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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넘게 산 곳인데 "여행 온 거 같다"는 남편

역사를 간직한 소도시 군산에서 발견한 일상 속 여행의 즐거움

등록 2025.08.29 10:09수정 2025.08.29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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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 청탁서를 받았다. 원고 내용은 '소개하고 싶은 군산의 장소와 그에 얽힌 이야기'이고 청탁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소개하고 싶은 군산의 장소와 그에 얽힌 사연을 글로 모아 책으로 엮고자 합니다. (중략) 일상과 여행 사이. 그런 자기만의 군산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글로 나누어 주시길 청합니다."

참 멋진 말이다. '일상과 여행사이'.


어린 시절에는 타지에 가는 걸 아주 좋아했다. 드문 일이었기에 좋아했던 것이다. 지금이야 자가용이 많고 교통이 편리하기에 전국을 하루 만에 다녀오는 게 가능하지만 내가 초등학생 시절 군산 우리 집에서 서울 외가에 가려면, 아침에 집을 나서도 저녁이 다 되어 도착했다.

그 여정이 편하지만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지에 가야만 여행을 가는 것처럼 느꼈다. 어느 정도 성장해서도 나는 여전히 그렇게 생각했다. 학창 시절의 수학여행이나 졸업여행처럼 몇 박을 하거나 타지로 가는 건 여행, 군산 내의 나들이는 단순한 소풍이라고 여겼다.

결혼 전 데이트를 할 때에도 군산에는 딱히 갈 만한 곳이 없다고 투덜거렸었다.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되어서도 그 투덜거림은 여전했다. 대전으로 전주로 때로는 서울까지 어린아이들을 끌고 다녔다. 물론 좋은 경험도 있었지만 그 여행에 들이는 시간과 경비 면에서는 효율적이지 못했다.

5년 전 여름, 휴가지를 고르다가 무심코 한 말이 그 시작이었다. 너무 더웠던 2019년 그 더위에 지쳐 여행지를 고르기도, 여행 준비를 하기에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얘들아, 드림월드 수영장 어때?"


집에서 15분 남짓이면 도착하는 수영장은 출발하기에도 돌아오기에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은 거리이다. 그 해 여름 우리 가족은 수영장에서 시작해서 평소 알고 있던 맛집으로, 인근 지역에 있는 국립생태원으로, 군산 시내에 있는 만화카페 등을 다니고 마지막은 다시 수영장으로 휴가를 마무리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멀리 있는 게 무조건 좋은 게 아니라는 걸.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도 얼마든지 즐거운 나들이를 할 수 있고 심지어 여행객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이번 원고 청탁서를 받고, 나는 군산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해 보았다. 태어나서 자라고 지금도 살고 있는 도시. 어쩌면 내 나이만큼의 시간을 같이 보낸 도시인데도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그때부터였다. 나는 집을 나서면 목적지가 어디이든지 여행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군산은 소도시이기에 자차로 이동하면 목적지가 어디이든 20분 남짓 소요된다. 아무런 부담감을 가지지 않고도 언제든 여행길에 나설 수 있다.

원고를 보내고 첨삭 모임을 하는 날, 나는 군산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다. 내가 쓴 '한길문고', 아파트 근처에 있는 황톳길과 작은 카페, 도깨비 시장이라고도 불리는 '새벽 시장', 월명공원, 구 도심인 평화동 일대 등등. 그 글들을 보면서 나는 내가 그 장소들을 접했던 시간으로 돌아갔다.

마침 그날은 8월 22일 금요일이었고, 군산에서 '2025 군산 국가유산 야행 축제'의 시작일이었다. 축제는 8월 22일부터 30일까지 금요일과 토요일마다 열린다. 군산의 야경, 역사, 체험, 전시, 공연 등 9夜 테마로 구성된 축제이다. 군산시의 근대문화유산 일대를 배경으로 빛과 소리, 이야기와 예술이 어우러지고 야간에 열리는 테마 축제이다. 이번 여름 더위에 지쳐있지만 낮에 군산 곳곳을 배경으로 한 글들에 심취해 있던 나는 퇴근하고 축제장을 찾았다.

주차공간이 넓어서 여유가 있었고 해가 지자 기온도 조금은 떨어졌다. 야간에 열리는 행사이기에 오후 6시면 문을 닫던 박물관, 신흥동일본식 가옥(히로쓰가옥) 등 몇몇 장소들은 야간 개장을 한다는 안내를 보았다. 조명이 환하게 켜진 야간의 일본식 가옥을 보기 위해 군산 시간여행마을로 막 접어들었을 때 옆에 있던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여행 온 거 같다."

정말 그랬다. 축제 중이어서 환한 조명이 켜있고 수년 만에 와본 시간여행마을은 그 특색이 많이 진해져 있었다.

예인촌 과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식당
▲예인촌 과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식당 신은경

저녁 먹을 식당을 찾다가 나와 남편은 자연스럽게 "예인촌이 아직 있을까?"라고 동시에 말했다. '예인촌'은 군산 월명동 주민센터 맞은편에 있다. 이 식당은 나와 남편이 공식적으로 커플이 되고 첫 데이트를 시작한 곳이다. '예인촌'은 양쪽에 새로 짓거나 리모델링한 식당과 커피숍 사이에 예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그곳에 있었다. 다른 메뉴를 생각하지도 않고 우리 둘은 '예인촌' 안으로 들어갔다.

물리학자들이 시간 여행은 불가능하다고 하지만 나는 그 순간 정말 27년 전으로 돌아간 듯했다. '예인촌' 내부는 그 시절과 똑같았다. 벽난로와 나무 테이블의 위치도 심지어 화장실의 구조와 청결함까지 그대로다. 테이블 옆의 벽에는 그동안 다녀간 손님들의 낙서가 그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메뉴판을 보지도 않고 '닭칼국수'를 주문했다.

첫 데이트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그 이야기에 푹 빠져서 우리는 예매해 둔 첫 영화 시간을 놓쳤었다. '그때는 그랬지'의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27년이 지났고 식당 위치나 내부가 그대로이니 혹시 사장님도 같은 분일지. 계산하면서 질문을 했고 사장님은 그렇다고 대답하면서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우리가 나가는 순간 들어오는 아이를 동반한 또 다른 손님은 "예전에 정말 자주 왔었는데"라고 말했다. 아마도 그들도 그들만의 시간여행을 했을 것이다.

이번 야행 축제가 끝나고 오는 10월 9일부터 12일까지 '군산시간여행축제'가 다시 열린다. 내가 나고 자라고 살고 있는 소도시 군산은 근대역사뿐만 아니라 개인의 역사도 간직하고 있다. 그 속에서 나는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살고 있다.

군산 야행 축제 군산 야행 축제 포스터
▲군산 야행 축제 군산 야행 축제 포스터 한국관광공사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기자의 브런치(brunch.co.kr/@sesilia11)에도 실립니다.
#군산 #야행 #시간여행축제 #소도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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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아들을 키우며 꿈을 이루고 싶은 엄마입니다.아이부터 어른까지 온 가족이 다같이 읽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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