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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할 수 있어 좋다" 학교에 이분들 없으면 안 돼요

학교에서 만난 시니어 어르신들... 이들이 오랜 경험과 지혜를 나눌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 필요

등록 2025.09.07 17:28수정 2025.09.08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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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하는 초등학교의 아침은 시니어 어르신들과 함께 시작된다.

학교 진입로 횡단보도 앞에 연두색 조끼를 입고 '짬깐! 어린이가 건너고 있어요'라고 쓰여진 깃발을 들고 교통지도 하시는 어르신들, 학교 건물 사이 떨어진 낙엽을 쓸고 화단을 정리하시는 깔끄미 어르신들, 교문 앞에서 '안녕' 인사하며 아이들의 안전한 등교를 돕는 배움터 지킴이님, 학교 안 복도와 화장실을 청소해주시는 청소 여사님이 그분들이다. 교직원들이 출근하기 전 이른 시간에 학교에 오셔서 '학교의 하루'가 변함없이 평화롭게 시작될 수 있도록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역할을 하신다.


우리 사회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초고령 사회로의(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이 20% 이상) 진입도 초읽기다. 노인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노인 일자리, 노인의 삶의 질 향상에 대한 관심도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여러 어르신들이 학교에 오신다. 단순히 일거리를 찾기 위한 목적만이 아니다. 근로 활동에 참여하면서 보다 활력 있고 의미 있는 삶을 꾸리고 싶은 어르신들의 마음을 읽고, 그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지역 사회의 고민이 낳은 결과이기도 하다.

시니어 클럽에 소속된 어르신들(지역 내 65세 이상 기초 연금을 수령하는 어르신이 대상)은 일반적으로 1일 3시간, 주 3회 근무하신다. 봉사료는 지자체가 위탁한 시니어 클럽에서 일정액을 지급한다(우리 지역은 월 30시간 일하고 29만 원을 지급한다). 배움터 지킴이(봉사직이며 위촉직으로 소정의 봉사료가 지급된다)와 청소 여사님은 학교에서 별도의 계약 조건에 따라 채용한다.

학교에 시니어분들이 계시니 여러 모로 좋은 점이 많다. 아이들, 어르신 모두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핵개인화 사회에 살고 있는 요즘 아이들이 지역의 어르신들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연세가 들어도 몸을 움직이며 땀 흘려 일하시는 할아버지, 할머니 모습을 보면서 알게 모르게 어르신들의 삶에 대해 배우게 된다.

학교에서 어르신들을 뵙고 만났던 경험은 은연중에 아이들 잠재의식 속에 내재되어 노인의 삶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최근 들어 젊은이들의 노인 혐오가 사회 문제가 된다는 기사를 종종 접하고 있기에, 노인 일자리와 학교를 연결하는 지역 사회의 노력이 감사하다.


어르신들도 뽀송뽀송 귀여운 손자 같은 아이들과 학교 공간을 위해 몸을 움직이며 일할 수 있음에 보람을 느끼고 삶에 활력을 얻는다. '깔끄미' 분들은 학교 화단의 풀을 깔끔하게 정리해 주신다. 학교 외부에 떨어진 낙엽, 쓰레기도 말끔하게 쓸어주시니 학교가 언제나 깨끗하게 관리된다.

오후가 되면 학교 구성원들이 산 하루의 시간만큼 학교 주변이 어수선해지는데 아침이면 그분들의 손길로 세수하듯 말끔해진다. 아이들 아침 맞이하며 학교 한 바퀴 둘러볼 때마다 얼마나 감사하고 기분이 좋아지는지 모른다.
깔끄미 시니어 어르신 깔끄미 시니어 어르신이 학교 현관 화분을 정리하고 꽃을 심고 계신다
▲깔끄미 시니어 어르신 깔끄미 시니어 어르신이 학교 현관 화분을 정리하고 꽃을 심고 계신다 이정미

깔끄미 어르신 한 분은 꽃에 대한 사랑이 깊다. 현관 앞 화분을 모두 관리해 주신다. 여름방학 동안 더위에 녹아내린 꽃잎과 줄기를 정리하고 댁에서 키우는 꽃을 분양해 와서 학교 화분에 예쁘게 옮겨 심고 계셨다.


"꽃 보면 기분 좋잖아. 얼마나 좋아. 나는 꽃만 기르며 살고 싶어."
"우리 딸도 선생이야. 저기 대전. 중등 교사. 남편 직장 따라 올라갔어."

챙 넓은 모자에 가려진 얼굴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지만, 함박 웃고 계셨다. 딸 자랑, 손자 자랑, 꽃 자랑에 그분의 삶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묻어 나서 내가 더 행복해졌다.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을 하면서 타인에게도 도움이 되니 재미있다고 말씀하셨다.

