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기까지 해놓고 그 다음을 찾지 못하시는 어르신
최은영
오마이뉴스 사이트로 들어가서 이름 검색하는 법까지 알려드렸다. 어르신은 알겠다고는 했지만 표정이 그리 시원해 보이진 않았다. 나는 해당 글에 바로 들어갈 수 있는 링크를 보내드렸다. 어르신은 '이렇게 말고 나도 처음부터 찾아 들어가고 싶은데 어렵네요'라며 머쓱하게 웃으셨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어르신이 그저 편한 방법만 찾는 게 아니라 진짜 '방법'을 알고 싶어 하시는구나, 라는 걸 알았다. 편리를 원한 게 아니라 자존감을 되찾고 싶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송고를 권했던 어르신들 가운데 마다하는 분은 없었다. 그렇다고 모든 분이 채택되진 않았다. 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사이트 가입과 송고의 벽이 퇴고보다 훨씬 높았다. 지금까지 어르신 혼자 가입과 송고에 성공하신 분은 없다. 아흔 넘은 친정 엄마 이야기를 쓰신 분은 딸의 도움으로 가입과 송고에 성공했다고 했다. 글보다 어려운 게 로그인이라는 사실이 역설처럼 다가왔다.
지난주에 '홀로 해외여행'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신 어르신이 계셨다. 두 번의 수업에 걸쳐 쓰신 글을 하나로 묶으면 딱 '오마이뉴스 사는 이야기' 각이 보였다. 이 분은 본인 글을 이메일로 보내시는 분이라 기사 송고도 별 어려움 없을 거라 기대했는데 역시나 였다.
가입을 어디서 하는지 못 찾으셨단다. 나는 쉬는 시간에 내 노트북으로 가입을 도와드렸다. 글의 주인공은 스스로인데, 세상에 보여주려면 늘 누군가의 손을 빌려야 했다.
"딸한테 배우면 되긴 하는데 그 배우는 게 너무 치사스러워서 안 하고 싶어요. 선생님처럼 이렇게 친절히 알려주면 얼마나 좋아."
그 말을 듣는데 너무 찔렸다. 그 표정이 티가 났나 보다. "선생님도 선생님 엄마한테 이렇게 친절하게 해주세요" 하신다. 마침 그 어르신과 우리 엄마가 동갑이다. 더 찔렸다. 가르친다는 일은 결국 내가 살아온 방식이 되돌아오는 일이었다.
게으름이 아니라 속도의 차이가 만든 벽
이날 오전에는 대학생 자원봉사가 있었다. 복지관 로비에서 '스팸 문자 차단'을 알려주는 일이었다. 쉬는 시간에 배우러 갔던 몇 분이 '쉬는 시간 동안 배울 수 있는 게 아냐' 하시면서 올라오셨다. 포털에서 검색했어도 못 찾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일이다. 세대 간의 시간 단위는 같지만, 배우는 속도의 체감은 전혀 달랐다.
디지털 격차가 생활의 격차를 만든다고 한다. 복지관에서 어르신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새로운 것을 배울 의지가 없는' 노인의 핑계라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이 분들도 충분히 의지가 있는데 기술 발전이 말도 안 되게 너무 빠른 탓이었다. 격차는 게으름이 만든 게 아니라, 속도의 차이가 만든 벽이었다.
나는 여전히 어르신들과 함께 새로운 버튼을 찾고, 자동가입 방지 숫자를 읽어드린다. 글을 쓰는 힘보다도 랜선 속 길을 찾는 힘이 더 필요하다. 그러나 한 번 그 과정을 넘어 본인의 이름으로 글이 세상에 올라가는 순간, 그 미소는 글보다 더 환하다.
글쓰기는 결국 혼자의 기록이 아니라 세상과 나누는 다리였다. 그 다리를 건너며 이름 석 자가 세상에 새겨질 때, 글은 가장 빛나고 사람은 가장 존엄해진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스크린 캡처로 로그인 과정을 한 번 더 쪼개고 설명을 넣은 그림 파일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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