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고증 없는 졸속 명비, 대학 정신에 맞지 않아"

부산대 주윤정 교수가 말하는 6·25 참전 동문 명비 건립 사업의 문제점

등록 2025.09.03 17:00수정 2025.09.03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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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대학교 전경
부산대학교 전경 부산대 제공

부산대학교 6·25 참전 동문 명비 건립 사업을 둘러싸고 학내 논란이 뜨겁다. 부산대 교수회는 이 사업이 역사적 고증과 민주적 절차를 거치지 않은 '졸속 사업'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교수회는 본부에서 추진 중인 '6.25 명비 사업'과 관련해 지난 4월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그 이후 본부의 캠퍼스기획본부와 약 여섯 차례에 걸쳐 사업 진행 상황에 대해 협의하며 검토를 진행했다. 그러나 명비 명단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문제점을 확인했다고 한다. 교수회는 교수평의회의 의견수렴과 전문가 자문을 거쳐 의견서를 작성했다.

인권사회학을 전공하며 재난과 기억의 정치학을 연구해온 부산대 사회학과 주윤정 교수에게 이번 사업의 문제점과 대안에 대해 물었다. 주윤정 교수는 현재 부산대 사회학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며, 인권사회학과 생태평화, 재난 등을 연구하고 있다. <보이지 않은 역사: 한국 시각장애인의 저항과 연대>로 대한민국학술원 우수 도서를 수상했으며, 최근에는 '느린 재난'이라는 국제 공동연구를 통해 재난과 폭력 이후의 회복력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다음은 지난 2, 3일 이틀간 주교수와 텔레그램으로 인터뷰 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행정 편의주의로 진행된 부실한 기념사업

"부산대 6·25 참전 동문 명비 건립사업은 역사적 고증, 민주적 절차, 대학의 학문정신을 거치지 않은 기계적이고 행정 편의적인 졸속 부실 기념 사업이다."

주 교수는 이번 사업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역사적 고찰과 대학만의 철학 없이 보훈부의 제안에 따라 행정편의 주의적으로 진행된 점을 꼽았다. 특히 학내 구성원과의 논의나 전문적 연구와 검토가 전혀 없었다는 점을 강하게 비판했다.


"전임 총장단이 2023년 정부로부터 제의를 받았을 때 모든 국립대학교에서 거부하기로 했는데, 2024년에 신임 총장이 일방적으로 결정해서 진행 중인 사업이다."

심각한 역사적 신뢰성 문제


명비에 포함된 동문 명단의 문제점은 더욱 심각하다. 주 교수에 따르면 현재 명단은 역사적 고증 없이 단순 행정자료(보훈부 참전자 명부와 졸업생 명부)를 교차 확인하는 방식으로만 구성되었다.

"대학의 역사 기록에 따르면 1951년 당시 군 복무 중이던 학생 75명 중 '유한근 외 수 명'이 전사자로 기록되어 있지만, 현재 명단에는 한국전쟁 시기 전사한 동문이 전혀 파악되지 않는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전체 명단 255명 중 한국전쟁 이후에 입학하고 졸업한 동문이 125명으로 49.02%를 차지한다는 점이다.

"이는 종래 고등학교 학도병 참전 기념사업을 대학으로 확장하는 과정에서 대학의 특성이 고려되지 않아 발생한 문제다. 부산대 교사(10년사, 20년사, 40년사)에 한국전쟁 시기에 대한 기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기초 사료는 검토되지 않았다."

단일 서사의 한계와 복합적 기억의 필요성

 지난 4월 3일 부산대 교수회 평의회가 윤석열 대통령 파면을 촉구하는 시국선언 성명을 발표하는 모습. 맨 오른쪽이 주윤정 교수.
지난 4월 3일 부산대 교수회 평의회가 윤석열 대통령 파면을 촉구하는 시국선언 성명을 발표하는 모습. 맨 오른쪽이 주윤정 교수. 부산대교수회평의회

주 교수는 이번 사업이 '국가를 위한 고귀한 희생'이라는 단일 서사만을 강조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6·25 전쟁에 대한 기억은 단순히 '국가를 위한 고귀한 희생'이라는 단일 서사로 환원될 수 없다. 이 사업은 군인의 참전만을 기념하는 단일 서사를 따르고 있으며, 이는 부산 지역에서 일어난 보도연맹 사건 등 민간인 학살의 비극적인 역사나 다층적 피해와 아픔의 역사를 간과하게 만든다."