나에게는 잊지 못할 시니어 어르신 한 분이 계시다. 학교 곳곳 화장실 청소를 해주시던 청소 여사님이다. 그 당시 연세가 68세였고, 수줍게 웃으시는 모습이 소녀 같은 분이셨다. 누구보다 맨 먼저 출근하셔서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켜 주셨고, 여름이면 에어컨을, 겨울이면 히트를 틀어 아무도 없는 학교에 온기를 불어넣어 주셨다.

어느 날 차를 같이 타고 가면서 이야기를 나눌 일이 있었다.

"시아버지 간병을 15년 했어요. 똥도 치우고 목욕도 시키고......"
"처음 일할 때는 힘들어서 울기도 많이 했어요. 화장실 청소 요령이 부족하기도 했고, 찌든 때를 팍팍 밀어도 잘 지지도 않고 해서......"
"지금은 괜찮아요. 제가 관리하게 맹글어('만들다' 의 사투리) 놔서. 결근을 해보니 다음날 힘들어서 웬만해선 결근 안 하려고 애쓰고 있어요."
"안 해본 일이 없어요. 일하는 게 저는 좋아요. 아침마다 화장하고 일하러 오는 게 저는 참 좋아요."

딸 같은 나에게 높임말을 꼬박꼬박 쓰시면서 속엣말을 풀어내셨다. 정도 많고 부지런하신 여사님을 보면서 여러 가지 배움이 많았다. 비 오는 날은 현관에 나오셔서 꼬맹이들 우산에 묻은 물을 털어주시고 접는 것을 도와주셨다. 화장실 청소만 돌보시면 되는데, 학교 곳곳을 살펴주셨다. 그러지 않으셔도 된다고 말씀드려도 웃으시며 "좋아서 한다"라고 하셨다.

나는 엄마가 돌아가셨다. 나의 엄마도 요리 솜씨가 좋아서 엄마의 반찬이 그리울 때가 종종 있다. 12월이면 곳곳에서 김장 이야기가 들려오고, 그럴 때면 엄마와 함께 김장을 담던 날이 스쳐가고 엄마 김치 맛이 그리워진다. 그런데 청소 여사님이 농사지은 배추로 김장을 했다며 귀한 김치를 한통에 가득 담아 주셨다.

"요리는 잘 못하는데, 농사지은 배추와 고추로 만들어서...... 나는 자꾸 주고 싶어서......."

친정 엄마 같은 따뜻함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던 기억이 있다. 아마도 평생, 김장철이면 언제나 시니어 청소 여사님을 떠올리며 마음이 따뜻해질 것이다.

학교 급식소에도 도움을 주시는 시니어 어르신들이 계신다. 아이들이 점심을 먹으며 테이블 위에 흘린 음식물을 행주로 닦아주시고 잔반 처리를 도와주신다. 덕분에 뒤 순번에 급식하는 아이들도 불쾌함 없이 기분 좋게 식사할 수 있다.

하얀 위생모를 쓰고 하얀 위생복 위에 시니어 클럽 전용 연두색 조끼를 입고 부지런히 움직이신다. 등이 구부정하신데도 급식이 끝난 빈 자리를 재빠르게 찾아 음식물 찌꺼기를 행주로 훔쳐내신다. 성실하게, 살아오신 대로, 일을 빠지는 날도 없다. 묵묵하게 맡은 일을 책임감있게 해내신다.

65세 이상이면 노화로 인해 신체 기능은 많이 떨어지고 움직임에 불편함도 많을 테다. 하지만 어르신들은 허리가 굽은 대로, 관절이 불편한 대로, 내색하지 않고 몸을 움직이며 일하신다. '일할 수 있어서 좋다' 하신다. '손자 같은 아이들을 보니 즐겁다' 하신다. 은퇴 후 배움터 지킴이로 일하고 계신 어르신은 "놀면 뭐해요, 아침에 일어나 올 수 있는 곳이 있어서 참 좋아요" 하신다.

어르신들을 만나며 일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저로 하여금 죽는 날까지 물고기를 잡을 수 있게 하시고" 했던 '어부의 기도' 시구가 떠올랐다. 어부에게 물고기를 잡는 일은 삶의 이유이며 곧 자기 자신일 테다. 죽는 날까지 몸을 움직여 노동을 하고, 나의 노동이 타인과 연결되어 도움이 되고, 적정한 돈을 버는 일은 인간이 스스로 존엄함을 지키는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노인 인구 증가는 세계적인 추세다. 노인 일자리, 건강하고 행복한 노년의 삶, 나아가 여러 세대와 연결되며 그들의 경험과 지혜를 나눌 수 있는 '향기로운 노년의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지역 사회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관심과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이것은 노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곧 나와 우리의 미래이며, 우리 사회의 '건강하고 행복한 미래'를 위한 일이다.
#초등학교 #깔끄미 #배움터지킴이 #교통시니어 #노인일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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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글쓰기, 여행을 좋아합니다. 타인과 연결되어 자신의 성장을 너머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에 작은 힘이나마 보태며 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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