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소설은 답을 말해주기 보다, 질문을 던지는 것"

[인터뷰] 첫 소설집 <평행우주 고양이> 출간한 이준희

등록 2025.08.28 16:49수정 2025.08.28 16:49
0
원고료로 응원
 최근 첫 번째 소설집 <평행우주 고양이>을 출간한 이준희 작가.
최근 첫 번째 소설집 <평행우주 고양이>을 출간한 이준희 작가. 이준희 제공

문체는 간명하고 문장은 단단하다. 오래 곰삭혔을 것이 분명해 보였다. 오랜만에 받아든 괜찮은 소설집 한 권. 이름하여 <평행우주 고양이>(2025년 8월 출간).

익숙한 이름은 아니지만 이준희(44)라는 소설가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기억될 듯하다. 강렬한 정서적 충격을 선물했으니. 2006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그는 19년 동안 작품집을 내지 않았다. 소설가, 시인, 평론가, 기자는 '쓰는 것'으로 존재를 증명하는 사람들. 그게 독자들과의 유일한 소통 수단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왜 이 작가는 오랜 시간 자신을 존재 증명하지 않고 살았을까? 궁금했다.


문학평론가 김대현은 이준희의 첫 작품집을 "존재를 규정하는 구성 요건으로서의 기억과 그 기억과 불화하며 고통에서 탈주하고자 하나 다시 그 기억을 직면해야 하는 존재의 필연을 다루고 있다"고 묘파했다. 거기에 "그것은 내가 나라는 사실과 싸우며, 그럼에도 다시 나를 확인하고자 하는 지난한 여정"이라 부연했고.

기자 역시 김 평론가의 지적에 동의한다. 이준희 소설집 <평행우주 고양이>에는 표제작과 함께 <루디> <대수롭지 않은> <심해의 파수꾼들> <마인드 리셋> <여자의 계단> 등으로 명명된 단편이 담겼다. 그 가운데 기자를 가장 크게 매혹한 작품은 짧지만 강력하게 가슴을 흔든 <대수롭지 않은>이었다.

모여드는 비둘기가 싫은 늙은 노동자와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는 중년의 여성,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여성이 사라진다. 그 부재의 이유를 짐작하는 소설적 화자인 '나'. 해석의 여지를 독자들에게 남기고 끝나는 이 단편은 길이와는 무관하게 묵직하고 진중한 메시지로 독자들의 뇌리를 파고들 것 같다.

오늘보다 내일이 기대되는 소설가 이준희의 인터뷰는 지난 8월 중순 경북 포항에서 열린 출간 기념 북콘서트에 참석한 작가를 대면한 후 몇 차례의 통화와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완성된 것이다.

"글쓰기를 미워하면서도 갈구한 20년의 시간"


- 최근 첫 번째 소설집을 냈다. 소회는?

"결이 전혀 다른 여러 기분이 구분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게 얽히고 엉켰다. 드디어, 라고 일종의 감격을 느꼈고, 다행한 마음이 뒤따랐다. 이는 금세 잦아들었다. 꽤 오래 붙들고 있던 작품들이고, 그러는 동안 겪어온 여러 시간, 선택들, 삶의 궤적 같은 것들이 작품 곳곳에 흔적으로 남아 있다. 감격과 다행한 마음의 자리를 이내 이 책을 어떻게 읽어주실지에 대한 궁금함과 불안, 설렘이 가득 채웠다."


- 등단 후 20년 가까이 책을 내지 않은 특별한 이유가 있나.

"사적 경험을 세세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테지만, 글을 쓰거나 삶을 사는 것에 더욱 집중했어야 할 그 시기, 이전까지 지니고 살아온 생각의 방식이나 태도 같은 것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는 어떤 경험이 있었다. 그때는 이전의 방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물론이고 글을 쓰고 삶을 온전히 유지하는 것마저도 힘겨웠던 것 같다. 대신 삶과 현실에 집중함으로써 나머지의 삶이라도 유지하려 애썼다. 간신히 사는 흉내라도 낼 수 있게 되지 않았나 싶다. 그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러는 사이, 글쓰기를 자주 미워했고 또 갈구했다."

- 가족과 친구, 지인이 없는 사람은 없다. 출간 이후 그들에게 들은 말 중 가장 기분 좋았던 말이나 아프게 다가왔던 평가 또는 지적은.

