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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후유증으로 산화한 민주주의자 김근태 열사

[김삼웅의 인물열전 - 민족민주열사열전 43] 그는 "2012년을 점령하라"는 말을 유언처럼 남기고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났다.

등록 2025.09.08 15:02수정 2025.09.08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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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4세로 별세한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영정
64세로 별세한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영정 유성호

완전히 발가벗겨졌습니다. 팬티도 남김없이 날아가 버리고요. 이곳에서 무슨 수치심 그런 것을 여길 계제는 전혀 아니었지요. 그러나 팬티조차 벗겨지고 보니까 더욱 황당케 되면서 이제 모두 빼앗겨버리고 말았구나(…)

칠성대 위에 또다시 꽁꽁 묶여진 다음에 고문자들은 발바닥과 발등에 붕대 같은 것을 여러겹 감았습니다. 새끼발가락과 그 다음 발가락 사이에 전기접촉면을 끼우고, 그것이 움직이지 않도록 하는 조치를 취하는 것 같았고 이 붕대도 전기담요처럼 전기가 통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다음 발에, 사타구니에, 배에, 가슴에, 목에 그리고 머리에 물을 주전자로 들이부었습니다. 그때 물의 섬뜩함은 귀기가 살갗에 달라붙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어느 정도 물고문이 진행되어 몸에 땀이 나는 것 같게 되면, 그때부터 전기고문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짧고 약하게, 그러다가 점점 길고 강하게, 강력하게 전류의 세기를 높였습니다. 그리고 중간에는 다시 약해지고, 가끔씩은 발등에 전기를 순간적으로 대기도 했습니다. (주석 1)

독재정권 치하에서 고문을 당한 민주인사가 수없이 많지만 김근태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1985년 9월 4일 서울대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추위)사건의 배후로 지목되어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로 연행되어 22일 동안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앞의 인용문은 그때 당한 고문의 한 장면이다.

김근태는 1947년 2월 14일 경기도 부천 소사에서 태어났다. 집안이 이사를 자주하여 양평군 양주초등학교, 서울 광신중학교, 명기고등학교를 거쳐 1965년 서울대 상대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상대 대의원회 회장에 선출되고 대통령 부정선거 규탄 시위로 제적당하고 군대에 끌려갔다.

1970년 제대하고 복학하여 1971년 서울대생 내란음모 사건으로 수배당하고, 졸업 후 일신산업에 취업했으나 1974년 긴급조치 7호로 연속 수배되고, 인천 도시산업선교회에서 노동상담역으로 일하였다. 1983년 민청련을 결성, 초대 의장에 선임되고 이후 민주화운동의 최전선에서 독재와 싸웠다. 세상에서는 그를 '민주주의자 김근태'로 불렀다.

박정희가 짓밟은 헌정을 다시 짓밟고 광주학살을 통해 권력을 찬탈한 전두환 5공의 독기가 시퍼렀던 1983년 김근태는 공개적으로 살인 정권에 도전장을 보냈다. 민청련의 조직이 그것이다. 민청련은 5공체제 등장 이후 최초의 공개적인 반정부 청년조직이었다. 그와 그의 동지들은 오랜 사유 끝에 민청련의 상징으로 두꺼비를 내걸었다. 양서 동물로서 독성이 강한 두꺼비는 뱀에게 잡히면 죽지만 뱀 역시 두꺼비의 독성 때문에 죽는다. 하지만 두꺼비 새끼들은 그 안에서 뱀을 자양분으로 자란다.
고 김근태 민청련 의장 고문후유증으로 남몰래 고통받다 2011년 12월 파킨슨씨 병으로 우리 곁을 떠났다.
▲고 김근태 민청련 의장 고문후유증으로 남몰래 고통받다 2011년 12월 파킨슨씨 병으로 우리 곁을 떠났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실제로 민청련은 5공이라는 뱀파이어에게 치명타가 되었다. 그 대신 독사의 뱃속에 들어간 김근태는 남영동의 지옥에서 오랜 '짐승의 시간'을 보내어야 했다. 일찍이 죽음을 대면했던 사람이다.


그는 민족모순과 시대모순이 활개치는 시절에 젊음을 보내면서, 그리고 '제도적 약탈'에 민중의 삶이 고통받는 시대를 살면서 뜨겁게, 불꽃같이 저항하였다. 작은 체구에서 불같은 열정이 치솟았다. 혁명가들의 생애가 그렇듯이 독재시대 그의 삶에는 비장감이 서렸다.

