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에서 오열하는 이내창의 어머니 이내창의 어머니는 장례를 치르고 얼마 안 지나 뇌졸중으로 쓰러져 15년 이상 앓다가 한 많은 삶을 마감했다.
이내창추모사업회
중앙대학교 학생들은 이를 믿지 않았다. 자살로 보기 어렵다는 주장과 함께 여러 가지 의문점을 제시했다.
그가 유서 한 장 없이 한 번도 가본 적이 없고 연고도 없는 거문리에 가서 자살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었다. 또 자살하려는 사람이 상의, 안경, 혁대, 시계를 벗어 놓고, 하의, 양말, 신발만을 신은 채 자살을 시도하려 했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점이었다. 해류의 흐름상 유류품이 사체 근처에서 발견되어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이내창의 다른 유류품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은 누군가 유류품을 의식적으로 처리했음을 보이는 징후로 판단되었다.
둘째, 단순한 실족사로 보기에도 많은 의문이 있었다. 이내창은 평소 성격상 남이 보는 앞에서 양말도 벗지 않는 것이 상례였는데 상의를 완전히 벗어 놓고 안경, 시계, 혁대를 풀어둔 채로 활보하다가 실족하였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었다. 그리고 사고가 난 유림해수욕장은 경사가 완만하여 전방 50m 내지 100m까지의 수심이 약 1.4m정도밖에 안 되어 실수로 익사하기가 어려울뿐더러 이내창 자신이 당시 상당한 수영 실력자였다는 점을 미루어 본다면 우연한 실족사라고 납득할 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이 일대에는 실족할 만한 뚜렷한 지형이 거의 없다는 것이 현지 주민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만의 하나 파도에 휩쓸리거나 하여 실족으로 바다에 빠졌다면 온몸이 바위 등에 부딪혀 산산이 찢겨지거나 잘려나간 모습이었을 텐데 이내창의 경우 그러한 외상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유류품이 없다는 점 역시 실족의 가능성을 배제케 하는 또 다른 근거로 생각되었다.
셋째, 경찰의 수사과정에서도 많은 문제점이 드러났다. 처음 시신이 발견될 당시 현지인 등 많은 사람이 타살의 가능성을 주장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목격자를 확보하는 데 소극적이었으며, 현장사진 촬영도 형식적으로 진행하였다. 당일 이내창과 함께 승선한 사람들에 대한 검문검색도 대단히 허술하게 진행하였다. 특히 이내창과 동행한 것으로 보이는 2명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지 않은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것이었다. 심지어 경찰은 증인들을 협박하고 회유하여 이내창이 동행인 없이 거문리에 왔다고 진술을 번복하도록 하였다. (주석 2)
중앙대학교 안성캠퍼스 총학생회의 사인진상규명위원회는 그가 타살되었다고 결론내리고 그 배경을 당시 수사 중이던 시국사건 (1차 차일환 및 김정환사건)과 관련하여 이내창의 공안당국의 수사대상으로 떠올랐을 가능성을 지적하고 이를 토대로 이내창을 살해한 것은 공안당국이라고 주장했다.

▲이내창의 시신을 운구중인 학생들 중앙대학교 학생들이 거문도로 들어가 시신을 운구하고 있다. 경찰은 시신을 탈취하려고 했고 여수 시내로 옮겨진 이내창의 시신을 지키기 위해 중앙대학생들과 남대협 대학생 등 500여명이 경찰과 대치하기도 했다.
이내창추모사업회
이내창 동지가 죽음에 이르기 전에 남한의 진보적 화가들이 공동 창작한 걸개그림 '민족해방운동사'가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에 보내졌고 이 사건으로 화가 홍성담씨와 이내창 동지의 학교 선배인 차일환씨가 국가보안법위반혐의로 구속되었다. 이후 풀려난 차일환씨는 안기부 수사과정에서 중앙대학교 총학생회가 걸개그림 제작에 개입한 정도를 집중적으로 추궁당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고 한다.
결국 이내창 동지는 노태우 정권이 정국 전환을 꾀하기 위해 활용할 어떤 조작사건의 혐의자로 지목되어 유인을 당해 거문도까지 갔을 것이고, 어떤 요구를 거절하다가 죽음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측해볼 수 있는 것이다. 김성희 씨는 이내창 동지와 같은 해 의문의 죽음을 당한 이철규 동지도 마찬가지 경우였을 것이라 이야기했다. (주석 3)
주석
1> 이수연, '작은 불씨를 가슴에 담고 사는 사람', <열사회보>, 1999, 5, 8쪽.
2> 앞의 책, '누가 이들을 죽게 했는가', 42~43쪽.,
3> 이수연, 앞의 책,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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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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