"대체로 축하와 응원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책을 읽은 지인들이 '아예 담 쌓고 산 줄 알았는데, 글을 놓지 않고 있었구나'라고 말해주었을 때, 괜히 그간의 여러 경험과 감정이 떠올라 묘한 감정이 들었다. 조금 아팠을 때는 아무래도 '두 번째 책은 또 20년 기다려야 해?'라는 질문을 들었을 때다. 농담이지만 동시에 일종의 질책과 격려라고 생각한다. 위하는 마음들이 감사하다."

- 혹시 출간 이후 독자(그들은 가족이나 친구와 달리 객관적으로 당신을 바라보는 타자다)의 반응을 직접 듣거나, 인터넷 공간 등에서 확인한 게 있는지.

"몇 가지 기억에 남는 반응이 있다. 먼저 SF적인 설정으로 소설 전체가 차가운 느낌을 전달하기보다는 오히려 마음을 잔잔하게 데워준다는 말이 기억에 남았다. 세상과 타자와 나 자신을 조금 더 다정한 시선으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단숨에 읽어버리고 말 소설이 아닌 거 같다고, 여러 번 앞으로 되돌아가 읽었다는 말도 기억에 남았다. 소설이 독자에게 닿는 방식은 다양할 거다. 일회적인 소비보다는 단 한순간이라도 지금 읽는 그 문장과 의미를 의심하며 되돌아가 읽는 독자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 사숙한 선배 작가는 누구이고, 왜 그를 좋아하나. 또, 너나들이로 지내는 동료작가는 누구인가. 소설가들은 만나면 주로 뭘 하면서 노는지 궁금하다.

"사숙한 선배 작가가 따로 있기보다는 소설을 쓰고 발표하는 모든 이들(그게 선배든 후배든 학생이든)에게 가르침을 얻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지닌 소설을 대하는 태도, 그들이 소설을 통해 세상에 던지는 질문들. 제각기 다르지만 그건 모두 소중한 가르침이고 동시에 자극이었다. 소설가들은 물론이고 주변 지인과도 사적 만남을 자주 갖는 편이 아니어서 딱히 뭘 하고 놀거나 하지는 않는다."

 소설가 이준희가 독자들과의 만남을 가지고 있다.
소설가 이준희가 독자들과의 만남을 가지고 있다. 이준희 제공

'몸의 기억' 속으로 보다 깊숙이 들어가 보고 싶어

- 몇 군데 대학에서 강의를 한다고 들었다. 소설을 쓰는 것과 소설에 관해 가르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일 듯하다. 둘을 병행하는데 어려움은 없는가. 소설가 이준희와 강의하는 교수 이준희는 어떻게 태도와 마음가짐을 달리하는지.

"사실 그 세부적인 과정에서의 다름은 있을지 모르겠으나, 둘은 꽤 밀접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소설을 쓰는 것도, 학생들과 소설에 관해 함께 이야기 나누는 것도, 소설 쓰기에 대한 나름의 믿음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또한 그 믿음이 절대적이거나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안다. 그래서 그 믿음은 확고한 동시에 끊임없이 의심의 대상이 된다. 확고함과 끊임없는 의심,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이 쉽지 만은 않다."

-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은 없다. 그럼에도 <평행우주 고양이>에 실린 작품 중 딱 1편만 읽어야 한다면 어떤 걸 권하고 싶은지. 그리고, 그 이유는.

"표제작인 <평행우주 고양이>를 권하고 싶다. 각각의 작품마다 SF적 요소, 질문의 근원이 된 개인적 경험 같은 것들이 조금씩 다른 비중으로 구성되어 있다. 모든 작품을 읽으면 각각의 작품이 섞이며 도달한 어떤 농도의 세계를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모든 작품이 아닌 하나의 작품이라면, <평행우주 고양이>가 작품집 전체를 통해 전달하고 싶은 어떤 '농도'와 가장 닮았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천착했거나, 앞으로 접근하고 싶은 소설의 주제의식이랄까, 특정 소재가 있다면 무엇인지.

