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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 강조하는 이 대통령, 과거사 피해자들은 왜 안 만나나

[取중眞담] 한일관계 '선순환론'에 계속 소외... 한일-한미 정상회담 성공했다지만

등록 2025.08.31 11:53수정 2025.08.31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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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박진 외교부 장관이 6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청사 브리핑룸에서 일제 강제징용 피해 배상해법 발표를 하고 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이 6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청사 브리핑룸에서 일제 강제징용 피해 배상해법 발표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물컵에 물이 절반 이상은 찼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이어질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에 따라 그 물컵은 더 채워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지난 2023년 3월 6일 외교부청사 브리핑룸. 당시 박진 외교부장관은 수차례에 걸쳐 피해자 및 유가족들의 의견을 진정성 있게 수렴한 결과라며 일제 강제동원 피해배상 해법을 공식 발표했다.

이른바 '제3자 변제'라고 불리는 이 해법의 골자는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재원을 조성해 대법원으로부터 배상 확정판결을 받은 피해자들에게 판결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문제는 대법원은 분명 신일본제철과 미쓰비스중공업 등 일본 기업들에 배상을 명했는데, 돈을 내는 것은 그들 대신 포스코, KT&G, 한국전력 등 한국 기업들이라는 것이다. 삼권분립이 엄연한 민주주의 국가에서 행정부가 사법부의 판결을 무력화시킨 셈이다.

박 장관의 이른바 '물컵 반잔론'은 '(한국 기업만 참여하고) 일본 기업의 배상금 참여는 견인하지 못한 반쪽짜리 해법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나온 말이었다.

박 장관은 기자들의 질문이 계속 이어지자 "한일 관계의 미래지향적인 발전을 위해서 양국 경제계가 자발적으로 기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일본 정부도 민간의 자발적인 기여는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인 것으로 이해한다"며 일본측의 참여도 있을 것처럼 말했다.

이쯤에서 박 장관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그 '절반'은 어떻게 됐는가. 절반은커녕 한 방울이라도 채워졌는가. 다시 돌아봐도 제3자 변제안은 무책임한 굴욕 외교의 끝판왕이었다.


2년 반쯤 전에 있었던 일을 길게 되돌아본 것은 기시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2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한미, 한일 정상회담 등 현안 관련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2025.8.22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2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한미, 한일 정상회담 등 현안 관련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2025.8.22 연합뉴스

기시감


한일정상회담을 하루 앞뒀던 지난 22일 이재명 대통령은 일본 <요미우리신문> 단독 인터뷰에서 "정책의 일관성과 국가의 대외 신뢰를 생각해야 한다"면서 "위안부합의나 강제징용 해법은 국가간 합의이므로 뒤집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일본 언론들은 수 년간 '극악한 반일주의자', '반일 몬스터' 이미지를 씌워 이 대통령을 악마화해왔다. 예상 못한 이 대통령의 '전향적' 발언에 얼마나 감격했던지, 나머지 일본 4대 전국지들은 합동으로 이 대통령을 한 번 더 인터뷰했다. 이 대통령이 미국보다 일본을 먼저 방문한 것은 '기쁜 서프라이즈'라며 환호를 이어갔다.

'이시바카레'와 안동찜닭 등 일본 측의 극진한 대접을 받았던 한일정상회담도, 트럼프 대통령의 '숙청·혁명' 발언으로 지옥과 천당을 오갔던 한미정상회담도 다행히 큰 일 없이 마무리됐다. 매우 성공적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나라의 운명이 걸렸던 회담들이 지나간 뒤 정리해보면, 한일관계에 대한 이재명 정부의 입장은 '일단 일본과의 관계를 좋게 만들어놓고, 그런 선순환을 이용해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도 전향적 성과를 이끌어내보자'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일 관계가 좋아지면 과거사 문제에서도 전향적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건 누가 보장하는가. 일본 측의 '성의있는 호응'을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박진 전 장관의 '물컵 반잔론'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기자는 모르겠다.

일부 학자들이나 정치인들의 해석처럼, 정부가 차라리 우리에 비교적 우호적인 이시바 시게루 총리를 살리고 다카이치 사나에 같은 강경 극우 정치인이 총리가 되는 불상사를 피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설명한다면 조금은 맘이 편하겠다. 그러나 이미 물컵에 물이 채워지길 2년반이나 기다려온 피해자와 국민들에게 덮어놓고 마냥 기다려달라는 말은 무책임하다.

 이재명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 가서 다 정리했다?

더 큰 문제는 설사 그게 '전략'이라고 믿어주더라도, 대통령이나 고위관계자들의 말이나 행동에서 과거사 피해자들을 진지하게 바라보는 자세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 이후 대형 참사 유가족들을 만나 위로하고 의견을 듣는 자리를 마련해 그들을 감동시켰다. 정치계, 학계, 종교계 인사는 물론 극우라고 불리우던 원로 언론인들까지 집무실로 불러 경청하고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지난주 전성환 경청통합수석은 이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 6주간 아리셀 참사에서 씨랜드 참사까지 10개의 사회적 참사 유가족들을 더 만나 의견을 듣겠다고 말했다. 정부가 참담하고 억울한 일을 당한 국민들을 만나는 것은 그 자체로 그들에게 큰 위안이 될 것이다.

그런데,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미국 순방을 떠나기 전 출입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이 대통령이 (대형참사 피해자들처럼) 위안부나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모셔 위로하고 의견을 들을 생각은 없냐'는 <오마이뉴스>의 질문에 "각계와의 많은 소통은 우리 정부가 중시하고 추진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런 맥락에서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위안부나 강제동원 문제가 중요하고 긴급해서 만나는 게 아니라, '그냥 그들도 소통 대상이긴 하니까', '그런 맥락에서', '검토는 한번 해보겠다'는 걸로 들렸던 건 기자뿐이었을까. 해방 이후 80년 동안 일본측의 진심어린 사과 한마디만 듣고자 싸워왔던 과거사 피해자들이 겨우 그런 존재밖에 안되는가 되묻고 싶었다.

당선되기 불과 20일 전 세상을 떠난 이옥선 할머니를 추모하며 "역사적 사실 규명과 명예회복, 그리고 피해자 지원을 위해 노력하겠다"던 글을 올렸던 이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위안부 문제 때문에 한일관계가 어렵다더라'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그래서 미리 일본에 가서 다 정리하고 왔다"고 말했다. 트럼프에게 점수는 땄을지 몰라도, 이 모습을 TV로 지켜본 할머니들은 어떤 마음일까.

이용수(97), 박필근(97), 강일출(97), 김경애(95)... 신원을 공개하지 않는 2명을 포함해 생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이제 겨우 6명 남았다. 곧 있으면 모두 100살이 넘어간다. 그런 가운데 강제동원 피해자인 '107세' 김한수 할아버지는 지난 6월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이겨 1억 원의 배상금을 받게 됐다. 어떻게든 책임을 회피하려는 일본측의 고집 이상으로 반드시 응징하겠다는 피해자들의 집념은 끈질기다.

과거사에서도 성과를 내고 싶다는 말이 진심이라면, 피해자들을 먼저 만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이재명 #과거사 #위성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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