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없는 사람 책 표지 세상에 없는 사람 책 표지
걷는사람
광주 출신 오성인 시인도 그 숙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의 깊은 상처를 헤집어 써 내려간 가족사 <세상에 없는 사람>은 바로 그 숙명에 대한 응답과도 같다. 이야기는 2006년 11월, 작가가 아버지와 함께 의정부 306 보충대로 향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입소 직전, 내내 침묵하던 아버지가 아들에게 건넨 무심한 듯 다정한 한마디. "군대도 사람 사는 곳인디... 거리감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 같다잉. 건강히 잘 다녀오니라." 이 장면이 왜 책의 첫머리에 놓였는지는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된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이야기는 아버지가 벌교세무서에서 근무하던 시절 옳지 않은 일에 휩싸여 세무서를 그만두는 사건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작가 아버지의 삶의 태도가 나온다. 부끄럽지 않게 살기다. 작가의 아버지는 젊은 시절 요즘 흔히 하는 말로 인싸였다. 운동도 잘하고, 공부도 잘했으며, 친구들도 많았다. 특히 대학시 절 가족보다 더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과 사연이 때론 아프고, 때론 즐겁고, 때론 묵직하게 이어진다.
6·25 때 '빨갱이'로 낙인찍힌 할아버지, 광주 출신이라는 이유로 군에서 가혹행위를 당하다 끝내 스스로 목숨을 저버린 외삼촌. 연좌제는 보이지 않는 족쇄가 되어 그의 앞길을 사사건건 가로막았다. 아버지는 도피하듯 군대로 향했다.
아버지가 논산훈련소로 입대했을 때가 1978년 11월이었다. 무탈해 군 생활하던 중, 그는 상부의 지시로 부대 뒷산의 박달나무를 깎아 수많은 방망이를 만들었다. 훗날 '충정봉'이라 불리게 된 그 방망이가 1980년 5월, 광주의 시민들을 향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자신이 깎은 그 몽둥이에 가장 아끼던 친구들이 쓰러지는 참혹한 진실과 마주한 순간, 아버지의 시간은 멈추었다. 국가폭력의 말단에 동원되었다는 죄책감은 스스로를 '세상에 없는 사람'으로 만들었고, 그는 평생을 속죄의 감옥에 갇혀 살았다. 정작 진짜 가해자들은 고개를 빳빳이 들고 세상을 활보하는 동안에도.
이 글은 거창한 역사 기록도 아니고 흥미진진한 소설은 더더군다나 아닌, 그저 내 아버지의 이야기에 불과하다. 그러나 동시에 세상 모든 우리네 아버지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동안 미디어를 통해 접했던 광주 5·18이 크고 넓은 강의 본류라면, 이 이야기는 본류 주변에 형성되어 흐르고 있는 자잘한 지류라고 할 수 있다. 사소하고 평범한 소시민의 일상이 어떻게 역사로 편입되는지 이야기하고 싶었다. <165쪽>
역사는 반복한다. 참혹한 역사 또한 반복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인간이란 종이 원래 그렇다고 하면서 고개를 내젓는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역사를 배우기보다는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고, 그래야 참혹한 역사의 반복을 막을 수 있다고 말한다. 작가는 후자를 믿고 참혹한 가족사를 기록했다. 그나마 역사가 느려터지게 진보하는 데 작가들의 역할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5·18은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다. 여전히 가면 뒤에 숨어 진실을 외면하는 이들이 호시탐탐 역사를 물어뜯을 기회를 엿본다. 현기영의 <순이삼촌>이 4·3의 진실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실체로 각인시켰듯, 오성인의 <세상에 없는 사람> 또한 5·18의 진실을 더욱 확고히 다지는 작품으로 기억될 것이 분명하다. 이 책은 거대한 강물에 휩쓸려간 이름 없는 이들을 호명하며, 그들 모두가 세상에 '있는' 사람이었음을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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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청에서 24년간 근무했다. 현대문학 장편소설상과 대한민국 콘텐츠대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최근작『남극 펭귄 생포 작전』(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블루픽션-85)은 2024년 경기문화재단 경기예술지원 사업에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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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몰랐다, 군대에서 만든 박달나무 방망이의 용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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