"이번 작품들 안에서도 주요하게 작동하는 건데, 일종의 '몸의 기억'에 대해 더 깊게 파고들고 싶다. 데이터와 수치로 가치를 판단하는 인식 기준이나 작동 방식이 이미 만연해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인식은 결국 한 인간을 처리해야 할 데이터, 그리고 데이터의 작동 결과로만 바라보게 한다. 몸의 기억 역시 그 데이터화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아직은 차갑고 무감정한 데이터의 세계에서 인간을 인간답게 볼 수 있게 해주는, 무용하다 여겨질 수 있으나 분명 인간을 구성하고 있는 것들을 들여다보게 하는 계기가 된다 생각한다."

-"최근 소설은 생활에서 멀어진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많고, 어려워서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말하는 독자들도 있다. 이런 지적에 관한 당신의 생각은.

"우선 독자들이 말하는 '소설'이 어떠한 범주의 작품들을 말하는 건지 명확하지 않아 정확하게 콕 짚어 답하기 어려운 질문인 듯하다.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중에서 정답만을 우선시하는 세상의 흐름이나 경향성도 한 몫 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 소설은 늘 답을 말해주기보다는 질문을 던져왔다. 그 질문에 대해 직접 고민하고 나름의 답을 생각해 볼 여유마저 사라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소설가란 존재와 세계에 대해 질문 던지는 사람"

-소설가는 소설을 통해 말하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당신이 쓰는 소설을 통해 궁극적으로 독자들에게 말하고 싶은 건 뭔가.

"어떤 변화의 가능성에 대해서다. 그 변화의 대상은 나 자신일 수도 있고, 특정한 태도일 수도 있다. 또한 앞으로 닥칠 세상의 변화 안에서 나 자신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에 대한 모색이기도 하다. 이번 소설집에서는 어떤 기억들에 대해 자주 말하는데, 모든 기억은 양면성은 물론이고, 다양성을 지닌다고 생각한다. 변화를 모색하는 데 있어, 기억(특히 앞서 언급한 '몸의 기억')을 직시하는 것에 대해 독자들에게도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앞으로 1년 후의 당신과 10년 후의 당신을 스스로 예측한다면.

"사실 예측이라기보다는 희망 사항에 가까울 수도 있겠다. 1년 뒤 어느 날, 카페에서 소설 마지막 문장을 쓴 뒤, 기지개를 켜며 나른한 기분으로 창밖을 내다봤으면 좋겠다. '휴우~ 다행이다. 이번에는 20년이 걸리지는 않았어'라고 안도하면서. 10년 뒤에는 지구 혹은 지구의 생명체를 지키기 위한 어떤 행동들을 취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혼자일 수도 있고,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함께일 수도 있겠다. 나는 여전히 글을 통해 말하는 사람이면 좋겠는데, 그러려면 운동을 열심히 해 고질병인 디스크를 제대로 관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 아래 2가지는 우문이다. 짤막한 현답을 부탁한다.

-소설은 뭔가?

"우리가 미처 신경 쓰지 못했지만 분명 존재하는 어떤 가능성."

-소설가는 어떤 사람인가.

"그 가능성을 통해 존재와 세계에 질문을 던지는 이들이 아닐까."

 이준희 소설집 <평행우주 고양이>.
이준희 소설집 <평행우주 고양이>. 폴앤니나



평행우주 고양이

이준희 (지은이),
폴앤니나, 2025


#이준희 #평행우주 #고양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톡톡 60초

AD

AD

AD

인기기사

  1. 1 항공사 승무원이 유니폼 위에 옷을 하나 더 입는 절박한 이유 항공사 승무원이 유니폼 위에 옷을 하나 더 입는 절박한 이유
  2. 2 속마음 들킨 트럼프의 다급함...이러다가 미국 무너진다 속마음 들킨 트럼프의 다급함...이러다가 미국 무너진다
  3. 3 "폭리는 반사회적 악행" 대통령 경고에 정유·주유소 업계 심야 '백기투항' "폭리는 반사회적 악행" 대통령 경고에 정유·주유소 업계 심야 '백기투항'
  4. 4 여수 가게마다 긴 줄, 먹어보니 이유를 알겠다 여수 가게마다 긴 줄, 먹어보니 이유를 알겠다
  5. 5 줄넘기로 '세계 1위' 찍고 대학 특기생 진학... "아시아 여성 최초예요" 줄넘기로 '세계 1위' 찍고 대학 특기생 진학... "아시아 여성 최초예요"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