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톱이 돌아오고, 강이 길을 찾는 날

[세종보 천막 소식 491일] 강은 이미 회복을 말하고 있다

등록 2025.09.01 11:44수정 2025.09.01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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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물길이 열린 농성장의 모습
다시 물길이 열린 농성장의 모습 이경호

오랜만에 모래사장을 밟았다. 그 순간, 몸속 깊이 전해지는 감각은 오래 잊고 있던 고향의 흙냄새 같았다. 대청호 방류로 막히고, 비로 막혀서, 그리고 개인적인 일이 있어 한동안 오르지 못했던 작은 모래와 자갈 언덕에 농성장을 다시 찾아왔다.

우리는 여전히 길이 열리면 발은 저절로 그곳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세종보 농성장이 있는 언덕은 여전히 제자리에 있었다. 흙과 풀, 바람이 반기는 듯했다. 마치 떠돌던 이가 고향의 마당에 다시 발을 들이는 듯한, 그런 귀향의 감정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곳은 단순한 모래 언덕이 아니었다. 강의 맥박이 뛰고, 생명들의 기억이 새겨진 자리였다. 그래서 돌아온 발걸음은 그 자체로 깊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

다시 돌아오자 확인한 것은 발자국이었다. 크고 단단한 고라니의 굽자국, 작고 여린 너구리 발자국, 그리고 바람결 같은 새들의 발자취가 모래 위에 겹겹이 새겨져 있었다. 흔적들은 지난밤 이곳을 다녀간 생명들의 인사였다. 농성장에서 자주 마주하던 너구리 가족은 이미 세 마리 새끼를 다 키워냈다. 지금쯤은 제법 자라 성체가 되었을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강은 여전히 다양한 생명의 발걸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가장 먼저 발자국을 남겼을 새들
가장 먼저 발자국을 남겼을 새들 이경호
 고라니 발자국의 모습
고라니 발자국의 모습 이경호

전혀 다른 풍경도 있다. 갑자기 줄어든 수위에 적응하지 못한 작은 물살이(물고기)들이 자갈위에 힘없이 쓰러져 있었다. 숨을 다하고 채 마른 바람에 말라가고 있었다. 생명이 소리 없이 스러져가는 그 장면을 보니, 강의 상처와 이곳을 지키는 우리들의 상처가 떠올랐다.

 말자 죽은 피라미
말자 죽은 피라미 이경호

생명과 죽음의 풍경은 마치 한 폭의 대조적인 그림 같다. 한쪽에는 새로운 발자국과 삶의 흔적, 다른 한쪽에는 고통과 죽음의 역설을 이곳에 생명들은 초연하게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인간의 욕망은 생명의 풍경보다는 죽음을 만드는 일에 더 열을 올린다. 세종보 재가동은 이런 생명과 죽음의 대조를 없애고 죽음만을 남기는 획일화다. 강은 생명의 터전이면서 동시에 인간이 가한 상처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 했다. 현실을 직시하는 순간, 강을 되살려야 한다는 절박함은 더욱 커졌다.

하늘을 스쳐 지나간 까치 한 마리는 머리 깃털이 빠져 있었다. 칠월칠석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는 듯했다. 까치들이 오작교를 놓아 견우와 직녀가 만나듯, 언젠가 강의 생명들도 다시 만날 날이 오지 않을까. 오래된 전설이 오늘날의 강 위에서 새로운 희망으로 되살아났다.

강변에는 실제로 작은 기적이 일어나고 있었다. 큰 자갈 뒤로 모래가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었다. 세종보 농성장이 있는 대평리 일대는 본래 모래톱이 가득한 곳이었다. 아이들이 뛰놀고, 어부들이 그물질을 하던 모래강이었다. 그러나 4대강 공사 이후 모래는 사라지고, 대신 진흙과 부유물, 녹조가 강을 덮었다.


