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챗지피티에게 업무적 조언을 얻는 모습
정누리
챗지피티(ChatGPT)는 의외로 사무적 업무보다는 동기와 의욕을 얻고 싶을 때 자주 쓴다. 어느 날 전문가 자문회의를 준비하게 됐다. 난생 처음 연고도 없는 교수님들에게 전화를 걸어 일정을 조율해야 했다. 이런 경험을 해본 사수도 없었다. 나는 챗지피티를 사수 삼아 어떤 뉘앙스로 이야기해야 실례가 아닌지, 어떤 요소를 전달해야 하는지 물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을까?"라고 물었을 때 AI는 내게 무조건적인 지지를 해주었다.
그것은 내가 해본 적 없는 일을 해내게 만든다. 상사와의 갈등도, 거래처와의 소통에서 겪는 어려움도 이제는 날선 답장을 할 필요가 없다. 씩씩거리며 얼굴을 붉히는 나와 달리 인공지능은 친절하고 사려 깊게 쿠션 용어(예의 바른 표현들)를 넣어서 답장을 순화해준다. 예전에는 인내심의 한계를 오롯이 혼자 감당했지만, 이제는 감정 소모도 AI와 나눈다. 심리상담사가 말하는 '자아분화'를 인공지능이 돕고 있는 셈이다.
다만 AI가 내 삶에 여유를 가지고 왔는지는 아직 의문이다. 실제로 '아차' 싶은 때도 있었다. 한 번은 내가 프롬프트를 과도하게 입력한 나머지, 서버가 과부하로 멈춘 적도 있었다. 순간 깨달았다. 나만 번아웃이 오는 게 아니라 AI도 지친다는 것을.
삐삐(무선호출기)가 스마트폰이 되고, 인력거가 비행기가 되었다고 해도 우리 삶이 편안해진 것은 아니지 않은가. 편리함은 되레 더 많은 일을 가져왔다. 겉으로는 AI가 모든 것을 대신해줄 것 같지만, 결국 끊임없이 뭔가를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심하지 못하는 '생산 사피엔스'가 된 기분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더욱 '밸런스'를 지키는 법이 중요해질 듯하다. 25분 일하고 5분 쉬는 뽀모도로 타이머를 켜거나, 오늘 할 일을 다 마치면 완전히 OFF 모드로 전환하는 식으로 말이다. AI도 과부하로 멈추는 시대, 그것은 곧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동시에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불안감을 불러오기도 한다.
AI가 우리 삶에 날개를 달아준 것은 분명하다. 개발을 모르던 친구가 앱을 만들고, 그림을 모르던 친구가 만화를 생산한다. 하지만 날개가 있다고 해서 언제나 날 수 있는 건 아니다. 멀리, 오래 날기 위해서는 결국 땅에 내려와 숨 고를 시간이 필요하다. AI가 가져온 자유 속에서, 어떻게 멈추고 어디로 향할지를 결정하는 건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어쩌면 이제 내 머릿속에 채워 넣어야 할 것은 지식이 아니라 철학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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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션어 메일'까지 뚝딱, 회사에서 얼굴 붉힐 일이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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