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문회 나온 최교진 교육부 장관 후보자 최교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가 2일 서울 여의도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 질의를 듣고 있다.
남소연
이재명 정부의 교육 공약 '서울대 10개 만들기'에 대한 언급이 다시 등장했다. 정부가 나서서 지역 거점별로 서울대 수준의 연구중심대학을 10개 세우겠다는 구상이다. 듣기만 해도 거대한 청사진 같고, 뭔가 '잘해보려는' 의지가 읽힌다. 이 정책은 지방 거점 대학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수도권에 집중되는 교육 불균형을 해소해 지역 혁신을 이끌어내겠다는 긍정적인 취지를 담고 있다.
최교진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2일 국회에서 진행된 인사청문회에서 "거점국립대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니라 각 지역에 맞는 학과를 중심으로, 지역의 경쟁력을 키워 학생들이 대학을 나와서 취업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아는 사람은 안다. 서울대라는 이름은 하루아침에 생긴 게 아니다. 수십 년 동안의 재정 투자, 학문적 성취, 졸업생 네트워크가 쌓여 만들어진 명성이다. 단기간에 그것들을 이루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이 '서울대 10개'라는 말이 자꾸 불편하다. 결국 소수의 우수 인재에게 더 많은 자원을 몰아주겠다는 뜻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잘하는 소수에게 집중 투자하면 그 성과가 언젠가 사회 전체로 흘러간다. 바로 낙수효과(trickle down) 논리다. 연구 중심 대학에서 나온 논문이나 특허가 산업계로 이전되고, 그것이 경제 성장을 이끈다는 기대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경험했다. 경제에서 낙수효과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교육도 다르지 않다. 서울대 열 개 만드는 대신, 모든 아이들이 제 발밑을 딛고 서도록 기초를 튼튼히 하는 게 더 중요하다. 초등학교에서의 기초학력 보장, 직업계고 학생들을 위한 현장 맞춤형 교육, 시민 모두를 위한 평생교육 체계, 이게 바로 교육의 '분수효과'다. 작은 물방울들이 솟아올라 모여 큰 물줄기를 이루는 분수 말이다.
그런데 현실은 거꾸로다. 직업계고 취업률은 매년 떨어지고, 대학 진학률은 오히려 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직업계고 출신에게 주는 취업 장려금보다 대학생에게 돌아가는 학자금 혜택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예전에 내가 근무했던 한 특성화고에서 성민(가명)이라는 학생이 있었다. 손재주가 뛰어나 여러 자격증을 취득했고, 졸업만 하면 취업이 어려울 게 없었다. 그런데 그는 대학 진학을 택했다. "저소득층 가구라 대학 가면 더 혜택을 많이 받는데, 일찍 취업할 필요가 없는 것 같아요." 성민이가 했던 이 말이 지금도 머릿속에 맴돈다.
결국 분수효과는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사회적 자원이 공평하게 배분될 때, 성민이 같은 아이들이 대학에 가든 현장에 가든 당당하게 설 수 있을 때, 비로소 작은 물방울들이 솟아올라 공동체 전체를 적시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사회 전체의 역량을 끌어올리고 함께 성장하게 만드는 길이다.
문제는 '서울대'라는 이름이 가진 학력 자본 즉, 사회적 권력이다. 그곳을 나온 사람은 종종 자신의 성공을 오로지 능력 덕분이라고 믿는다. 그러는 순간, 직업계고 나와 현장에서 땀 흘리며 세금 내는 친구들은 '노력하지 않은 사람'으로 취급될 수 있다. 이게 능력주의의 함정이다. 개인의 성공을 오로지 능력과 노력의 결과로만 보는 시각은 실패의 원인 또한 개인의 탓으로 돌리게 만든다.
영국 사회학자 마이클 영은 <능력주의의 부상>에서 이미 경고했다. 성공한 사람은 오만해지고, 실패한 사람은 자기 탓을 하는 사회. 유발 하라리가 말한 '잉여인간'도 결국 이 길 끝에서 등장한다. 기술이 사람을 대체하면서, 노동시장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존재 의미마저 부정당하는 사회 말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서울대 10개보다 중요한 건, 고졸이든 지방대 출신이든 누구나 당당하게 일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다. 소수의 영웅을 키우는 게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존중받는 평범한 시민이 많을수록 그 사회는 건강하다. 민주주의란 바로 그런 사회다.
나는 현장에서 그런 얼굴들을 자주 본다. 공부는 서툴지만 로봇을 다루는 일에는 눈이 반짝이던 아이. 부모 걱정에 취업을 서둘렀지만, 묵묵히 기술을 익혀 어느새 회사의 믿음직한 엔지니어가 된 제자. 이들의 삶이 바로 분수의 물줄기다. 조용히 솟아올라, 우리 사회를 촉촉히 적신다.
사회는 몇 명의 천재가 굴리는 게 아니다.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서로 해치지 않고, 비교하지 않고, 자기 자리를 지켜낼 때 오래 간다.
그래서 나는 말하고 싶다. 서울대 10개보다, 분수 하나가 우리 사회에 더 절실하다고. 서울대 10개보다 초등학교 한 교실의 기초학력이, 직업계고 한 학생의 당당한 취업이 더 큰 분수효과를 낸다. 그 분수는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물줄기가 아니다. 아래에서부터 차오르며 아이들 얼굴마다 물방울처럼 맺히는, 그런 분수다.
정부는 '서울대 10개' 같은 구호보다, 이 평범한 분수들을 키워내는 교육에 먼저 눈을 돌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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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봇고등학교 교장. 『되풀이되는 비극, 따개비 현장실습』, 『디지털 대전환 시대 직업계고 미래는』 등 직업계고 학생들의 삶과 미래를 응원하는 글을 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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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서울대 10개보다, 분수 하나가 필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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