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유년시절을 비추던 서재의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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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결혼을 한 나는 직장을 다니면서도 주말이나 휴가 때면 부모님 댁에 내려왔다. 늘 나를 기다려주시는 부모님의 온기와 집밥이 그립기도 했다. 비록 작은 방이지만 책상, 서재, 피아노, 옷장이 있어서 생활하는데 문제가 없었다. 그 방에서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악기도 연주하고, 노래도 부르며 참으로 긴 시간을 보냈다.
생각해 보면 나에게 늘 서재가 있었다. 평생을 책과 글쓰기를 가까이하신 아버지 영향인지 몰라도 책이 한가득 채워져 있는 서재는 나의 유년 시절을 비추어 주던 등대와 같았다. 내가 읽고 싶은 책과 물건이 가득한 서재만 바라보아도 왠지 모를 뿌듯함이 흘러넘쳤다.
슬플 때, 힘들 때, 외로울 때 늘 손만 뻗으면 무언가 꺼낼 수 있다는 그 느낌이 좋았다. 그래서 늘 가득 넘치게, 허세 있게 채워 놓았다. 언제 어떻게 발생할지 모르는 여러 상황에 대비하여 무언가를 꺼낼 수 있게 말이다. 좋은 책 한 권과 잔잔한 음반 한 개면 하루를 버틸 힘이 생겼고, 나의 기억과 감정은 새로워졌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서재도 나만큼 나이를 먹었다.
그러나 더 이상 내 방은 내 방이 아니다. 유년 시절의 나를 비추고 위로해 주던 책과 물건들은 해묵은 먼지를 토해내며 빠르게 비어 간다. 내가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미래를 설계했던 공간은 옷과 추억을 편하게 꺼내며 남은 찬란한 노후를 보내는 공간으로 변신할 것이다.
책으로 가득했던 나의 서재는 엄마의 옷가지와 소품을 넣는 장소가 된다. 나만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쓰던 책상은 부모님이 틈틈이 사무를 보시거나 빛바랜 추억의 사진을 꺼내보기 좋은 장소가 된다. 주간보호센터에서 가져온 색칠 거리나 만들기 거리도, 마무리하고 싶을 때를 대비하여 색연필, 사인펜, 가위, 풀 등도 가지런히 정리해 놓았다.
이제는 옷도, 물건도 편하게 잘 찾아서 꺼내 입고 사용하시기를. 그리고 내가 서재에서 오랫동안 책 한 권과 좋은 음반 한 개로 충분히 행복했듯, 행복도 함께 꺼내시기를. 지금이라도 노력하고 있으니 잘 지내시기만을 간절히 바라며 집으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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