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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전 민씨의 죽음 직전 일주일을 실감나게 그린 소설

[인터뷰] 35년 기자 생활 마치고 소설 <작전명 여우사냥> 쓴 권영석

등록 2025.09.09 13:27수정 2025.09.09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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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는 '명성황후'라는 극존칭으로 불리고, 어떤 사람들에겐 '민비'로 비하되는 조선 26대 왕 고종의 아내 민자영(1851~1895). 민씨는 1895년 10월 8일 새벽에 사망했다. 이른바 을미사변(乙未事變). 일본인의 칼에 찔린 처참한 죽음이었다.

역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한 번쯤은 TV와 영화를 통해 지켜봤을 이 유명한 살인 사건은 왜 발생한 것이고, 그 이전엔 어떤 일이 있었으며, 중전 민씨를 살해한 이들의 정체는 뭐였을까? 35년 동안 기자로 일하고 올해 봄 퇴직한 권영석(60)은 앞서 언급한 3가지 의문을 자신의 첫 소설 <작전명 여우사냥>(2025년 8월 출간)을 통해 추적한다.


권영석은 역사적 사실과 자신의 상상을 교직(交織)하는 방식으로 중전 민씨의 죽음 직전 일주일을 긴장감 넘치게 묘사, 서술한다. 오랜 기자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짧고 명확한 단문이기에 책장은 술술 넘어간다.

소설의 주인공은 19세기 말 온건 개화파의 수장이던 민영익의 호위무사 이명재. 가상의 인물이다. 그와 대척점에 서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또 다른 인물은 아다치 겐조다. 제국주의 일본이 우리나라에 세운 일간지 <한성신보> 사장이며 실존 인물.

책을 펴낸 출판사는 "<작전명 여우사냥>은 주인공 이명재와 라이벌 아다치 겐조의 치열한 지략 대결과 한성 시내를 뒤흔든 대형 사건들을 연속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게 한다"는 설명으로 이 작품이 딱딱한 역사소설의 모습만이 아닌 흥미진진한 스릴러의 면모도 지니고 있음을 알려준다.

오랜 시간이 흘렀으나 중전 민씨의 죽음은 정확한 전말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고, 관련된 논란도 현재 진행형이다. 권영석의 첫 장편 <작전명 여우사냥>은 이 풀리지 않은 역사의 수수께끼를 해결하는 작은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을까?

지난 8월 24일 오후. 탈고 후 가벼운 마음으로 고향 경북 안동을 찾은 권영석을 만나 기자로 살아온 세월과 향후 소설가로 살아갈 시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아래는 그날 오간 대화를 정리한 것이다.


"나는 상상할 때 가장 행복한 사람"

 자신의 첫번째 책을 든 소설가 권영석.
자신의 첫번째 책을 든 소설가 권영석. 권영석 제공

- 생의 거의 대부분을 기자로 살았다. 어째서 갑자기 소설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것인가.


"지금까지 남이 하는 얘기만 썼다. 기사는 쓸 만큼 썼다.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쓰고 싶었다."

- 기자가 쓰는 글은 사실을 재료로 간명하게 쓰는 게 일반적이다. 소설은 그렇지 않다. 상상력이 필수이고, 긴 호흡의 문장이 필요하다.

"나는 상상할 때 가장 즐겁고 행복했다. 사실이란 재료로 글로 쓰면서도 가슴이 뛰는 경우가 많았다. 앞으로 펼쳐질 미래가 그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주관적 상상력을 기사에 담을 수는 없었다. 이제 마음껏 상상할 수 있고 상상한 세계를 글로 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는 것이 신이 나고 보람 있다."

- <연합뉴스>에서 오래 근무했다. 얼마나 근무했으며, 기자로 일할 때는 어느 부서에서 어떤 일을 주로 했는지.

"1991년에 입사해 올해 봄에 정년퇴직했다. 여러 부서에서 근무했다. 말년에는 북한부와 통일언론연구소 등 북한 관련 보도를 많이 했다. 그건 내가 지향한 철학과 관련이 있다. 역사적인 삶을 살자는 것이 변하지 않는 내 생각이다. 역사적 삶이란, 내가 일제강점기에 태어났으면 독립전쟁을, 독재 치하에 산다면 민주화 투쟁을 하며 살아가는 인생이다. 지금은 분단 시대다. 그래서 한반도 평화와 통합을 위하는 삶을 살려고 한다."

- 기자로 일했던 시절 기억에 남는 행복한 순간과 불행했던 순간은.

"연합뉴스가 국정원 산하에 있던 내외통신을 인수했을 때 가장 행복했다. 당시 정보기관은 북한 정보를 독점하며 대북 정보를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나는 북한 언론사들이 보도하는 내용은 모두 국민에게 공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북한 언론을 수신하고 있던 내외통신을 연합뉴스가 인수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만들었다. 그리고 당시 김종철 연합뉴스 사장에게 내외통신 인수 제안서를 보고했고 이종찬 당시 국정원장에게도 내외통신을 연합뉴스에 넘기라고 부탁했다. 불행했던 순간은 없는 것 같다. 굳이 꼽자면 끝내 연합뉴스 평양지국 개설을 성사시키지 못하고 퇴임할 때였다."

- 기자로 정년을 한 후 목수 일도 제법 오랜 시간 배운 것으로 안다. 판소리, 연극에도 관심이 있다고 들었다.

