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영진 열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그는 1984년 7월 구로구에 있는 제강회사에 입사했다. 타고난 친화력으로 성실 근면하게 일하여 동료들의 호감을 받았다. 이 회사 역시 비리가 만만치 않았다. 기숙사에서 틈틈이 노동법을 공부하며 독서회를 조직하여 각종 사회과학 서적을 탐독했다. 당연히 주위의 뜻 있는 동지들이 모여들었고 노조 결성을 서둘렀다.
이런 과정을 내사한 회사 측이 그를 부천공장으로 내몰았다. 그리고 노조 결성을 준비한 직원들을 해고하였다. 박영진 열사는 8명의 해고자들과 모임을 갖고 <해고자 소식>의 발행을 통해 부당해고를 비판하면서 원상복구를 요구했다. 제3호까지 발행한 이 소식지에서 박 열사는 "얼지 말고 단결하여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정당한 권리를 찾자"고 호소했다.
제강회사 노동자(35명)들은 4월 30일 노조결성대회를 갖고 전열을 갖췄다. 박영진 열사는 사무장으로 뽑혔다. 하지만 구로구청은 노조설립 신고를 반려했다. 항의 시위를 벌이고 투쟁에 나섰으나 허사였다. 그 대신 회사 측은 어용노조를 만들어 맛불로 대처했다. 7, 80년대 흔히 있었던 악습의 전형이었다.
박영진 열사는 먹고 사는 일이 막막했다. 1985년 10월 신흥정밀에 들어갔다. 노동조건이 가장 열악하다는 회사를 고른 것이다. 동료들을 규합하여 회사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노보 <현장소식>을 제작하여 근로기준법 위반사례들을 낱낱이 열거했다. 회사 측의 보복이 나타났다. 동료 4명을 해고하고, 그에게는 출근이 정지되었다.
회사와 경찰은 한 덩어리가 되어 그와 그의 동지들을 탄압하고, 심지어 박영진 열사의 부모를 찾아가 아들을 타이르도록 협박했다.
1985년 3월 17일 오후 6시경 박 열사는 출근을 저지하는 회사 앞에서 몸에 석유를 뿌리고 불을 저질렀다. 순식간에 온몸이 화염에 휩싸이고 동료들에 의해 불을 껐다. 그리고 병원으로 실려갔다. 분신 소식을 듣고 문익환 목사와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씨 등이 달려왔다. 부모님도 반죽음 상태로 병원에 들어섰다.
박영진 열사는 지금의 심경을 묻는 이소선 여사에게 많이 끊어지다 연결되다를 반복하였다. 박영진 열사의 '유언'이 되었다.
지금 마음은 행복합니다. 나는 잠시 다니러 가는 것입니다. 물 좀 줘요. 먹지 않을 터니까. 입술에 묻히기만 해 줘요... 그럼 지금 가겠습니다... 중학교 3학년 중퇴하고 공장에 다니면서 생활했다. 신흥정밀은 하루 8시간을 기본으로 일하고 3천 80원을 받았는데, 너무도 살기가 힘들어 임금인상 해달라고 싸웠다.
지금 빨리 가고 싶다. 고통스럽다. 가면 쉬울 것이다. 우리 부모님 여의도의 한성아파트에서 청소부 일을 하고 있다. 어머님이 이 일을 1천만 노동자에게 꼭 전해주시길... 나는 맨 마지막에 빵을 먹었다. 우리도 배부르게 빵을 먹을 때가 있겠지. (주석 1)
박영진 열사는 1986년 3월 18일 새벽 3시 15분경 운명하였다. 38세였다. 시신은 경찰에 의해 화장실로 옮겨지고 민주인사와 가족·동료들이 시신을 지켰다. 벽제화장터에서 경찰의 삼엄한 경비 속에 한줌 재로 변했다. 오후 4시30분경이다. 열사의 둘째 여동생이, "나는 오빠의 시신도 못 봤어요. 오빠가 죽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어요... 전에도 그랬듯이 며칠 지나면 돌아올 것 같아요."라며 오열했다.
박영진 열사의 분신에 대해 박노해 시인의 '천만개의 불꽃으로 타올라라 - 노동투사 박영진 동지 추모시'의 앞 부분이다.
"나는 마지막에 빵을 먹었다.
우리 노동자도 고기에 흰 쌀밥을
배불리 먹을 날이 오겠지"
지친 작업에 쩔은 무거운 육신으로
꼭두 아침 빈속으로 만원 버스 메어달려
뺑뺑 돌며 비지땀에 칼날이 서도록
욕설과 멸시 화살 여린 가슴 맞아내도
결국 해고자가 되어 취업조차 막혀
노동살이 8년에 우리들의 청춘을
9시간에 3.280원이었어
가난과 굴종에 멍든 가슴 분노를
우리는 당당하게 일어서 외쳤지
소식지를 나눠주고 식당에서 작업장에서
동료들과 뜨겁게 뒤엉키며 힘찬 열변과 토론으로
적자엄살에 살 찢어지는 자상하신 낯짝들의
가증스런 착취자의 가면을
여지없이 찢어 일겠지.(후략)
주석
1 > 김종찬 편, 앞의 책, 2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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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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