정계에 투신한 김근태는 3선 국회의원, 원내대표, 당대표, 보사부장관 등 세속적인 출세를 하고, 정치적으로 민주화를 다지는 큰 역할을 하였다. 참여정부 보건복지부 장관으로서 노인요양보험을 제정하고 암환자 진료의 본인부담률을 10%로 낮추는 등 민주주의, 통일 등 거대 담론과 함께 서민들의 복지에도 남다른 관심과 애정을 보였다.


그는 본디 서민 출신이고 서민과 함께 살아왔다. 하지만 그의 꿈이 채 영글기도 전에 '민간 독재자'가 나타나서 역사를 87년 이전 체제로 되돌리고, 그는 병마에 쓰러졌다.

김근태는 고문 후유증으로 파킨슨병을 앓다가 2011년 12월 30일 눈을 감았다. 송건호·리영희 등이 겪었던 그 증상이었다. 체포 26회, 구류 7회, 5년 6개월에 걸친 두 차례의 투옥과 숱한 가택연금과 수배... 망국기 독립운동가들이 겪었던 험난한 길을 그는 해방된 나라에서 겪게 되었다.

김근태는 대단히 겸손하고 성실한 품성이었다. 공사 생활에서 깨끗하고 정직한 정치인이었다. 지극히 가정적이고 서민적인 인물이었다. 그만한 정치적 위치에 있었으면서도 재산을 모을 줄 몰라 부인은 항상 생활에 쪼들리고, 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한 뒤에는 그 흔한 자동차 한 대 굴리지 못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였다. 그는 야권의 누구보다 개혁성이 강한 진정성의 지도자였다. 장준하를 닮은 데가 많았다. 그는 어디서나 허투루 말하지 않고, 야당 정치인으로서 언론플레이용 강성 발언도 함부로 하지 않았다.

그는 민주주의의 원칙을 지키면서 의회주의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는 민주주의자였다. 이승만으로부터 군부독재 그리고 민간독재에서 신줏단지처럼 모셔온 국가보안법 등 악법을 폐기하고, 외세가 갈라놓은 조국의 분단을 이어보려는 큰 꿈을 간직했던, 우리 정계에서 흔치 않는 한반도의 미래를 구상하는, 진정성의 정치인이었다. 그러던 그는 "2012년을 점령하라"는 말을 유언처럼 남기고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났다.

김근태 열사는 1986년 3월 16일 오전 10시, 서울형사지법 178호 법정에서 1심 공판이 열렸다. 여전히 방청인은 제한되고, 언론은 외면하거나 정부발표문만을 받아쓰는 상태였다.

그는 최후진술을 활용하기로 하였다. 다른 기록은 훔쳐가고 날조해도 법정의 최후진술만은 기록으로 남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정치군부의 하수인이 된 법원이 양심껏, 소신껏 판결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긴 감옥살이를 각오하면서 당당하게, 준열하게 진술하였다. 결기 넘치는 진술이었다. 주요 부분이다.

한 개인, 인간은 정치군부의 폭력적 탄압에 굴복하고 좌절할 수도 있다. 본인은 체포된 이래 수많은 굴종을 강요당했다. 두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고, 아니 고통 없이 죽여 달라고 빌기도 했다. 그리고 조그마한 저항이라도 포기하지 않으면 또 다시 저들에게 고문을 당했다. 그러나 다시 지금 본인은 수많은 사람들의 격려가 있기 때문에 다시 민주화 대열에 한 사람으로서 참여할 것을 결심하고 있다.

그러나 김근태가 민주화 대열에서 당한 고난이 우리 사회에서 열 명 그리고 새로운 백여 명의 민주화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창출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 민주화 운동은 이미 폭력적 탄압 아래서 굴복하고 좌절해 가는 사람 숫자를 열 배, 스무 배로 보충하고도 남을 충분한 사람들이 민주화운동에 참여하고 동조하는 배후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이것은 지난 80년 5·17과 광주 민주화운동 이후 우리 사회에 새로운 민주화 열기를 고조시키고 물러설 수 없는 민주화 실현의 몇 단계를 진행해 온 것을 봐서도 우리는 확신할 수 있는 것이다.

주석
1> 김근태, <남영동>, 45~46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 민족민주열사 열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민족민주열사열전 #김삼웅인물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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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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