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복 80주년 왈우 강우규 의사 의거 106주년 기념식
이호인
9월 2일 오전 11시,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대강의실에서 강우규 의사 의거 106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열린 이날 행사에는 장원호 강우규의사기념사업회장, 전종호 서울지방보훈청장, 이중근 광복회 부회장, 윤성찬 대한한의사협회 회장을 비롯해 기념사업회 관계자와 진주강씨 종친회, 이북5도청 인사, 문화예술계 인사, 시민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기념식은 국민의례와 내빈 소개로 시작해 기념사, 헌화·묵념, 기념강연, 기념시 낭독, 기념공연, 만세 삼창, 기념 촬영 순으로 진행됐다. 주최 측은 "3·1운동 이후 최초의 의열투쟁인 1919년 9월 2일 남대문역(현 서울역) 투탄의 의미를 오늘의 평화와 시민교육으로 잇겠다"고 취지를 밝혔다.
광복의 씨앗을 심다

▲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의 기념사를 대독하는 전종호 서울지방보훈청장
이호인
전종호 서울지방보훈청장은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의 기념사를 대독하며 강우규 의사의 의거와 순국을 "수많은 청년들을 독립운동으로 이끈 광복의 씨앗"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일제가 문화통치를 표방하며 식민지배를 고착화하려던 시기에 신임 총독을 향한 투탄 의거는 우리 민족의 확고한 독립 의지를 만천하에 알렸다"고 강조했다.
이어 "내가 죽어서 청년들의 가슴에 조그마한 충격이라도 줄 수 있다면 그것이 내가 소원하는 일"이라는 고인의 유언을 인용하며, 국가보훈부가 독립운동의 역사를 국민과 함께 되새기고 선열들을 예우하는 데 만전을 기할 것을 다짐했다.
이중근 광복회 부회장은 이종찬 광복회장을 대신해 기념사를 읽었다. 그는 의거 106주년이자 광복 80주년에 순국지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열린 이번 기념식의 의미를 '의열에서 평화와 교육으로 이어지는 길'로 규정했다.
이중근 부회장은 강우규 의사가 의거 이전까지 학교를 세워 청년을 가르친 교육자이자 한의사였음을 상기시키며, 3·1운동 이후 강우규 의거가 김익상 등 후속 의열투쟁으로 이어졌고, 이는 1930년대 한인애국단의 이봉창·윤봉길 의거로 확장됐다고 평가했다.
이어 "교육은 실천으로 완성된다"며 "자나 깨나 잊을 수 없는 것은 청년들의 교육"이라는 고인의 말을 인용하고, 오늘날 과제로 청년 교육과 실천을 제시했다. 그는 또한 강 의사의 의연한 재판·수형과 흔들림 없는 태도가 국민적 기억 속 동력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개인의 병' 넘어 '민족의 병' 치유하다

▲ 기념사를 전하는 윤성찬 대한한의사협회장
이호인
정경조 이북5도위원장(평안남도지사)은 광복 80주년과 의거 106주년을 맞아 순국지인 서대문형무소에서 기념사를 올리며, 강우규 의사의 투탄은 "복수나 응징이 아닌 불의와 침략에 맞선 평화의 외침"이었다고 규정했다.
그는 의사가 자유와 독립을 위해 주저 없이 몸을 던졌음을 강조하며, 옥중에서 남긴 절명시(斷頭臺上 猶在春風 有身無國 豈無感想, 단두대 위에 서니 오히려 봄바람이 이는구나. 몸은 있으되 나라가 없으니 어찌 감상이 없겠는가)를 인용해 그 우국충정을 상기시켰다.
또한 강 의사가 한의사로서 민초의 질병을 돌보던 인술을 일제 침략이라는 '더 큰 질병'을 치유하려는 실천으로 확장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내 한 몸을 바쳐서라도 독립을 이루고자 했다"는 의지를 되새겼다. 정 위원장은 끝으로 "의사가 뿌린 독립의 씨앗이 오늘 자유대한민국이라는 큰 나무로 자랐다"면서 선열들의 희생을 잊지 않고 평화와 자유를 지키는 용기를 후세가 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윤성찬 대한한의사협회 회장은 강우규 의사가 한의사이자 교육자였음을 강조한 후 한의학이 독립자금 모금과 연락 거점 제공 등 독립운동에 기여했음을 밝혔다. 그는 일제가 1944년 한의사 제도를 폐지하고 1951년에야 부활한 역사적 공백을 짚으며, 의료 용어에서 '의사'·'의학'이 서양 의학을 지칭하도록 굳어진 관행을 "광복 80주년을 계기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협회 소속 3만 한의사들은 "환자의 몸을 돌보는 것을 넘어 국민의 삶과 건강, 나라의 미래를 지켜내는 소명"을 이어가겠다며 강우규 의사의 희생정신을 오늘의 의료 정의로 실천하겠다고 다짐했다.
일제가 두려워한 상징성과 남은 과제

▲ 박환 고려학술문화재단 이사장이 '강우규 의사의 민족운동'을 주제로 기념강연에 나서고 있다.
이호인
박환 고려학술문화재단 이사장은 15년 전 국내 최초로 <강우규 의사 평전>을 집필한 연구자로서, 강우규를 "의열투쟁가이자 교장·한의사·독실한 기독교인을 겸한 외유내강의 인물"로 규정했다. 그는 북만주·러시아에서 활동한 강 의사가 블라디보스토크와 원산을 거쳐 귀국해 1919년 9월 2일 남대문역 투탄을 결행, 3·1운동 이후 최초의 의열투쟁으로 후속 독립운동의 동력이 됐다고 강조했다.
박환 이사장은 "의열은 수단, 목표는 청년 교육과 평화 구현"이라며 한의원이 독립운동의 연락·모금 거점이 되었던 점과 최장암 등 동지 형성 사례를 들어 한의사와 독립운동의 긴밀한 연계를 짚었다.
또한 강우규 순국 직후 일제가 독립운동가들의 선양(영정·묘비) 차단에 나설 만큼 그 상징성을 경계했다는 평가를 덧붙이며, 앞으로 평화사상·청년교육 축의 연구와 의료·거점사에 대한 학계의 본격적인 후속 연구를 제안했다
이번 기념식은 강우규 의사에 대해 의열투쟁가뿐만 아니라 한의사, 교육자, 평화사상가로서의 다층적 얼굴을 보여주었다. "쾌활하고 용감히 사는 전국 방방곡곡의 청년들"을 바랐던 강우규 의사의 소망이 교육과 시민 실천으로 이어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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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규 의사, 한의사이자 교육자로서 독립운동의 동력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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