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산국악연구회 방문한 군산 기생들(맨 오른쪽이 장금도 명인)
군산 해어화 100년
격변기였던 해방정국(1945~1950), 당시 군산은 혼란과 무질서가 난무했고, 주민들은 질병과 굶주림에 시달렸다. 민심은 흉흉했고, 인플레이션에 '쌀파동'까지 겹쳐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품귀현상까지 보여 '쌀 한 가마 사려면 돈을 한 가마 가져가야 살 수 있다'는 말이 생겨났다. 그처럼 가난과 무질서 속에 전국여류명창대회가 열리다니 놀랍다.
대회에 참가한 기생들이 무대에서 무슨 노래(唱)를 부르고 어떤 춤을 췄는지 모르겠지만, 진혼(鎭魂)을 위한 가무악(歌舞樂)은 빠지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후원처인 두 권번과 기생들 공연은 한국 전통문화 예술의 맥을 잇는 몸짓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기생들의 형제애와 명확한 의식은 변하지 않았음을 시사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해(1947) 12월(25일~27일)에는 4개 창극단('동일·東一', '조선·朝鮮', '화랑·花郞', '남선·南鮮' 등)이 합동으로 공연하는 대창극제전(大唱劇祭典)이 군산극장에서 펼쳐졌다. 군산정악회(群山正樂會)는 1949년 5월 개복동 희소관에서 전국의 남녀 명창 20여 명이 출연하고, 임방울, 박초월 명창이 특별출연하는 고전음악대회(古典音樂大會)를 사흘간(10~12일) 개최하였다.
군산권번은 1948년 8월(10~13일) 연극부를 조직, 공회당에서 '권번연극공연(券番演劇公演)'을 개최했다. 이 공연은 다음 달 앙코르공연(<춘향전>, <흥보전(흥부전)>, <심청전> 등)을 진행할 정도로 성황을 이룬 것으로 전해진다. 그해 9월 기생 김농주는 '국악여성동호회' 출범 때 간부로 참여했고, 10월 서울 시공관에서 열린 창립기념공연(<옥중화·獄中花>)에 출연하였다.
그즈음(1948) 명산동에 '군산국악연구회(군산국악원 전신)'가 설립되고, 노련한 양 권번 기생들이 오가며 신진(아마추어)들에게 가무악을 가르쳤다고 전한다. 가난과 좌우익이 대립하던 혼란기임에도 크고 작은 대회와 공연 무대에 올라 전통 가무의 참모습을 보여줬던 군산 기생들, 그들 역시 천년을 이어온 '교방 문화', 즉 전통예술을 사랑하는 시민계층이었음을 말해주고 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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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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