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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이 돌아온 자리, 생명이 숨 쉰다

[세종보 천막 소식 487일] 왜가리, 농성장 그리고 공존의 기억

등록 2025.08.27 11:06수정 2025.08.27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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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거세게 내린 다음날 세종보 농성장은 불어난 강물에 고립된 작은 섬이 되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걸어 다니던 길은 어느새 물길로 변해, 농성장은 작은 섬처럼 홀로 서 있었다. 활동가들은 급히 '농성장 재난안전본부 2단계'라 이름 붙인 작은 천막을 육지 쪽에 세워 혹시 모를 대피 상황에 대비했다. 비록 작은 공간이었지만, 겸손하게 자연과 싸우지 않겠다는 마음을 담은 대피였다.

 물이 불어나 고립된 세종보
물이 불어나 고립된 세종보 이경호

고립된 농성장을 바라보며 마음이 무겁던 차에, 뜻밖의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낮 동안 농성장 인근 웅덩이를 서성이며 먹이를 찾던 어린 왜가리가 있었다. 아직 성체의 위엄을 다 갖추지 못한, 다소 서툰 동작으로 사냥중이었다. 농성장 물길에 나타난 왜가리는 농성장을 배회하던 그 어린 개체일 것이다. 낮에는 작은 웅덩이에서 작은 곤충이나 미꾸라지를 노리던 아이가, 밤에는 불어난 강물이 만들어낸 새로운 사냥터에 나선 셈이다.

깊은 밤, 고요한 농성장 곁에서 왜가리는 천막을 개의치 않고 물고기 사냥에 열중했다. 그 모습은 낮에 웅덩이 주변을 어설프게 서성이던 모습과 이어졌다. 마치 강이 스스로 길을 바꿔 새로운 풍경을 만들고, 그 속에서 어린 왜가리 역시 삶을 배워가고 있는 듯했다. 밤에 먹이 경쟁을 피해 홀로 사냥에 나서는 왜가리의 습성은 불어난 강물이 만들어낸 새로운 생태적 무대를 활용하는 현명한 선택이었다. 불어난 물은 농성장과 육지를 가르며 새로운 생태적 무대를 마련해 주었다.

 농성장에 나타난 왜가리
농성장에 나타난 왜가리 이경호

사람의 눈에는 불편과 위협일 수 있는 고립 상황이었지만,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왜가리에게는 새로운 먹이터가 되었다. 강물이 흘러 만든 얕은 물길은 작은 물고기들을 불러 모았고, 그 길목에서 어린 왜가리는 사냥을 하고 있었다. 농성장은 그 광경을 고스란히 품어내는 무대가 되었다.

만약 세종보가 건설되어 4m 높이의 물을 가둬 담수 상태로 유지됐다면 이런 풍경은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담수되었던 6년 물이 깊어지면서 빛이 차단되고 녹조가 창궐했고, 4급수 지표생물인 붉은깔따구와 실지렁이가 득시글 했다. 물만 깊어진 것이 아니라 그곳의 생명의 생태계와 균형이 무너진 모습을 정확히 기억한다. 생명이 살기 어려운 환경으로 전락했다. 얕은 물길을 따라 이동하며 살아가는 멸종위기종인 흰수마자나 미호종개는 깊은 물에 잠겨 자치를 감추었다. 모래톱에서 알을 낳고 번식하는 흰목물떼새와 쇠제비갈매기의 터전도 사라졌다.

 왜가리가 사냥하는 모습
왜가리가 사냥하는 모습 이경호

하지만 2017년 세종보 수문이 완전 개방된 후, 강물이 본래의 흐름을 되찾으면서 강바닥의 모래톱이 다시 드러났고, 얕은 여울도 되돌아왔다. 물길을 되찾은 강에는 다시 흰수마자와 미호종개가 돌아왔고, 쇠제비갈매기와 흰목물떼새도 예전처럼 모래밭에 둥지를 틀기 시작했다.

천막 농성장은 인간에게는 불편한 투쟁의 흔적일지 모르지만, 강의 자연성을 지켜낸 최후의 보루 같은 공간이다. 이 작은 보루가 왜가리가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을 보전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침입자' 같았던 농성장이 바로 왜가리의 삶을 지켜낸 셈이다.


왜가리의 모습은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건넨다. 옛사람들이 논과 개울가에서 왜가리를 바라보며 인내와 기다림의 덕목을 배웠듯, 오늘의 우리는 불어난 물이 만들어낸 장면 속에서 공존의 의미를 다시 생각한다. 사람과 자연이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숨 쉬고 서로의 삶을 지켜주는 관계임을 깨닫는다.

깊은 밤 농성장 곁에서 목격한 어린 왜가리의 사냥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가 왜 강을 지켜야 하는지, 왜 농성을 이어가야 하는지를 다시금 보여주는 장면이다. 우리가 지켜내려는 것은 단지 물줄기가 아니라, 그 물줄기 속에서 자라나는 생명과 그 생명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의 미래이다.
#농성장 #세종보 #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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