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도밸브 수압저감 조치에 따라 가정 내 세면대 수압을 낮췄다.
이준수
재난 사태가 선포된 후 우리 가족의 일상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평소 요리와 식수 용도로 주전자형 정수기를 사용했다. 그러나 수돗물 사용량을 줄이기 위해 생수를 사 먹고 있다. 첫 일주일은 생활비로 물을 구입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서 매일 500mL 생수병을 4개씩 받아왔다.
더불어 강릉시에서 주민에게 생수를 배급하고 있다. 배급량은 주민 한 명 당 12L. 행정구역마다 정해진 배급 장소가 있다. 특정 규모 이상의 아파트 단지 경우 관리사무실에서 배부하기도 한다. 우리 가족도 지난 5일 저녁에 생수를 받아왔다. 2L 생수병 여섯 개 들이가 총 4묶음. 도저히 손으로는 운반할 수가 없어 손수레를 대여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받아오는 생수까지 고려하면 4인 가구가 먹고 마시기에는 충분한 양이었다.
세탁기 가동주기 늘리고 세면대 밸브 조절까지... 주말엔 가뭄 위기 아닌 곳으로
세탁기 가동 주기도 길어졌다. 적은 양의 빨래를 자주 하면 물 사용량이 많아지므로, 가급적 세탁기 용량이 찰 때까지 빨랫감을 모으고 있다. 9월에도 기온이 떨어지지 않아 땀이 많이 흐른다는 점이 애로 사항이다. 고온다습한 날씨 속에 곰팡이 발생이 우려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통돌이 세탁기 입구에 세탁물을 펼쳐 걸어두는 등 요령을 발휘하고 있다.
두 군데 화장실의 변기에는 생수병을 넣었다. 생수병은 벽돌 대용품으로 훌륭했다. 깨질 염려가 없고 위생적이었다. 아이스팩을 넣는 가정도 있는 듯 하지만, 실험결과 아이스팩 내용물이 녹으면 물 구멍을 막는 부작용이 있었다.
샤워기 헤드도 절수형으로 바꾸었다. 마침 샤워기 헤드 부품 일부가 깨져 조만간 바꿀 거라 벼르고 있던 터였다. 절수형 샤워기는 답답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작은 구멍 사이로 고압의 물줄기가 나와 개운한 느낌이 들었다.
세면대 밸브를 절반 쯤 잠갔다. 방법은 아파트 게시판에 사진과 글로 잘 안내 되어 있었다. 밸브를 조절하니 물이 약하게 나왔다. 나는 그 물을 받아서 조금씩 아껴 썼다. 샤워 시간은 기존의 절반. 저녁 운동 후 목욕이 최고의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지만, 가뭄 시즌에는 욕조를 사용할 수 없었다. 그나마 선진국에 사는 까닭에 가뭄 시즌에도 시원한 물로 샤워를 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설거지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우리 집은 식기 세척기를 사용한다. 식기 세척기에 넣기 전 애벌 세척이 필요하다. 보통 수세미로 가볍게 그릇을 닦아내고 물로 헹군 뒤 기계에 넣는다. 그런데 요즘은 키친타월로 잔여 음식물과 자국을 닦아내고 있다. 부피가 있는 것은 바로 음식물 쓰레기통에 넣는다. 그럼 헹굼 과정이 대폭 줄어든다. 식기 세척기 가동 모드는 '에코'. 그럼 세척 시간이 길어지는 대신에 물과 전기를 아낄 수 있다.
주말의 여가를 물이 풍부한 곳에서 보내는 것도 하나의 자구책이다. 8월 마지막 주, 둘째 아이의 생일을 맞아 강릉에서 파티를 하려던 계획을 취소하고 1박 2일 춘천 가족 여행을 떠났다. 파티 비용이면 고급스럽지는 않지만, 깨끗하고 단정한 숙소에서(세탁기가 딸려있었다) 머물며 주말을 보낼 수 있었다. 그 결과 이틀 치 4인 가구가 사용하는 물 만큼은 강릉시에서 나가지 않게 되었다.
지난 6일, 7일에는 강원도 삼척과 평창에서 보냈다. 강릉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남짓 떨어진 곳이지만 가뭄 위기는 아닌 곳이다. 당일치기로 다녀오기에 적당했다. 마침 삼척에서는 이사부장군 축제가, 평창에서는 효석문화제가 열렸다. 강릉과 달리 공중화장실이 모두 가동 중이었으며, 공공 음수대에서도 물이 콸콸 나왔다. 물이 부족하다는 불안과 우려가 사라지니 한결 긴장이 누그러졌다. 나도 모르는 사이 물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음을 실감했다.

▲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도 물이 나온다. 비상시 급식이 빵과 떡 등의 간편식으로 제공될 가능성도 있다.
이준수
절망과 희망이 뒤섞인 재난의 풍경
지난 주말 인근 아파트에서 물이 끊겼다. 상수도로 공급되는 물의 양보다 가정에서 사용하는 양이 많으니 벌어진 일이었다. 물이 들어올 때까지 주민들은 큰 불편을 겪어야 했다. 일요일 강릉 시내 지역의 체감 기온은 최고 30도에 육박했다. 물을 안 쓰고 살기에 어려운 환경이었다.
시시각각 강릉의 주 상수원인 오봉댐 저수율이 낮아지는 상황에서 '단수'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강릉시가 추진 중인 연곡천 지하댐 같은 가뭄 중장기 대책이 최소 2027년 말이 되어야 성과가 난다는 점이다. 강원도 영동 지방은 여름 뿐 아니라 겨울과 봄에도 극심한 건조 기후로 여러 차례 산불이 발생하고 있다. 강릉 시민은 당분간 강수량과 물 사용을 의식하며 지낼 수밖에 없는 처지다.
사람들을 만나면 '아기 기저귀 갈이는 물도 생수를 쓰는 마당에, 어째서 리조트와 풀빌라는 영업을 계속하느냐', '사용하는 인원도 별로 없는데 물 먹는 하마 골프장을 운영하는 것이 가당키냐 하나' 같은 하소연이 쏟아져 나온다. 갑갑한 마음에 하는 소리다.
동시에 미담도 많이 들려온다. 물을 운반하느라 밤낮으로 고생하는 소방관 분들께 무료로 커피와 음료를 제공하는 카페. 간식 예산이 부족해 가뭄 대책 담당 공무원들에게 충분히 빵이 돌아가지 못하게 될 상황이 되자 즉석에서 할인과 더불어 향후 무료 간식 세트를 준비한다는 빵집. 생활용수를 받아둘 양동이를 주문하자 결제를 취소하고 무상으로 배송해 준 업체. 모두 감사한 분들이다.
피부로 느끼는 재난의 풍경은 절망과 희망이 뒤섞여 있다. 비는 하늘에 달려있다 하지만, 내린 비를 관리하는 것은 사람의 몫이다. 우선은 당장에 들이닥친 가뭄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집중할 예정이다. 재난의 원인 분석과 대응, 책임 추궁은 세면대 밸브가 정상 압력으로 돌아간 이후에 진지하게 생각해보려 한다. 내년과 그 후년에도 올해와 같은 일을 겪지 않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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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구하는 가계부, 미래의창 2024>, <선생님의 보글보글, 산지니 2021> 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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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가뭄 속 4인 가족, 이렇게 버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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