.
이재명 정권이 '트럼프 발 격동의 세계'에 대응해 '국익 중시 실용 외교'를 꾀하려는 몸부림은 일본의 사례 외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대미 수출 몫이 한국 이상으로 큰 동남아의 강국 베트남의 또 럼 공산당 총서기를 첫 국빈 방문 대상자로 받은 것, 조현 외교부 장관이 일본·미국 순방에 이어 바로 독자 외교의 본보기인 인도를 방문한 것, 이 대통령이 일본과 미국을 방문하면서 동시에 중국에 특사단을 파견한 것, 우원식 국회의장이 이 대통령 대신 9월 3일 중국 전승절 행사에 참석하는 것 등입니다. 이런 움직임을 함께 묶어서 보면, 공허한 가치와 진영에 갇혀 허장성세 외교에 허우적대던 윤석열 정권과 확연하게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치밀한 준비로 돌파한 트럼프의 '럭비공' 공세
이 정권의 '국익 중심 실용 외교'의 초반 성패는 트럼프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이 대통령은 주도면밀한 준비로 트럼프의 럭비공 공세를 피하고 좋은 결과를 냈습니다. 북한 문제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은 피스 메이커(peace maker)를 하고 나는 페이스 메이커(pace maker)를 하겠다'라는 말은 즉흥적으로 나올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 이재명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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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보다 트럼프 대통령이 위안부 문제와 한일 협력의 중요성을 거론할 때 이 대통령의 대응에 더욱 눈길이 갔습니다. 소인수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 위안부 문제 등 아주 민감한 이슈가 있는 것으로 안다. 과거의 일 때문에 한국과 일본이 잘 지내기가 어려운 것인가"라고 묻자, 이 대통령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트럼프 대통령께서 한미일 협력을 매우 중시하고 계시기 때문에 제가 트럼프 대통령을 뵙기 전에 일본과 미리 만나서 (트럼프) 대통령께서 걱정할 문제를 미리 정리했다고 생각해 주시면 좋겠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미국보다 일본을 먼저 방문했던 전략이 '신의 한 수'였음을 보여준 순간이었습니다.
그동안 한미일 3국 관계는 미·일이 주도하고 한국이 뒤를 추수하는 것이 상례였습니다. 윤석열 정권 때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의 하위 구성원으로 참가할 것을 약속한 2022년 11월 프놈펜 한미일 공동선언, 중국과 러시아를 공동의 적으로 삼는 한미일 3국의 '유사 군사동맹'을 맺은 2023년 8월 캠프데이비드 회담이 대표적입니다. 이번엔 한미일 협력의 방향이 윤 정권 때와 역으로 추진되었습니다. 이번엔 이 대통령 주도로 한·일이 먼저 손을 잡고 미국의 공세에 대응하는 모양새가 됐습니다. 큰 나라가 아니더라도 창의적인 외교로 전략적 공간을 마련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쾌거입니다.
과거사 문제 과도한 양보로 거센 후폭풍도
이런 호평에도 불구하고 이 대통령이 한일 간 핵심 문제인 과거사를 너무 등한시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일본군'위안부'와 강제 동원 관련 시민단체의 비판이 매섭습니다. 일본군 성노예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연대는 "실용 외교 속에 역사 정의가 사라졌다"라고 비판했고,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은 " 제삼자 변제는 조약도 아니고 한쪽의 일방적 발표일 뿐인데 '국가 간 약속'이라며 그 격을 한껏 높여 주기까지 했다"라고 비난했습니다. '빛의 혁명'을 통해 탄생한 정권이기에 역사 정의 실현에 앞장서리라고 믿었던 이들의 배신감과 분노는 당연합니다. 저는 이 대통령이 적어도 '위안부와 강제 노동 문제는 역대 한일 정부가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으로 완전히 해결된 건 아니다'라는 수준의 발언은 명시적으로 했었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대통령이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시면 (역사 문제도) 더욱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라고 했으니 지켜볼 일입니다.
'삼국지연의'로 중국 제국의 본령을 해석한 김월회 서울대 중문과 교수는 "자원도 인재도 부족한 촉나라가 막강한 부와 인재를 거느린 위나라와 오나라라는 강국의 틈새에서 제국을 건설한 것은 정확한 형세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재명 정권의 '국익 중심 실용 외교'의 성공도 정확한 형세 판단과 결단력 있는 행동에 달려 있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이재명 정권은 첫 장애물을 잘 넘었다고 안도해선 안 됩니다. 앞으로 더 큰 산과 강들이 몰려올 것이란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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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논설위원실장과 오사카총영사를 지낸 '기자 출신 외교관' '외교관 경험의 저널리스트'로 외교 및 국제 문제 평론가, 미디어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한일관계를 비롯한 국제 이슈와 미디어 분야 외에도 정치, 사회, 문화, 스포츠 등 다방면에 관심이 많다. 1인 독립 저널리스트를 자임하며 온라인 공간에 활발하게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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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공세 잘 받아친 이 대통령, 왜 일본 먼저 갔는지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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