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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5.09.05 08:25수정 2025.09.05 08:25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9월에 들어서니 아우성치던 폭염이 한풀 꺾였다. 여름을 지나오며 검게 타고 푹푹 파인 가슴을 쓸며 물안개 자욱한 서시천을 걷는다. 천변 뚝방길 따라 길게 늘어선 가로수들도 저마다의 수형으로 그 울울했던 시간을 건너서 결실과 사유의 계절로 넘어서고 있다.
여름의 끝자락에서 아직도 제 할 일을 다 끝내지 못한 매미들이 목이 터지도록 울어댄다. 다시 돌아올 것이 예정되지 않은 그들에게 이 시간은 얼마나 절실할 것인가. 개체수를 늘린 두루미나 백로도 마음이 조급하긴 마찬가지일 것이다. 수심이 얕은 개천의 가장자리나 자갈밭에서 한쪽 다리를 들고 서서 물을 응시하며 먹이 사냥에 몰두하는 모습만으로도 종 보존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이해가 된다.
3월에 이곳으로 거처를 옮겨 어느덧 두 계절이 지났다. 그동안 이 길을 오가며 무량하게 찍었을 발자국들과 함께 해준 나무들과 풀들, 시작과 끝을 가늠할 수 없던 바람들이 있어 나 자신도 스스로 그렇게 더불어 시간 속을 흘러온 것 같다.

▲ 배추 모종을 심느라 분주한 세대원들
임경욱
탐하지 않는 조화로운 삶
자연은 시간이 지나가고 계절이 바뀌는 것을 스크린으로 보여주며, 무위자연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시간이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삶의 가장 큰 명제로 삼고 도시의 악다구니와 무한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잡초처럼 버티며 살아왔던 지난날의 삶이 호수 위 달그림자를 쫓는 것처럼 허망하다.
내려놓을 것, 버려야 할 유산을 짊어진 채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내 삶이 공중을 나는 가오리연처럼 쓸쓸하다. 작은 것을 탐하고, 한 계단 올라가기 위해 양심과 자존심을 버려야 했던 시간들이 부끄럽고 허허롭다. 무엇이 나를 그토록 처절하게 옭아매고 결박했던 것일까. 다시는 돌이켜 보기 싫고 돌아가긴 싫은 쏭바강이다.
나는 20대 때부터 채식주의자로 '조화로운 삶'을 평생 실천하며 살았던 헬렌 니어링과 월든 호수에 오두막을 짓고 자급자족하며 '탐하지 않는 삶'을 살았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를 내 삶의 이정으로 정하고 살았다. 그런데도 퇴직하고 이제야 자연 속으로 들어왔다.
우리 센터에는 30~40대 젊은 세대원들이 5명이 입주해 있다. 아직 젊은 그들이 꽃다운 나이에 용기를 내 슬기로운 선택을 한 걸 보면 한없이 존경스럽고 부럽다. 요즘처럼 젊은 세대들이 살아가기 힘들고, 정착하기 힘든 우리나라의 현실적 상황에서 탐하지 않는 조화로운 삶을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떤 삶의 자세가 필요할까에 대해 부단히 고민해 오지만,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듯이 어떤 틀이나 답을 제시할 수는 없다. 다만,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찾아가는 것이 진정한 행복으로 가는 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들인 노력보다 훨씬 많은 것을 내어주는 자연
산촌의 해는 짧다. 9월 초입인데도 오후 6시면 산그림자가 온 동네를 덮는다. 7시가 넘으면 밭일을 할 수 없이 어둡다. 천변을 오가며 산책을 하는 사람들도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새들도 침묵, 침잠의 시간이다. 밤을 지새우는 곤충들만이 은밀히 수선스럽다.
초봄부터 부지런 떨며 쌈채소를 시작으로 감자와 고추와 옥수수를 심고 가꾸던 열정이 여름 뙤약볕에 시들어 말라비틀어졌다. 고추밭과 고구마밭은 잡초가 무성한데 손댈 엄두가 나질 않는다. 농사에 열심인 이웃들에게는 미안하지만, 텃밭 가꾸는 일을 취미 정도로 생각하고 들어온 입주민들에게는 다소 버거운 양의 일감이라 힘에 부쳐 소홀히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자연은 고맙게도 내가 들인 노력보다도 훨씬 많은 수확의 기쁨을 가져다줬다. 쌈채소는 물론이려니와 그 많은 감자와 옥수수는 처치 곤란으로 이웃들에게 모두 나눠줬다. 수확이 다 끝나지 않은 고추는 처리할 방법을 몰라 고민이다. 어릴적 어머니가 만들곤 했던 고추장아찌를 만들어볼 요량으로 고민하고 있지만, 잘 될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 배추 모종 정식을 마친 텃밭이 초가을의 푸른 하늘 아래 정갈합니다.
임경욱
김장 무와 배추를 심었습니다
지난 2일에는 감자를 수확한 자리에 무와 배추를 심었다. 무는 종자로 심고, 배추는 모종으로 이식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김장용이다. 올해 심은 마지막 작물이다. 30℃를 웃도는 날씨에 비실비실하는 생명체를 보면 저게 김장용으로 잘 자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감자나 고추가 여름 폭양을 견디고 결실을 맺었듯이 이들도 오래도록 전해오는 유전적 내성으로 병과 해충을 견뎌내리라 믿는다.
숙소 앞 너른 들은 이른 봄 초록의 밀밭이었다가 지금은 벼가 출수를 거쳐 고개를 숙이는 결실의 계절로 옮겨가고 있다. 그 풍경의 변화가 주는 오묘함도 오묘함이지만, 생명체들이 계절을 따라 이동하는 모습이 참으로 경이롭고 신비롭다.
내가 머무는 곳에 바람은 내 고독만큼의 무게로 폐부 깊숙한 끝에 부딪힌다. 운무 가득한 가슴에 내 고통의 비는 어느 날 그칠 것인가. 오늘도 나는 자연 속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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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물처럼, 바람처럼, 시(詩)처럼 / essayist, reader, trave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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