"대학 다닐 때 연극반을 하면서 문화 운동에 눈을 떴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는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시위할 때 부르는 노래와 민요를 강습하기도 했다. 그후 언론을 통해 세상을 좋게 만들고 싶었다. 내가 봐도 결과는 만족스럽지는 못했다. 잔머리만 굴리며 살다 보니 너무 나약해진 것이다. 퇴직을 앞두고 인생2막은 노동을 하면서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지난해 봄 안식년 기회를 이용해 한옥 짓는 목수 일을 시작했다. 역시나였다. 몇 달 전 오른팔이 망가져 숟가락도 들지 못했다. 이제 망치질을 못한다. 망치로 끌을 두들기지 못하는 사람은 한옥 목수가 될 자격이 없다."

- <작전명 여우사냥>은 언제 집필을 시작해서 언제 끝냈나.

"2022년 5월 영화감독 하는 분과 술을 마시다 우연히 내가 쓰고 싶은 소설을 설명했다. 그 영화감독이 용기를 주지 않았으면 아마 쓸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때 이후 조금씩 시간을 쪼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탈고까지 거의 3년 걸렸다. 회사에서 일하는 것보다 상상력을 발휘하며 소설 쓸 때가 더 행복했다. 세상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으니 기분이 너무 좋았다."

"사실적이고 입체적인 소설로 기억됐으면..."

 권영석의 첫번째 장편소설 <작전명 여우사냥>.
권영석의 첫번째 장편소설 <작전명 여우사냥>. 파람북

- 작가가 보기에 명성황후는 어떤 인물인가. 더불어 그와 대척점에 섰던 대원군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나.

"먼저 명성황후란 명칭이 귀에 거슬린다. 내 소설 속에선 중전 민씨라고 불렀다. 황후라고 높여 부를 필요도 없지만 민비라고 업신여길 필요도 없다. 총명한 여인이었다. 하지만 자식들이 잇따라 죽으면서 하나 남은 아들에 대한 사랑이 지나쳤다. 무당에게 의지하고 뇌물도 좋아했다. 매관매직을 일삼으며 탐욕이 끝이 없었다. 가장 큰 죄는 사대주의였다. 아들에게 왕위를 넘겨주기 위해 조선을 청나라 속국으로 만들었고 청나라가 망하자 그 다음에는 러시아에 의지했다. 오히려 대원군의 장점이 더 많았다. 대원군의 개혁 정책은 정말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완벽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 소설엔 실존 인물과 가상의 인물이 두루 등장한다. 그 가운데 당신을 가장 매료 시킨 등장인물은 누구인가.

"당연히 주인공 이명재다. 그의 입을 통해 내가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 <작전명 여우사냥> 출간 이후 책을 읽은 지인과 독자들의 반응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한결 같은 반응이 있었다. 영화로 만들면 정말 재미있을 것이란 얘기가 많았다. 기억에 남는 지적은 주인공 이름이다. 주인공은 질곡과 모순의 시대를 온몸으로 헤쳐가고 있다. 그래선지 주인공 이명재가 혹시 대통령 이재명이 아니냐는 질문을 많이 한다. 대통령 이재명을 염두에 두고 작명한 것이 아니다. 후배 중에 아주 좋아하는 후배가 있다. 그는 지적인 눈빛과 무장 같은 탄탄한 몸매를 지녔다. 무엇보다 세상을 바로 세우려는 의지가 강하다. 그 후배에게 양해를 구하고 이름을 빌렸다."

- 근대사를 보면 독특한 빛과 그림자를 지닌 인물이 적지 않다. 만약 앞으로도 소설 작업을 계속한다면 소재로 다뤄보고 싶은 인물이 있는지.

"이번 소설에 대한 반응이 좋지 않으면 더 이상 소설을 쓰지 않을 생각이다. 글을 쓰는 재능도 없으면서 하찮은 소설 하나 더 보태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만약 독자들이 소설을 계속 써도 좋다는 평가를 내려준다면 남북한 문제를 다룬 소재로 소설을 쓰고 싶다."

- 독자들에게 '이걸 주목해서 읽어보라' 권하고 싶은 대목은.

"원래 2차 세계대전 이후 분단의 아픔은 패전국들의 몫이었다. 동독과 서독처럼 일본도 미국과 러시아가 분할 점령을 하는 것이 순리였다. 그러나 일본은 미국에 대해 한반도 분할 점령을 제안했다. 우리 민족의 분단의 비극은 여기서 비롯됐다. 일본이 한반도 분할 점령을 처음 제안한 것은 1895년이었다. 러시아가 일본의 대륙 진출을 봉쇄하자 한성 주재 일본 공사가 러시아 공사 베베르에게 한반도를 분할해 나눠 갖자고 제안하는 장면이 나온다. 우리가 역사를 뒤적이는 이유는 오늘을 잘 살기 위한 것이다."

- 35년 기자 생활을 끝내고 소설가로 첫 발걸음을 시작했다. 이번 소설이 독자들에게 어떤 작품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는가.

"소설을 한참 써내려갈 때 윤석열 전 대통령과 그의 부인을 보면서 조선을 망국으로 이끈 고종과 중전 민씨가 되살아난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어 깜짝 놀랐다. 조선이 망했듯이 대한민국이 망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지금까지 모든 작품이 고종과 중전 민씨의 한쪽 측면만 과대 포장한 것이었다. 중전 민씨를 명성황후로 떠받들며 뮤지컬까지 만들어 칭송하는 우리나라가 정말 이상했다. <작전명 여우사냥>이 고종과 중전 민씨를 입체적으로, 그리고 사실적으로 그린 소설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 마지막으로 덧붙일 말이 있다면.

"일본이 중전 민씨 암살 당시 휘두른 칼 히젠토를 후시다 신사에 모시고 있다. 히젠토는 살인 범죄의 증거품이다. 정부는 이 히젠토를 우리나라로 가져와야 한다."

작전명 여우사냥

권영석 (지은이),
파람북, 2025


#작전명여우사냥 #권영석 #중전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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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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