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 집에 쌓여 있으면, 아이들 입에서 심심하다는 소리가 쏙 들어간다.
usplash
이번 방학 동안 달라진 게 있다면 아이들이 줄글책을 주로 읽었다는 점이다. 이따금 줄글책을 읽기도 했지만, 오래 가지 않아 아이들은 다시 만화로 회귀했다. 그러던 아이들이 이번 방학 동안 갑자기 줄글책을 빌려와 읽기 시작했다. 방학 숙제가 있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은 숙제를 떠나 스스로 원하는 줄글책을 선택해 읽었다.
만화책보다 호흡이 긴 줄글책을 주로 읽다 보니 아이들의 독서 시간도 자연스레 늘어났다. 내가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도 덩달아 증가한 것. 죄책감 없이, 아이들과 한 공간에서, 별다른 육아를 하지 않고도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달콤한 순간이라니. 그동안 읽지 못했던 책을 읽다 보니 한동안 헛헛했던 마음도 채워지고, 글쓰기에 대한 열망도 다시 살아났다.
게임만큼 책이 재밌다는 아이
한창 줄글책에 빠져 살던 첫째가 방학이 끝날 무렵 내게 말했다.
"엄마 책이 게임만큼 재미있는 것 같아."
아이의 입에서 나온 믿기지 않는 말에 눈이 휘둥그레진 나는 아이에게 물었다.
"정말? 그 정도로 재밌어?"
"응. 이제는 만화책보다 줄글책이 더 좋아. 만화책도 재밌지만 줄글책이 다 읽고 나면 더 깊은 의미가 남는 것 같아."
남편의 갑작스런 육아휴직으로 가계 긴축재정을 하고 있다. 방학이지만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어 마음 한편에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대단한 방학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혹여나 아이들이 아쉬워하면 어쩌나 싶었다.
생활비가 줄어 휴가를 가지 못했지만, 남편이 책을 가까이 하게 됐고, 아이들도 줄글책의 재미를 스스로 찾아냈다. 덕분에 나도 이번 방학 동안 독서를 많이 했지만 그만큼 뱃살도 늘었다. 삶은 음양의 조화인 건지, 실 없는 득은 없는 모양이다.
인생에는 끝없이 잃기만 하거나, 넘칠 듯 얻기만 하는 어떤 시기가 있다고 생각해왔는데, 이번 방학을 보내면서 그 어떤 시기에도 득과 실이 공존한다는 걸 체감한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우리를 둘러싼 세상의 실체가 유한하기 때문일까. 조금 얻었다면 그만큼을 꼭 내어놓아야만 성립하는 게 매순간의 삶인 걸까.
아이들은 다시 학교로 돌아갔고, 내게는 진짜 나만의 시간이 주어졌다. 당장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하나 하는 고민과 이제야 내 글을 쓸 수 있겠다는 기대가 동시에 나를 찾아왔다. 어떤 길을 선택하든 나는 또 무언가를 잃고 무언가를 얻을 것이다. 선택은 늘 내 몫이고 책임 또한 내가 져야 한다.
부모가 됐기에 선택과 책임이 다소 무거워졌지만, 때로 그 기준이 내가 아닌 가족이 되기도 하지만, 어른이 되지 못한 나는, 여전히 가볍게 살고 싶은 나는, 자꾸 나를 데리고 지구를 떠나 우주로 나아간다. 혹은 시간을 빠르게 앞으로 돌려 미래의 나가 지금의 나를 바라보게 한다. 무엇을 선택하든 득과 실이 있겠지만, 그럼에도 멀리서 바라보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쩨쩨하고 궁핍하지만, 울고 웃고 버티며 오늘도 그럭저럭 어른 행세를 하며 살아가는 삶을 글로 담습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쓰는 사람.
『아직도 글쓰기를 망설이는 당신에게』를 펴냈습니다.
공유하기
남편 육아휴직 후 최소한의 생활비로 방학 내내 누리고 산 것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