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를 돌보며 매만진 내 마음, 여름이 지나갑니다

500원 동전 크기였는데 어느새 솥뚜껑처럼 커졌다... 부모님 곁을 지켜준 고마운 친구

등록 2025.09.01 09:24수정 2025.09.01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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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어찌나 뜨거웠던지 올여름은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그 열기에 내 마음은 과일처럼 잘 영글었을까 아니면 새빨갛게 화상을 입었을까. 엊저녁에 지나가듯 던진 어머니의 말씀이 오래 가슴에 맴돌았다.


"물고기가 다 죽고 한 마리 남았네."

얼마 전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좋아하셨던 물고기가 자꾸 죽는 게 안타까우신가 보다. 나는 행여 어머니가 낙담하실까 걱정되어 어디선가 주워들은 이야기를 한다.

"부탄 사람들의 행복 지수가 높은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이 자연과 가까이 산다는 것이래요, 어머니. 동식물을 가까이 접하며 살다 보면 길거리에서 죽은 고라니나 새들을 수시로 보게 되고, 야생 동물이 먹다 남긴 동물의 사체를 자주 접하게 돼 죽음이 가깝게 느껴져서 터부시하지 않게 된대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행복 지수가 월등히 높은 거고요.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죽음을, 나와는 상관없는 저 멀리 어디쯤 있는 걸로 알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거래요."

어머니는 그러냐고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지만 공감을 하신 건지는 모르겠다. 내가 한 말의 의도(물고기의 죽음이 두려워 이제 안 기르겠다는 어머니를 말리고 싶은)를 알아채셨을 거라 생각하며 위안을 삼아본다.

수조 옆에는 거북이 집이 있다. 처음에는 오백 원짜리 동전 크기 만했던 거북이가 지금은 솥뚜껑 만한 크기로 자라 나름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큰 플라스틱 통 안에 돌과 물을 담고 그 안에서 살게 한 것인데 이 친구가 자꾸만 밖으로 나오려 한다. 자다가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깨어보면 이 녀석이 어느 틈에 밖으로 나와서 바닥을 기어 다닌다.


 거북이를 돌보며
거북이를 돌보며 adaobib on Unsplash

기겁한 나는 소리를 지르며 어머니를 깨운다. 어머니는 능숙하게 집어서 다시 집에 넣어주신다. "얘가 어떤 때는 침대 머리 맡까지 와 있어서 깜짝 놀란 적도 있어"라고 심드렁하게 말씀하신다. 자다가 머리 맡에 있는 큰 거북이를 발견했을 때의 상황을 떠올려 보고 또 한 번 몸서리를 친다. 크기나 작으면 모를까 지금은 너무나 커서 어떤 때는(거북이에게는 미안하지만) 징그럽다.

한때는 그렇게 징그러워했던 거북이를 지금은 내가 돌보고 있다. 물이 더러워져 자주 갈아주어야 하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는 동력을 잃으셨는지 어머니가 물을 갈아줄 생각을 안 하신다. 할 수 없이 내가 한다. 물을 버리고 통의 바닥을 솔로 닦고 깨끗한 물을 넣어준다. 징그러워서 거북이를 꺼내 놓지는 못하고 통에 놔둔 채로 물을 갈아주다 보니 이 녀석이 긴장을 하는지 머리를 몸속에 쏙 넣고 죽은 것처럼 꼼짝 안 한다.


다 갈고 제자리에 통을 갖다 놓으면 그제야 살며시 머리를 내밀고 나를 빤히 쳐다본다(보는 것 같다). 노란 줄이 눈썹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는데 자꾸 보다 보니 귀엽다. 생전 관심을 가져보지 않았던 물고기와 거북이를 매일 보며 여러 생각을 한다. 관심 없던 작은 열대어가 누군가에게는 삶의 희망이 되기도 하고 그렇게 징그럽던 거북이도 돌보다 보니 살짝 귀엽고 애틋해보인다. 모든 것은 그대로인데 내가 변했다. 그러니 물고기도 거북이도 다르게 보인다.

생각의 그물망 속에서 맴도는 사랑, 미움, 원망, 회한이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사실 인생의 정답은 정해져 있는데 어리숙한 사람인지라 고민하고 의심하며 헛된 실수를 되풀이한다. 사랑하고 또 사랑하면 수많은 갈등이 사라질 터인데 그게 그리 어려워 힘들게 아파하며 살아간다. 사람이 어떻게 매번 착하고 올바르게 살 수 있느냐고 변명해 보지만 결국 나는 자기 합리화의 달인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요즘도 자다가 문득 부스럭 소리가 나면 나는 긴장한다. 혹시 거북이가 내 옆을 기어다니는 게 아닐까 싶어서 초조해 하며 불을 켠다. 밖으로 나오려고 버둥대던 거북이가 멈칫한다. 나는 거북이에게 다가가 말을 시킨다.

"나오고 싶니?"

나를 빤히 보는 것 같은 거북이와 내가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이 시간이 따뜻하게 느껴진다. 우리 부모님 곁에서 함께 해 주었던 고마운 존재다. 불을 끄고 다시 잠을 청해본다. 여름이 끝나가고 있어 아쉬우면서도 고맙다.
#죽음 #부탄 #물고기 #거북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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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현안과 문화에 관심이 많은 수학강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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