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음중... 연습만이 살길! 계속해서 반복하는 녹음
은주연
그럼에도 여전히 내가 열과 성을 다하는 건 낭독이다. 안타까운 건 중급반으로 넘어가니 초급반 때의 재미가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지만. 중급반에 오니 비로소 내가 가진 말투의 나쁜 습관을 알게 되었고, 고치려고 해도 쉽사리 고쳐지지 않는다. 더 최악인 건, 습관에 집중하니 나머지 문장들도 제대로 읽히지가 않는다는 것이다.
책 속에 들어가 집중을 하고 한 문장 한 문장 꼭꼭 씹어먹으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무슨 말인지는 알겠지만, 그렇게 서사를 쌓았다고 해서 내 목소리가 그 표현을 제대로 하는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러니까 선생님의 말씀은 내용 파악을 하고 인물의 성격을 구축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톤이 결정된다는데, 나에게는 여전히 그 과정이 알쏭달쏭하다.
노력하는 마음으로 나름 연기톤으로 읽어보려 했지만 도무지 쑥스러워 말 한 마디 뱉기가 어려웠다(이쯤에서 발연기라 나무랐던 연기자들에게 사죄한다). 그러니 자꾸 녹음해야 하는 숙제를 미뤄두고 다른 책을 찾아 읽게 된다.
그 과정에서 재미가 붙은 것이 성경 낭독이다. 지금의 내 목소리로 완벽하진 않지만 나만의 성경 오디오북을 만들어보는 중인데 그 재미가 쏠쏠하다. 언젠가 할머니가 되었을 때, 지금 내 목소리로 성경을 듣는 건 꽤나 특별한 선물이 될 것 같기도 하고.
행복은 계속 열망하는 것
그렇게 요즘은, 녹음한 성경을 점검차 설거지 할 때마다 듣는데 며칠 전에는 설거지를 마치며 이어폰을 빼다가 중얼거린 적이 있었다. 그날 따라 녹음이 잘 되어서 상당히 업(up)된 상태였다.
나 : "너무 좋다."
남편 : "뭐가?"
나 : '내 오디오북.'
남편 : "(엄지 척) 멋지다.... 이제 당신, 진짜 경지에 달한 거 같아."
나 : "뭐가?"
옛날말로 자뻑(?)의 경지에 달했다는 말이냐며 추궁했지만 사실 딱히 틀린 말도 아니라 나도 웃고 말았다. 진짜로 내 영혼이 가장 좋아하는 목소리라 그런 건지.
그나저나 지난주 낭독 수업에서 명쾌하지 않았던 캐릭터 구축에 관한 힌트를 오늘 엉뚱한 곳에서 얻었다. 얼마 전에 낭독 오디션에 참가한 적이 있었는데(당연히 떨어짐) 당선작의 목소리가 오늘 공개된 것이었다. 듣고나서 '아, 역시 그래서 떨어졌구나' 싶었다. 당선작은 현재 뮤지컬 배우의 낭독이었는데, 담담한 연기톤이란 저런 것이었구나 싶었다.
청자를 고려한 감정선을 쌓고, 과하지 않게 그 정서를 전달하며 그 텍스트에 들어가 읽는 것. 음... 쓰고 보니 무슨 말인가 싶지만, 역시 내가 가르친다 해도 이렇게 밖에 말을 못 할 것 같다. 선생님의 말이 늘 무슨 말인가 헤매었었는데 이런 말이었겠구나 싶다.
다시 아까 커피 이야기로 돌아가면, 나는 여전히 커피 없는 삶을 살고 있지만 그 생활에 적응이 되어가고 있다. 카페인은 없지만 루틴으로 버티는 중이랄까? 나의 요즘 루틴은 새벽미사를 가고 여전히 신문을 읽고, 덥지만 야외 러닝을 하고, 성경 낭독을 하고, 또 <긴긴밤>(루리/문학동네)을 낭독하는 것.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노든이 되어보고, 앙가부가 되어보는 일에 노력하고 있다.
여전히 서사와 캐릭터에 맞는 톤을 구축하는 일은 요원해 보이나 언젠가는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낙관한다. 뭐 또 아니라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그래도 나의 성경 오디오북은 남길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내 인생의 한 획을 긋는 거다.
언젠가부터 '안 되면 어때 뭐'라며 자꾸 합리화하는 스킬만 늘어가는 게 조금 쑥스러운 일이기는 하지만 할 수 없다. 좋은 것만 보자고 다시 한번 마음 먹는 수밖에. 성 오귀스탱도 말했듯, 행복은 더 크고 귀한 것을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갖고 있는 것을 계속 열망하는 것이라고 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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