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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몰랐다, 군대에서 만든 박달나무 방망이의 용도를

[서평] 오성인 산문집 <세상에 없는 사람>

등록 2025.08.29 08:18수정 2025.08.29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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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광주에서 태어나 2013년 《시인수첩》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푸른 눈의 목격자』 『이 차는 어디로 갑니까』를 냈으며 대산창작기금과 나주문학상, 내일의 한국작가상을 받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학 작가는 비효율적인 직업인 것만은 확실하다. 일부 작가를 제외하고 대부분 투입한 노력에 비해 합당한 대가를 얻기 어려운 까닭이다. 그러나 작가는 단순히 글을 쓰는 노동자가 아니다. 그의 영혼은 누구보다 자유롭고, 사유는 깊다. 무엇보다 건조한 역사의 기록에 온기와 숨결을 불어넣어, 행간에 숨겨진 진실을 더욱 입체적으로 드러내는 책무를 지닌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가 그러했듯, 문학은 잊힌 목소리들을 세상의 중심으로 이끌어낸다.

이 때문에 나쁜 권력은 언제나 진실을 대면하게 하는 문학을 두려워했다. 기원전 진시황의 분서갱유, 가톨릭 금서목록 사건, 독일 나치의 분서 사건, 중국의 문화대혁명, 전두환 정권의 금서 정책에 이르기까지 역사는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명제를 끊임없이 증명해 왔다. 칼이 육신을 겨눌 때, 펜은 시대를 관통하여 정신을 겨누기 때문이다.


대중이 현실의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갈 때, 작가는 역사의 강물에 발을 담그고 산다. 고단한 현실 속에서 때로 판단이 흐려지는 것은 대중이 무지해서가 아니다. 역사의 묵직한 관점으로 현실의 무게를 온전히 감당하기란 버거운 일이기에, 우리는 현실과 얼마간 타협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작가는 그 역사의 시선에서 한시도 벗어나서는 안 된다. 그것이 작가의 숙명이다.

세상에 없는 사람 책 표지 세상에 없는 사람 책 표지
▲세상에 없는 사람 책 표지 세상에 없는 사람 책 표지 걷는사람

광주 출신 오성인 시인도 그 숙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의 깊은 상처를 헤집어 써 내려간 가족사 <세상에 없는 사람>은 바로 그 숙명에 대한 응답과도 같다. 이야기는 2006년 11월, 작가가 아버지와 함께 의정부 306 보충대로 향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입소 직전, 내내 침묵하던 아버지가 아들에게 건넨 무심한 듯 다정한 한마디. "군대도 사람 사는 곳인디... 거리감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 같다잉. 건강히 잘 다녀오니라." 이 장면이 왜 책의 첫머리에 놓였는지는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된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이야기는 아버지가 벌교세무서에서 근무하던 시절 옳지 않은 일에 휩싸여 세무서를 그만두는 사건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작가 아버지의 삶의 태도가 나온다. 부끄럽지 않게 살기다. 작가의 아버지는 젊은 시절 요즘 흔히 하는 말로 인싸였다. 운동도 잘하고, 공부도 잘했으며, 친구들도 많았다. 특히 대학시 절 가족보다 더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과 사연이 때론 아프고, 때론 즐겁고, 때론 묵직하게 이어진다.

6·25 때 '빨갱이'로 낙인찍힌 할아버지, 광주 출신이라는 이유로 군에서 가혹행위를 당하다 끝내 스스로 목숨을 저버린 외삼촌. 연좌제는 보이지 않는 족쇄가 되어 그의 앞길을 사사건건 가로막았다. 아버지는 도피하듯 군대로 향했다.

아버지가 논산훈련소로 입대했을 때가 1978년 11월이었다. 무탈해 군 생활하던 중, 그는 상부의 지시로 부대 뒷산의 박달나무를 깎아 수많은 방망이를 만들었다. 훗날 '충정봉'이라 불리게 된 그 방망이가 1980년 5월, 광주의 시민들을 향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자신이 깎은 그 몽둥이에 가장 아끼던 친구들이 쓰러지는 참혹한 진실과 마주한 순간, 아버지의 시간은 멈추었다. 국가폭력의 말단에 동원되었다는 죄책감은 스스로를 '세상에 없는 사람'으로 만들었고, 그는 평생을 속죄의 감옥에 갇혀 살았다. 정작 진짜 가해자들은 고개를 빳빳이 들고 세상을 활보하는 동안에도.

이 글은 거창한 역사 기록도 아니고 흥미진진한 소설은 더더군다나 아닌, 그저 내 아버지의 이야기에 불과하다. 그러나 동시에 세상 모든 우리네 아버지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동안 미디어를 통해 접했던 광주 5·18이 크고 넓은 강의 본류라면, 이 이야기는 본류 주변에 형성되어 흐르고 있는 자잘한 지류라고 할 수 있다. 사소하고 평범한 소시민의 일상이 어떻게 역사로 편입되는지 이야기하고 싶었다. <165쪽>

역사는 반복한다. 참혹한 역사 또한 반복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인간이란 종이 원래 그렇다고 하면서 고개를 내젓는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역사를 배우기보다는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고, 그래야 참혹한 역사의 반복을 막을 수 있다고 말한다. 작가는 후자를 믿고 참혹한 가족사를 기록했다. 그나마 역사가 느려터지게 진보하는 데 작가들의 역할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5·18은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다. 여전히 가면 뒤에 숨어 진실을 외면하는 이들이 호시탐탐 역사를 물어뜯을 기회를 엿본다. 현기영의 <순이삼촌>이 4·3의 진실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실체로 각인시켰듯, 오성인의 <세상에 없는 사람> 또한 5·18의 진실을 더욱 확고히 다지는 작품으로 기억될 것이 분명하다. 이 책은 거대한 강물에 휩쓸려간 이름 없는 이들을 호명하며, 그들 모두가 세상에 '있는' 사람이었음을 선언한다.
#오성인 #세상에없는사람 #시인 #1980년오월 #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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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청에서 24년간 근무했다. 현대문학 장편소설상과 대한민국 콘텐츠대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최근작『남극 펭귄 생포 작전』(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블루픽션-85)은 2024년 경기문화재단 경기예술지원 사업에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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