 자갈 뒤에 싸여가는 모래의 모습
자갈 뒤에 싸여가는 모래의 모습 이경호

그러나 지금도 해마다 조금씩 모래가 돌아오고 있다. 빠르지는 않지만, 강은 스스로 제 길을 찾고 있었다. 흐름이 회복되면 모래가 돌아오고, 모래가 돌아오면 수생식물과 곤충, 물고기들이 서식처를 되찾는다. 모래톱은 단순한 퇴적물이 아니라, 강이 스스로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신호였다.

회복의 길은 여전히 멀었다. 대청호에서 떠내려온 녹조 사체가 강변 모래 위에 겹겹이 쌓여 있었다. 만약 보가 물을 막고 있었다면, 이 녹조는 다시 갇혀 폭발적으로 번성했을 것이다. 세종보가 담수되었던 16년 녹색 독성으로 물든 강의 풍경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죽은 녹조사채가 모래톱위에서 말라가고 있다!
죽은 녹조사채가 모래톱위에서 말라가고 있다! 이경호
 2016년 세종보 녹조
2016년 세종보 녹조 이경호

환경부는 여전히 그 사실을 부정한다. 녹조 문제를 오염원 관리나 기술 개발로만 풀 수 있다는 말만 반복한다. 강물이 흐를 수 있게만 하면 되는 일을 하지 않고, 30년간 하지도 못햇던 비점 오염원관리를 내새우고있다. 거기에 각종 기술로 해결하려는 기술만능주의를 보이는 환경부게 기가 찬다. 세종보를 필두로 4대강의 16개 보를 개방하면 여름철 녹조는 일시에 상당부분 해결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 역시 "공론화"라는 말로 시간을 끌고 있다. 그러나 강이 스스로 보여주는 회복의 모습을 보아야 한다. 모래가 돌아오고, 녹조가 힘을 잃고, 생명이 발자국을 남기고 있다. 강은 이미 답을 말하고 있다. 정책과 현장의 괴리는 더욱 선명하다. 회복하는 강과 지연하는 정부의 태도가 대비되면서, 분노와 안타까움은 커져만 간다.

해외의 사례는 이 단순한 진리를 더욱 분명히 보여준다. 미국 워싱턴주의 엘와(Elwha) 강에서는 2011년과 2014년, 두 개의 댐이 철거됐다. 100년 가까이 막혀 있던 강이 다시 흐르자, 연어와 송어가 돌아왔다. 수백 종의 식물이 강변을 덮었고, 퇴적토는 바다로 흘러가 새로운 모래사장을 만들었다. 불과 10년 만에 이 같은 수백만 마리 어류를 품는 생태계를 되찾았다.

 1954년 지금 농서장이 있는 곳의 모습 - 모래톱이 가득하다.
1954년 지금 농서장이 있는 곳의 모습 - 모래톱이 가득하다. 임재근
 다시 쌓인 모래톱에 새겨진 수달 발자국
다시 쌓인 모래톱에 새겨진 수달 발자국 이경호

세계가 보여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흐름을 회복시키는 것, 그것이 곧 생태의 회복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여전히 이 단순한 진리를 외면하고 있다. 복잡한 기술과 대책을 앞세우지만, 강의 본질을 되살리는 길은 결코 어렵지 않다. 보를 열고, 흐름을 돌려주는 것이다.

오늘 세종보 농성장에서 본 강은 이미 답을 말하고 있었다. 모래톱이 돌아오고, 작은 발자국들이 새겨지고, 녹조는 힘을 잃고 있었다. 강은 길을 잃지 않는다. 다만 그 길로 돌아가기 위해 인간이 막아놓은 문을 열어줘야 한다. 그 문을 여는 것은 보 철거다. 강은 이미 스스로 길을 찾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정부의 속도와 결단이다. 강은 다시 흘러야 하고, 사람은 그 길을 막지 말아야 한다. 정부가 이 단순한 진리를 더 이상 외면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세종보 #농성장 #녹조 #생명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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