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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신한 문학도 박래전 열사

[김삼웅의 인물열전 - 민족민주열사열전 35] 시인을 꿈꿨던 청년은 시대고에 저항하고 몸을 불살랐다

등록 2025.08.31 23:24수정 2025.08.31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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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전 열사 추모비 박래전 열사 분신 현장 맞은 편에 세워진 추모비
▲박래전 열사 추모비 박래전 열사 분신 현장 맞은 편에 세워진 추모비 민중해방열사 박래전기념사업회 제공

당신들이 제게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아는 까닭에 저는 당신들의 코끝이나 간질이는 가을꽃일 수는 없습니다.
제게 돌아오지 못할 것을 아는 까닭에 저는 풍성한 가을에도 뜨거운 여름에도 따사로운 봄에도 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떠나지 못하는 건, 그래도 꽃을 피워야 하는 건, 내 발의 사슬 때문이지요.
겨울 꽃이 피어 버린 지금, 피기도 전에 시들지도 못합니다.
세찬 눈보라만이 몰아치는 당신들의 나라에서 그래도 몸을 비틀며 피어나는 꽃입니다.

박래전 열사의 '동화(冬花)'이다. 시는 '겨울 꽃'을 상징하는, 많은 의미를 함축한다. 문학을 좋아했던 그는 온전한 시대였다면 훌륭한 문인이 되었을 것이고, 시대의 불의에 둔감했더라면 유능한 시인이 되었을 지 모른다. 그러나 시인을 꿈꿨던 청년은 시대고에 저항하고 몸을 불살랐다.

박래전 열사는 경기도 화성시 서산면 상안리에서 태어났다. 향리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나오고 1982년 숭실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다. 학내 문학서클에 참여하여 시를 쓰며 문학청년의 꿈을 키웠다. 앞에 소개한 '동화'를 비롯 '반도의 노래', '바람일 수는 없다' 등 수준 높은 시를 남겼다.

그의 대학시절은 전두환 세력의 폭압통치가 계속되는 살얼음판이었다. 광주에서 천인공노할 학살을 자행하고서도 참회는커녕 폭압과 정권유지→연장코자 갖은 술책을 동원하였다. 이같은 상황에서 그는 한가롭게 시나 쓰면서 젊은 날을 보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정국은 요동치고 있었다.

6월항쟁으로 민중의 시대가 열리는 듯 하였다. 그는 1987년 12월 민중후보 선거대책위원회 선전국장을 맡는 등 정치활동에 나섰다. 그리고 1988년에는 숭실대학교 인문대학 학생회장에 선임되어 노태우의 부정선거를 비판했다. 수배령이 내리자 그는 학생회관에 은신하면서 학생운동을 지도했다.

국민의 기대를 모았던 대통령선거가 야권 후보의 난립과 관권부정으로 패배하고 군사정권이 연장되었다. 박 열사는 자신을 던져 패배의식에 빠져 있는 국면을 바꾸고 시대정신을 회복하고자 하는 길을 찾았다.


1988년 6월 4일 숭실대학교 학생회관 옥상에서 <학살 원흉 즉각 처단>이라는 유서와 "광주는 살아 있다", "군사파쇼 타도하자"라고 외치며 온 몸에 시너를 뿌리고 불을 붙였다.

학생들이 옷을 벗어 불을 끄고 영등포구 한림대학교 한강성심병원으로 이송하였으나 전신 80%에 3도 화상으로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이틀 후인 6월 6일 12시23분 눈을 감았다. 25세의 꽃다운 나이였다.
박래전 열사 추모관 이번에 인권재단 사람에 만드는 박래전 열사 추모관
▲박래전 열사 추모관 이번에 인권재단 사람에 만드는 박래전 열사 추모관 박래군

충격으로 아버지는 한쪽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되고 형 박래군은 이후 민주화운동에 나서 열사들의 희생정신을 선양하는 일을 하고 있다. 현재 '4.16재단 운영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다. 박래군 씨는 윤석열의 12.3 내란으로 국가적 위기를 겪고 이재명이 새 대통령으로 취임하자 '평등의 토대 위에 세워진 민주주의'란 시론에서 이렇게 썼다.


오늘은 마침 6.10민중항쟁 38주년 기념일이다. 38년 전 그날은 군사독재를 물리치고 민주화를 열었던 날로 기억된다면, 훗날 우리는 2025년 6월 10일을 어떻게 기억할까? '빛의 혁명'뒤에 온 민주주의는 각자도생의 비참한 현실이 아니라 광장의 존중과 돌봄, 연대가 생활현장에서도 실현되는 민주주의로 나아가기 시작한 날로 기억될 수 있을까? 38주년 6.10항쟁 기념일에는 개돼지도 없고, 특수계급도 없는 평등의 민주주의를 적극 고민하면 좋겠다. 이제 누구에게나 민주주의는 소중한 제도이고 가치여야 한다. (주석 1)

박래전 열사

성훈입니다.
형이 살아 계시다면 알겠지만
88년 형이 몸을 불살라 투쟁하던
그때 기억으론
기억하지 못할 후배입니다.

12년이 지나갔네요.
그 무덥던 햇살도 기억이 나네요.
형의 자리에 와서 방명록을 보니,
이번에 가져다 놓았는지 흔적이 없어서
제가 그 첫 번째 기록의 영광을…
참 펜이 없어서 옆의 전태일 열사로부터
잠깐 빌어왔어요.

내년엔 꼭 형의 기일에 맞추어 오겠습니다.
자주 들르진 못하지만
편히, 환하게 웃으며
주위 당신을 기억하는 이들과
함께 있을 것을 믿어요.

2000년 6월 25일 홍성훈, 임현숙(주석 2)

주석
1> <경향신문>, 2025년 6월10일.
2> <열사회보>. 2000년 9월호, 65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 민족민주열사 열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민족민주열사열전 #김삼웅인물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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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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