특히 그는 김원봉의 동생 김구봉이 부산대 학생 신분일 때 밀양에서 군경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증언을 언급하며, 국가를 위한 죽음뿐만 아니라 국가에 의한 죽음도 함께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산은 피난수도였다고 하지만 전쟁 초기 부산형무소, 민간인학살 등이 조직적으로 벌어졌다. 국가를 위한 죽음, 국가에 의한 죽음 모두를 기억하며, 평화를 위한 기념비로 나아가야 하는데, 현재는 국가를 위한 죽음조차 없는 상황이다."

다양한 전쟁 참여 방식의 배제

현재 명비 사업이 오직 '참전'이라는 기준에만 초점을 맞추어 진행되면서, 6·25 전쟁 당시 부산대 구성원이 미군 통역관, 피난민 구호 활동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전쟁에 기여한 부분이 배제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군인의 참전만을 기념하는 단일 서사가 아니라, 다층적 피해와 아픔·참여의 역사(전투·통역·간호·구호 등)를 함께 구성하는 평화적 기억이 필요하다."

대학정신에 맞는 기념철학 재정립 필요

주 교수는 현재 사업이 부산대의 학문정신과 평화철학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전면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학은 연구와 교육을 통해 사회의 양심을 구현하는 학문기관으로서, 기념사업 역시 신중하고 철저한 학술적 검토와 숙의를 거쳐야 한다."

그는 개선 방안으로 기념 철학 재정립, 다층적 평화 기억 구현, 민주적 숙의 과정 필수화를 제시했다.

"누구를,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기념할 것인지에 대한 대학 자체의 철학을 수립해야 한다. 대학이 전쟁을 기억하는 근본이유는 다시는 민족 간에 피 흘리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교훈을 새기기 위한 것이라는 철학을 명비에 구현해야 한다."

철저한 역사조사와 구술기록 수집 시급

부산대 교수회가 제안한 대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먼저 현재 사업을 전면 중단하고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 교수는 강조했다.

"서울대처럼 미등록 제적자 명단과 전사자 명부를 일일이 대조하는 집요한 학술적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전쟁 시기에 입학하고 참전한 동문 중 생존자들(현재 15인)에 대한 구술기록을 수집하여 역사를 철저히 기록해야 한다."

그는 "명비 건립의 모든 과정에 학생, 교수, 직원 등 학내 구성원이 참여하는 공개적이고 민주적인 논의의 장을 마련하고, 희생의 역사와 더불어 민간인학살과 같은 아픈 역사를 함께 기억함으로써 전쟁의 참혹함과 평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기념비적 의미에 대한 학내 구성원의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부산대 6·25 참전 동문 명비 건립사업을 둘러싼 논란은 단순한 기념비 하나의 문제를 넘어, 대학이 역사를 어떻게 기억하고 기념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주윤정 교수가 제기한 문제들에 대한 부산대학교 본부의 성찰과 대응이 주목된다.

주 교수는 "역사적 고증 없이 기념비를 건립할 경우 역사적 진실이 왜곡되고 기념비의 신뢰성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학문기관으로서의 위상 손상과 학내 구성원들의 공감대 없이 추진된 사업으로 인한 끊임없는 논란과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는 "복합적 역사기억의 상실로 전쟁의 복잡하고 다층적인 면모를 배제하고 단일 서사만을 강조함으로써 미래세대에게 전쟁의 참상을 입체적으로 전달하지 못할 수 있다"며 대학의 학술적 책무를 강조했다.
#부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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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해외입양 그 이후],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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