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표지
밥북
부인은 1991년 6월 28일 부산불교 자비원 마당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경찰은 자살로 판정했다가 유족들의 진정으로 실족사로 처리되었으나 여전히 의문이 따랐다. 실족사 당할 장소가 아니었다.
김오랑 열사는 반란군에 혈혈단신으로 맞서다가 흉탄을 맞고 전사하였다. 많은 동료들이 반란군 편으로 돌아섰다. 함께 지냈던 친구가 회유하고 겁박했지만, 그리고 결과는 뻔한 상황이었지만, 그는 참군인의 길을 택하였다. 그는 34세로 동료들의 총에 맞아 사망하고 부모와 부인까지 고난의 길이 되었다.
반란군은 이후 정권을 잡고 온갖 포악을 저지르면서 부귀를 누렸다. 박근혜 정부에서 국정원장을 지낸 남재준은 그와 육사 동기였다. 동기들 중에 고위직을 지낸 사람이 많았다.
김 열사의 죽음은 2022년 9월 군 사망사고 진상규명위원회가 '순직'에서 '전사'로 바꾸고, 2023년 11월 개봉한 영화 <서울의 봄>에서 배우 정해인이 연기한 오진호 소령의 실제 모델이 되는 등 재조명 작업이 있었으나 역사의 평가는 더뎠다.
2025년 8월 12일 서울지방법원 민사911 단독 유창훈 부장판사는 고인의 누나 등 유족에게 국가의 배상판결을 내렸다. 뒤늦은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지만 그나마 유족에게는 그리고 이 땅 민주주의 역사에 큰 기여를 했다.
유 부장판사는 "대한민국 헌정질서를 파괴 유린한 반란군의 불법행위에 저항하다가 사망한 김 중령의 숭고한 희생에 합당한 예우를 유족에게도 부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 열사가 숨진 뒤 46년 만에 국가의 책임을 사법적으로 확인한 것이다.
김 중령은 불법적인 군사반란에 저항하다 숨졌지만 그의 죽음은 권력을 찬탈한 신군부에 의해 철저히 왜곡됐다. 당시 보안사령부는 김 중령에 대한 총격이 '군의 정당방위'였다고 발표했고 시신도 특전사 뒷산에 매장됐다가 두 달여 뒤에야 현충원으로 옮겨졌다. 무장폭동·내란 등에 맞서다 사망한 경우 '전사'로 예우해야 함에도 김 중령은 사고로 인한 '순직'으로 처리됐다.(…)
헌법을 수호하는 군인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군인들이 올바른 평가를 받지 못하고 유족들도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으며 살아온 것은 우리 현대사의 안타까운 비극이다. 군사반란 가담자들을 엄정히 처벌하고 반란에 저항한 이들을 제대로 예우함으로써 역사적 교훈을 남겨야 했다. 이런 과정이 부족했던 것도 12.3 내란이 일어난 배경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주석 1)
목숨을 걸고 불의에 저항한 김 중령은 '제복 입은 시민'의 본보기다. 12.12 당시 국방부 벙커를 지키다 숨진 정선엽 병장도 마찬가지다. 전두환·노태우의 '성공한 쿠데타'를 단죄할 수 있었던 것도, 윤석열의 '친위 쿠데타'에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이들의 희생이 바탕이 됐다. 해병대 채 상병 순직사건을 원칙대로 조사했다가 정권의 핍박을 받은 박정훈 수사단장, 지난해 12.3 불법 비상계엄 당시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는 윤석열의 위법·부당한 지시를 거부한 조성현 수도방위사령부 제1경비단장 등이 이들의 후예다. '김오랑 기념사업회'와 유족의 바람처럼 육군사관학교와 특전사에 그의 동상을 세워 후배 생도의 군인들의 김 중령의 숭고한 정신을 이어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주석 2)
김오랑 중령은 육군사관학교 선배이며 진정한 군인이었다. 그러나 그 보다도 의리있는 남자였다.(중략) 특전사령부에서 근무하면서 매년 12월 12일이 되면 김오랑 중령의 용기를 기억하는 날이었다. 또한 김오랑 선배의 가족들이 쓸쓸하고 외로운 시간을 보냈다는 얘기는 더욱 가슴 아픈 얘기였다. 대한민국 국군은 태극기를 두고 하나이지만 1979년 12월 12일은 둘로 나뉘어 지고 말았다. 김오랑 선배는 자기 임무에 충실하여 목숨을 잃고 가족들은 험난한 길을 걷게 되었다.
어느 날 김오랑 선배의 훈장이 추서되었고 본인이 마지막으로 근무하고 목숨으로 지킨 특전사령부에서 추서를 하게 되었고 당시 부대장으로서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우리 군에는 여러 종류의 행사가 있지만 우리는 특별하게 진행하고 싶어 준비회의와 예행연습을 통하여 성심성의껏 준비했고, 특히 훈장이 서서히 행사장에 입장하고 북을 우리며 참석자들의 주의를 환기하고 집중시켰고 원혼을 달랬다. 하늘은 맑고 청명한 날이었다.
군인은 임무를 받으면 그 임무에 충실히 임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러나 때때로 혼란스러운 상황에 봉착할 때도 있다. 이때 김오랑 중령은 우리에게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셨다. (주석 3)
주석
1> '46년 만에 국가배상 판결, 12.12 피해자 김오랑 중령', <한겨레> 사설, 2025년 8월 13일.
2> '참군인 김오랑'의 명예 찾아준 국가 손배 판결, <경향신문> 사설, 2025년 8월 13일.
3> 전인범 25대 특전사령관, 김오랑 중령 평전, <역사의 하늘에 뜬 별 김오랑> 추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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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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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반란군 맞서다 총살 당한 김오랑 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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